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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코헴·낭시·스부·뷔부

10월 14일 (토) : 알테마인교의 하루

어젯밤에 마신 맥주가 과하지 않음에도 웬일인지 속이 부대낀다.

환상적인 대구필렛감자조림과 카푸치노를 다 챙겨먹은 후 하늘을 보니 구름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율리우스슈피탈 : 종합병원
종합병원

오전 내내 뒹굴거리다 정오가 되어 길을 나섰다.

우선 EDEKA에 들러 그동안 모아둔 맥주병들을 기계에 넣어 Pfand-보증금-의 환불 영수증을 받았다.

동네 마트 2곳에서 판매하는 맥주는 모조리 다 병맥주였는데, 독일에서 맥주병 보증금은 8센트, 캔과 페트병은 25센트다.

 

토요일, 우리의 첫 발걸음은 Krankenhaus-종합병원-을 향해 내딛었다.

율리우스프롬나드 정류장에 내려서, 밖에서 봐도 길고 거대한 규모인 율리우스슈피탈-병원-의 바깥쪽 출입문에 들어섰다. 

 

종합병원
종합병원 와인

율리우스슈피탈은 1579년 당시 주교인 율리우스 에히터가 지은 대형 자선병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45년 3월 16일, 총 400톤에 달하는 256개의 폭탄이 도시에 투하되었을 때, 율리우스슈피탈 건물도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다만 이전에 있었던 두세 번의 소규모 폭격 때와는 달리 지하로 대피한 환자들은 모두 살아남았다고 한다. 

 

거리에 맞닿은 병원 바깥쪽 출입문은 열려있어서 건물 외관과 긴 회랑, 근사한 중정과 병원 같지 않은 정원을 둘러볼 수 있었다.

건물 출입문에서 멸지 않은, 사람들 왕래가 많은 곳의 벽면에 벽감을 만들어 Juliusspital율리우스슈피탈 와인을 전시하고 있다.

율리우스슈피탈 재단엔 양조장이 딸려있고, 스트라스부르 종합병원처럼 이곳 병원 안에도 와인 저장고가 있다고 한다.

 

뷔르츠부르크대성당
구시청사
구시청사

구시청사 앞에서 보이는 알테마인교 초입은 대낮인데도 인파로 아주 북적거린다.

구시청사에 들어가니 1945년 3월 16일, 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가 무참히 파괴된 역사와 상황을 보여주는 전시실이 있다.

전쟁이란 누군가의 탐욕으로 시작되어 한편 또는 양편이 모든 것을 잃어야 끝나는, 무의미하고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짓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뷔르츠부르크 모형

사흘 전, 대낮의 뜨거움에 치여 제대로 볼 수 없던 알테마인교로 이제 가볼까.

인도교인 석조 다리 초입의 낭만 가득한 와인 가게는 매일 문전성시에, 매시간 흥행몰이 중이다.

구름 짙은 알테마인교에서 내려와 한적하고 평온한 마인강변을 천천히 걷는다. 오, 알테마인교보다 여기가 더 좋은데.

 

알테마인교
알테마인교
알테마인교

도시의 가장 오래된 다리 위엔 성인들의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고 하늘엔 여전히 구름이 가득하다.

강변을 지나던 백인 중년여인들이 남편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열댓 여인들의 즐거운 얼굴을 더 즐겁게 찍어주는 남편.

알테마인교 위 구름은 푸른 하늘에게 조금씩 자리를 양보하지만, 마리엔베르크 근처 구름은 비켜주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만큼 한참을 기다려 디카에 담은 마리엔베르크 요새 모습, 구름에 둘러싸인 정경도 아주 근사하다.

 

마인강과 마리엔베르크 요새
알테마인교
숙소 가는 트램 : 구형 트램인데도 출입문 앞에 휠체어 공간이 있음. 예전부터 장애인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었던 도시.

다시 알테마인교 위로 올라와, 휴식을 취하러 숙소로 간다.

