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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동유럽 이야기

폴란드 4 : 빗속의 단꿈

어젯밤부터 몸 상태가 나빠진 작은밥돌이 아침 식사를 마다한다. 

밤새 여러 번 들리던 '엄마' 소리에 약과 물수건을 챙기느라 잠을 설쳐 나도 노곤한 아침. 

하는 수 없이 어른 둘만 아래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온 사이, 작은밥돌은 내내 화장실에 있었다고 하소연한다. 

이를 어쩐담, 대신 아파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기만 한데.

 

체크아웃을 하고 승용차에 타려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늘이 많이 흐리진 않으니 오래 내릴 비는 아니다. 도로 따라 펼쳐지는 폴란드 남부의 시골 풍경이 한가로워 보인다.

출발 30분 후, 주유소 삽. 오스트리아에선 동유럽 화폐를 환전할 수 없으니 남은 폴란드 돈을 다 쓰기로 했다. 

 

폴란드

비엔나를 떠나올 때보다 비엔나로 돌아가는 길이 더 짧게 느껴진다. 그새 긴 도로에 익숙해진 건지. 

폴란드 국경을 넘어 슬로바키아 어느 마을에 자리잡은 테스코 앞에 차를 세웠다.

아침을 걸러 배가 고프다던 작은밥돌이 속을 분수처럼 게워낸다. 니, 차 안에서 주유소샵에서 산 음료수 한 병을 다 먹었다고.

 

슬로바키아

비엔나엔, 놀면서 쉬면서 아주 천천히 돌아가기로 했다. 작은밥돌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그게 최선이었다.

조금 더 움직여 더 큰 규모의 테스코. 오스트리아엔 없는 대형 할인점 구경이 재미나다.

 

성벽만 남은 오래된 돌성을 지나, 물구나무 선 다리 모양의 가로등이 늘어선 교량을 지난다.

깜빡 잠이 들었었나 하며 눈을 비비는데, 시야가 흐려온다.

차창 밖엔 비가 쏟아져도 고단한 녀석은 뒷자리를 길게 차지하고는 단꿈을 꾸고 있다.

  

저기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국경이 보인다.

흐린 하늘엔 어제 저녁 크라코프 구시가 입구에서 주저앉아울던 트럼펫 소년의 낯빛이 겹친다.

 

돌아온 집은 마음과 몸에 평화를 선사한다.

작은밥돌에겐 최고의 저녁 식탁이 기다리고 있다.

 

 

< 2007. 5. 28. 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