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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9 밀라노·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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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 (일) : 귀로 흐리기만 하던 바르샤바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인천 공항을 떠날 때와는 달리 귀국하는 항공편 비즈니스석은 만석이다. 베니스발 항공기에선 우리 뒷좌석에 탔던 한국인 부부가 이번엔 우리 앞좌석에 자리해 있다. 승무원이 건네주는 웰컴드링크를 마시며 여행의 여운을 가다듬는다. 또다시 폴란드 맥주를 고르고 재미 없는 한국영화를 골랐다가 또다른 자막 영화-인스턴트 패밀리-를 틀었다. 편안한 옷차림 덕에 출국시보다 평온한 기내~ 한국어를 하는 폴란드 승무원이 차려주는 첫번째 식사를 들인 후 여행 내내 이어지던 새벽 기상에 사무친 듯 세상 없는 단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랫동안 꿈을 꾸었나 보다. 한참이 지났건만 불 꺼진 기내엔 작은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아직도 항공기는 먼 상공..
2. 9 (토) : 다시 만날 기약 베니스를 떠나야 하는 아침, 6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아챈다. 우유와 사과로 간단한 아침을 들고 동네를 둘러본다. 떠나려니, 아쉽고 뭉클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던 산탄젤로 광장은 베니스의 일상을 날마다 전해주었다. 출근하는 사람들,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 여행의 기쁨에 들뜬 사람들의 표정을 매일 들려주었다. 우린 날마다 좁은 운하와 그에 걸친 다리를 건넜고, 매일 크고 작은 광장을 걸었다. 15년 전, 베니스에 오래 머물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은 놓여진 듯하다. 그래도 아쉽고 그래서 꼭 다시 올테니. 8시 9분, 1번 바포레토는 산탄젤로를 떠나고 8시 40분, 공항버스는 산타루치아역 곁 로마광장을 떠난다. 25분 후인 9시 5분, 버스는 우리를 마르코폴로 공항에 내려놓았다. 검색대를 거..
2. 8 (금) 후 : 아, 아카데미아 다리 산탄젤로 광장 근처 피자가게가 있는 골목길에 'Rosa Rossa-붉은 장미-'란 이름의 레스토랑이 있다. 구글이나 트립어드바이저 평점이 괜찮고 출입문 밖에서 보이는 내부 분위기도 나쁘지 않은 듯하여 낙점한 곳이다. 점심식사 하기엔 약간 이른 시각이었나, 식당에 들어섰을 때 실내는 거의 비어 있었다. 실내는 몇 개의 탁자가 놓인 작은 공간이 두세 곳은 마련되어 있었기에 밖에서 가늠한 것보다 내부는 넓은 편이다. 물과 맥주를 주문하고 이어서 깔라마리 파스타와 그릴 깔라마리를 요청했다. 먼저 빵과 안주인 듯한 짭조름한 스낵이 세팅되었는데, 무난한 맛이다. 내가 좋아하는 넓은 파스타면-아마도 링귀니-이 싱싱한 오징어와 깔끔한 조화를 이룬 깔라마리 파스타도 맛있고 구운 채소를 곁들인 그릴 깔라마리도 매우 입맛 ..
2. 8 (금) 전 : 산 조르조 마조레 종탑에서 하루를 일찍 열었다는 이유로 무려 6시 50분부터 라면을 끓이고 카푸치노를 마셨다. 이번 여행에서 시차 적응은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완전 빵점이다. 나이 탓~산탄젤로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산책 나온 개들이 즐거운 개판을 벌이고 있다. 완전 강아지 천국이야. 우리 막내녀석이 생각나는 아침이란 말이지... 8시, Punto Simply로 마지막 장을 보러 혼자 나섰다. 난 서울에선 대단한 길치지만, 신기하게도 유럽 도시에선 구글맵 없이도 매우(?) 길을 잘 찾는 편이다. 역시나 단번에 Punto Simply에 도착하여 포켓커피와 원두, 초콜릿 등과 마트표 티라미수를 구입했다. 대성당 북쪽에 위치한 디저트 가게인 'I TRE MERCANTI'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마트표 티라미수를 먹으며 달래보는데, 오..
