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탐사('04~08)/서유럽 이야기

프랑스 3 : 루브르의 향기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여행 안내서에 의하면 일요일의 루브르는 할인가로 입장이 가능해야 했다.

찌푸린 하늘, 기나긴 줄을 따라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 입구로 들어서니 공항에서나 보던 검색대가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자동판매기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는데, 뒤에 서 있던 중국 여자가 심하게 참견을 한다.

파리에 가장 많은 이방인들, 예의 없고 시끄럽다. 어쨌든 앵발리드에 이어 기호는 무료-18세 미만-고 어른은 정상 입장료.

 

루브르는 30여만점의 작품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미술관으로, 1793년에 개관-이전엔 궁전-하였다고 한다.

이미 입장하기 전에 감히 범하지 못할 미술관 규모와 인파를 보았고, 또 우리 모두 미술 작품에 뜨거운 애정은 없기에

루브르에서의 우리 목표는 소박했다. 

 

니케

모나리자

안내서를 보며 먼저 드농관으로 들어갔다.

안내서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사진을 곁들여 친절하고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조금 가다보니 사람들이 몰려 있다. 기원전 작품인 조각상 ‘니케’다. 2000년이 넘은 작품의 상태가 경이롭다.

 

‘모나리자’는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경호 직원 옆 방탄유리 안에서 미소짓고 있다. 기대보다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2시간동안 둘러보며 우리가 루브르에서 발견한 것은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밀로의 ‘비너스’,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 그리고 기호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스로마 신들의 조각상. 작품들과 사람들에 밀려 벌써 지치려 한다.

 

비너스

루브르 미술관 밖엔 카루젤 개선문이 비에 젖어 있었다. 요기를 하고 또 걷는다.

방향을 잡고 걷다보면 무언가 눈에 드는 게 있다. 무궁무진한 유적의 도시다.

곧, 2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국립극장 코메디프랑세즈와 1639년에 지어진 팔레루아얄이 연이어 출현한다.

 

일요일인데도 팔레루아얄 주변 상점들은 문을 연 채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

라틴 뮤직이 흘러나오는 한 상점의 주인이 우리에게 '곤니찌와, 안녕하세요'를 연달아 쏟아내며 우리를 끌어들인다.

 

이어서 루브르 서편, 1563년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프랑스식 정원인 튈르리 정원이 보인다.

상쾌한 기분으로 조잘거리며 널따랗고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고 있는데, 인도계 여자 하나가 영어로 쓰인 종이를 내밀며

구걸을 한다. 아침 지하철역에서도 멀쩡한 남자거지가 보이더니. 파리 곳곳엔 사지 튼튼한 거지가 정말 흔하다.

 

벤치에서 잠시 쉬는 동안, 기호는 비둘기가 흘린 깃털을 줍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르퐁 루아얄 저편에 오르세 미술관이 멋지게 펼쳐져 있다.

오르세 앞 동물 동상 앞에서 기호는 똑같은 동작을 취하며 모델을 자청한다.

미술관 아래 스탠드에 앉아 악사의 연주에 귀 기울이려니 스르르 낮잠이 몰린다.

 

오르세 미술관 앞

카페에서 마신 카푸치노는 향기롭다.

그리고, 어설픈 영어를 써가며 옆 테이블 파리지엔느의 강아지를 기어코 만지고 쓰다듬는 기호.

기호의 강아지 사랑은 그야말로 깊고 절절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자리한, 서울 여의도 같은 시테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또 다리를 건너야 한다.

1606년에 완공된 퐁네프로 걸음을 놓으니,이제는 줄거리조차 떠오르지 않는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이 스친다.

 

금세 시테 섬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최후를 보냈다는 콩셰르주리와 최고사법기관인 최고재판소를 지나 노트르담 성당에 다다랐다.

노트르담 성당은 1163년에 지어지기 시작하여 1330년에 완성된 고딕 양식 건축의 최고 걸작이라고 한다.

 

무수한 사람들 틈에 끼여 들어간 성당 내부. 화려한 문양과 빛깔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단연 압권이다.

자리에 앉아 숙연한 정면을 응시하는 순간, 장엄한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들려온다.

 

몸으로 부딪치는 여행을 하다보니 금세 배가 고프다.

시테 섬엔 유난히 초밥집이 많다. 한곳을 골라 초밥을 주문하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밥이다.

 

시테섬의 노트르담 성당

저녁엔 너무나 환상적이라는 에펠탑 야경을 보기로 했다.

에펠탑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인 사이요 궁 앞으로 갔지만, 주변엔 작은 카페조차 없다.

다시 에펠탑 근처의 선상 카페에 앉았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인 9시가 되자 에펠탑 불빛 쇼가 진행된다.

소문만큼 그리 환상적이지는 못하다. 깜깜해진 10시에 다시 불빛 쇼를 하는데, 아까처럼 거기서 거기.

 

에펠탑

오래 쏘다녀 고단하지만, 저녁 기운이 맑고 쾌적하다. 열심히 돌아다닌 덕에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꿈속이다.

늘 꿈엔 하늘빛 드레스를 입고 고결하게 튈르리 정원이나 거닐어 볼까.

그러면 영화에서처럼 근사하고 멋진 백작이 나타나 줄까나.

 

 

( 2005년 8월 14일 일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