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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0 뮌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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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4 : 도이치 박물관 비 내리던 2010년의 여름날, 그곳엔 독일의 진정한 동력이 있었다. 독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대로를 볼 수 있는 곳. 도이치 박물관엔 독일의 위대한 힘이 살아있다.
기억 3 : 노이어 피나코텍 속 신화 그리스로마 신화는 미술의 영원한 소재이며 주제다. 끝없는 상상력의 산물인 그리스로마 신화는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데 노이어피나코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궁무진한 신화의 세계가 상징성을 지니고 관람객을 기다린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면서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신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미워하며 또 존중하고 질투하며 분노하고 슬퍼한다. 그러기에 신화는 인생이다. 노이어피나코텍의 복도에선 올림포스에서 온 신들이 대채로운 향연을 벌이고 있다.
기억 2 : 노이어 피나코텍의 명화 뮌헨의 세 피나코텍 중 1853년 개관한 '노이어 피나코텍'은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까지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미술시간에 자주 듣고 보았던 모네, 마네, 드가, 르누아르, 세잔, 고갱, 고흐 등 유명 화가의 작품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는데,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그림들이다. 그냥 아무 설명 없이 아무 배경 없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그림들. 중세의 단장한 어느 성의 복도 같은 미술관 통로를 지나면 세계 미술사의 한 면을 장식하는 그림들이 또다시 나타나 준다. 그림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 아는 것이 없어도, 모르는 것 투성이어도 그림을 느끼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듯이 몸이 조금 불편한 사람도 충분히 동참할 수 있는 공간이 미술관이라는 ..
기억 1 : 오버아머가우의 동화 독일은 무한한 즐거움이 있는 나라다. 오버아머가우는 뮌헨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데, 직행 열차가 없어서 중간에 한 번 갈아타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곳은 루트비히 2세가 남긴 린더호프 성이 아니더라도 마을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Oberammergau 마을 입구엔 실개천 같은 폭 좁은 강이 흐른다. 강은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집과 건물들의 외벽은 모두 프레스토화가 그려져 있어서 그 독특한 정취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로텐부르크와 하이델베르크 등에서도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상점인 캐테볼파르트도 마을 중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 현지 프레스코 화가가 최고의 실력으로 벽면을 장식한 필라투스하우스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내부는 공방과 전시장으로 쓰이..
에필로그 : 깊고 오랜 후유증 여행의 후유증은 길었다. 예상보다 더 깊었다. 19개월 만에 날아가 겨우 9일, 특히 4년여간 삶의 터전이었던 빈에서도 단 네 밤을 보냈을 뿐이다. 마음 한 편이 공허해서 여행기를 쓸 기력이 없었다. 오스트리아에 살다 4년 만에 귀국했을 때처럼 심장 박동 수가 불규칙했다. 여행을 마친 후 바로 출근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일상의 분주함에 치이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몇 달이고 계속 비틀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2004년 여름, 처음 유럽에서 3주를 지내고 귀국했을 때, 여행을 마쳤다는 아쉬움 때문에 한참동안 가슴이 허전했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의 생활이 결정된 후, 사전 적응을 위해 그해 겨울 6주 동안 머물 때는 겨울 날씨가 주는 음울함 때문에 도저히 그곳에서 살아낼 것 같지 않았었다. 그리고 200..
8. 14 (토) : 네가 준 추억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왔으면 하고 소원했던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10시 45분 빈을 출발해서 핀란드를 거쳐 서울로 귀국한다. 빈에서의 마지막 라면을 끓이고-여행엔 라면- 어제 1구의 아카키코에서 구입해 조금 남겨둔 초밥을 곁들였다. 짐을 챙기는데 열린 거실 창문 너머로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남자가 큰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그래, 우리 이제 떠난다구. 약속된 장소에 아파트 열쇠를 두고, 7시 10분 아파트를 나선다. 지하철로 서역까지 이동해서 공항버스를 탔고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8시 20분. 핀에어 데스크를 찾아 줄을 섰는데, 우리 앞에 한 무리의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단체 관광객의 인솔자는 일본인이고 현지가이드는 백인-아마 오스트리아 사람인 듯-인데, 이 백인 남..
8. 13 (금) : 빈숲과 판도르프 오늘 아침 식사 메뉴는 남편은 또 우동, 아들과 난 오븐에 구운 마늘 바게트다. 오스트리아엔 오븐에 넣어 굽기만 하면 식사로 충분한 식품들이 많이 판매되고 있는데, 마늘바게트도 그 중 하나다. 긴 바게트 사이사이에 마늘버터가 촉촉히 숨어있어 고소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낸다. 예전에 빈에 살 땐 냉장 바게트나 냉동 피자-도우가 얇고 바삭한 유럽식 피자-를 간식으로 애용했었다. 그 맛도 꽤 괜찮은 편이어서 지금도 가끔 그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8시 반, 아파트를 나선다. 오스트리아의 여름 해는 5시 전에 이미 솟아오르기 때문에 아주 이른 출발은 아니다. 오늘은 빈숲이다. 빈숲은 빈의 외곽에 위치한, 말 그대로 숲이 우거진 넓은 지대로, 그린칭이나 하일리겐슈타트가 많이 알려져 있다. 이미 두어 번은 다녀왔던..
8. 12 (목) 후 : 한여름밤의 축제 카그란 역에서 지하철 1호선(U1)을 타고 빈의 구시가인 1구로 간다. 빈 여행의 중심이자 출발지인 슈테판플라츠까진 8정거장, 15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슈테판플라츠는 빈에 살 때 한 달에 서너 번은 꼭 가던 곳이다. 우린 늘 왕궁 앞에 차를 세운 뒤 명품샵이 즐비한 콜마크트 거리를 걸었고, 그라벤 거리를 지나 슈테판 성당 앞을 머물곤 했다. 슈테판 성당 앞을 스쳐지나면 케른트너 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 거리 끝엔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아들 녀석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슈테판 옆 Aida 앞에서 줄을 서고는 다른 여행객들처럼 거리를 유쾌하게 쏘다녀본다. 늘 그렇듯 구시가는 아련한 떨림과 그리움을 건네준다. 6구의 마리아힐퍼 슈트라세에 갈 일이 생겼다. 한국 음식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