2. 7 (목) 후 : 자연의 빛깔, 무라노 출발 10분 전에 오른 본섬 행 12번 바포레토에는 부라노에 올 때처럼 승객들이 가득하다. 수상버스는 파도 잔잔한 물길에 얕은 물결을 지으며 사면이 완전히 트인 망망대해를 지난다. 우리 내려서 지금 무라노섬 갈까. 부라노에서 무라노까진 25분 거리. 여행객들은 대부분 부라노와 무라노를 하루에 가는 여정을 선호하는데, 우린 무라노는 내일 갈 예정-산마르코 선착장에서 출발 가능, 15분 소요-이었고 오늘 오후엔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엘 가기로 했으나, 일정을 바꾸어 무라노에서 내렸다. 무라노섬에서 내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5개의 작은 섬들이 다리로 연결된 무라노섬은 13세기 이래 베네치아 유리 제조의 중심지로, 현재 170여 개의 유리공방이 있다고 한다. 부라노보다는 관심이 적은 섬이라 운하 주변을..
2. 7 (목) 전 : 부라노 가는 바포레토 또다시 새벽 4시반, 눈이 떠지고 정신은 몽롱하다. 뒤척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시각은 6시 40분, 어제 먹고남은 피자를 커피와 함께 먹어주고 세탁기를 돌린다. 8시엔 밥과 즉석미역국과 계란프라이까지 완벽한 한식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부터 얼마나 먹어대는 건지. 9시 10분, 날씨도 풍광도 정말 좋은 아침이다. 오늘은 어제 미리 구입한 48시간짜리 교통카드를 이용해서 부라노섬으로 갈 예정이다. 숙소 앞 산탄젤로 선착장에서 1번 바포레토를 승선한 후 부라노섬 가는 12번으로 갈아타기 위해 리알토에서 내렸다. 물론 리알토 선착장에서 바로 12번을 탈 수는 없다. 12번 바포레토가 출발하는 F.te Nove(Fodamente Nove) 선착장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했다. 구글맵과 함께 탁월한 공간지각..
2. 6 (수) 후 : 리알토에서 만난 카날 그란데 숙소가 있는 산탄젤로 광장 근처에 테이크아웃 피자가게인 Pizzeria L'Angelo가 있는데, 구글과 트립어드바이저 평점이 괜찮아서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 앞을 수없이 지나던 좁은 골목길에, 작게 쓰인 간판 아래 꽤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피자 두 판을 주문한 후 대기하여 들고와 숙소 식탁 위에서 뚜껑을 여니 오, 비주얼 괜찮다. 맥주와 함께 먹으니 더욱 맛있고 가성비도 최고다. 난 푹 쉬고 남편은 오늘도 낮잠대마왕이 되었다. 휴식과 낮잠을 마친 오후 1시 50분, 리알토 다리를 향해 우린 산탄젤로 광장을 가로지른다. 리알토 다리는 S자 형태의 카날 그란데, 즉 대운하에 가장 먼저 놓여진 다리로 19세기에 아카데미아 다리가 건립되기 전까지는 대운하 유일의 다리였다. 처음엔 목조로..
2. 6 (수) 전 : 산마르코 성당과 종탑 Sant'Angelo 광장이 보이는 이 전망 좋은 스튜디오는 4m가 넘는 높은 천장 덕에 난방을 틀어도 실내가 추운 편이다. 대신 거위털 이불이 매우 따뜻하고 포근하며 라텍스매트리스의 쿠션감이 아주 적당하여 묵는 내내 숙면을 취했다. 물론 어제 초저녁 취침으로 인해 오늘은 깜깜한 새벽 4시에 눈을 떴지만 말이다. 새벽부터 탁자에 앉아 오늘 일정을 논의하며 우유와 커피에 모짜렐라치즈를 곁들였다. 이탈리아 모짜렐라는 말이 필요없다. 단연 최고다. 이른 시각이지만 어제 저녁-된장찌개-에 이어 오늘 아침도 한식-너구리, 김치볶음-을 든든히 챙긴다. 숙소 밖에선 갈매기 소리가 들려오고 스튜디오 안 텔레비전 채널에선 독일어가 흘러나온다. 7시 20분, 세월과 바닷바람에 부식된 빛바랜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걷는다.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