EDEKA에 들러 아침에 눈여겨봐두었던 수제 감자샐러드를 무게로 달아 구입하고 요거트와 브레첼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점심은 냉장고에 남은 거의 모든 식재료인 계란, 숙주나물, 호박, 양송이버섯을 넣은 건강식 잔치국수 그리고 감자샐러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널브러져 있는 중간 휴식 시간은 거의 필수다.

어떤 날은 오전은 푹 쉬고 오후에 나가기도 하고, 낮에 찔끔 외출한 것이 전부인 날도 있다.

은퇴를 한 후엔 긴 여행이 가능해졌고 한 여행지에 오래 머무는 걸 선호하다 보니 자연스레 여유있는 일정이 된다.

오후 5시 50분, 여행 마지막 날이니 야경-즐기는 편 아님-이라는 걸 보기 위해 다시 구시가로 간다.

 

성요한성당 : 오른쪽
성요한성당
성요한성당

율리우스프롬나드 동편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멋진 건축물은 17세기에 건립된 수도원-Stift Haug- 부속 성요한 성당이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각이라 외관만 볼 요량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중, 성당 안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어 우리도 성당 내부로 들어가보았다.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바로크식 외관에 비해 돔형 천장이 있는 내부는 아주 소박했다. 이곳도 2차대전 이후 복구된 건물일 듯.

입장한 지 얼마 안되어 직원이 성당 출입문을 닫는다해서 오래 보진 못했으나 잠깐 본 성당 내부가 참 곱고 평온했다.

 

트램 : 뷔르거슈피탈 와인 광고
뷔르츠부르거슈트라센반(트램) : 1칸 짜리

며칠동안 바라본 뷔르츠부르크 트램은 대부분 광고로 도배되어 있다.

구형이건 신형 트램이건 외부 전체가 움직이는 광고판이라 특히 구형 트램이 주는 낭만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하긴 트램은 시민의 교통수단일 뿐 광고 수익이 중요하지, 낭만이란 여행자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알테마인교로 가려고 트램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짤막한 올드트램이 눈앞에서 휙 지나간다.

프랑켄와인과 함께 쇼펜익스프레스-쇼핑특급-라 쓰여진 1칸짜리 트램 안에는 6~7명의 승객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식사, 음료 제공은 물론 음악시스템까지 갖춘 파티 트램으로, 이벤트나 행사를 원하는 시민들에게 대여해 준다고 한다.

 

마리엔베르크 요새
알테마인교

알테마인교에서 보는 마리엔베르크 야경이 참 예쁘다.

다리엔 낮처럼, 아니 낮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귀중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지금까지 여행한 유럽 도시 중 오래된 다리 위에서 매일 와인 파티가 열리는 곳은 뷔르츠부르크가 유일하다.

 

구시청사
구시청사 레스토랑
구시청사 레스토랑 : 벽화

구시청사의 예쁜 레스토랑까지 잘 구경한 후, 동네 피자리아 Pino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7시반. 

갑자기 서늘해진 밤 기온 때문에 바깥 자리엔 앉을 수 없고 실내는 완전 만석, 진짜 빈 좌석이 하나도 없다.

 

하는수없이 피자 2판을 포장 주문했는데, 생각해보니 숙소에 맥주가 단 한 병도 없는 것이다.

남편은 피자리아에서 대기하고, 나는 바로 폐점시간 임박한 EDEKA로 다급히 뛰어가야 했다.

아, 뷔르츠부르거맥주가 마트 냉장고-맥주 종류 중 일부만-에 시원하게 보관되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2024년 가을여행의 마지막 저녁은 나폴리식 피자와 뷔르츠부르거 맥주다.

야심차게 세웠던 원래 계획과는 조금 달라졌으나 뭐 어떠하리. 이 또한 여행의 한 바큇살이니까.

여행의 마지막 잔을 부딪치며 우린 서로 소감을 묻고 건넨다.

 

하루가 다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