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저녁, 집에 왔던 아들은 식사를 함께 나누고는 제 공간으로 돌아갔다.
우리 여행 출발 전날이면 늘 짐 싸들고 와서 여행기간 내내 막내를 보살폈는데, 이제 돌볼 막내가 없으니 바로 돌아간 것이다.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으나 챙기지 않은 것들에 대한 생각이 두어 번 떠올라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나니, 새벽 1시쯤에야 눈을 붙였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공항버스는 성수기가 아님에도 거의 만석이다.
1시간반만에 인천공항 1터미널에 도착하여 환전 신청해둔 유로화를 찾고, 아시아나프리미엄카운터에서 5분만에 탑승권을 받아들었다.
탑승객이 많은 시각이었으나 보안검색과 출국심사에 걸린 시간이 30분 안쪽이었으니 최근 공항 상황에 비해 매우 복잡한 건 아니다.


체크인카운터에서는 아시아나라운지를 안내해주었으나 우린 면세품 인도장에 들른 후 싱가폴항공 실버크리스라운지로 들었다.
실버크리스라운지는 29게이트 근처이고 아시아나 이스탄불행 탑승은 23게이트였으니 도보로 10분 이상 걸리는 거리.
그래도 Lot와 루프트한자 탑승 때 서너 번 이용해 본 아시아나라운지 대신, 한번도 가보지 않은 실버크리스라운지를 선택했다.


실버크리스라운지는 아시아나라운지들보다는 좁지만 훨씬 조용하고 평온했다.
직원이 직접 만들어주는 카페라테와 목테일-논알콜칵테일-도 좋았고 정갈한 음식도 괜찮았으며 무엇보다 휴식하기에 제격이다.



탑승 시각에 맞춰 탑승구 앞으로 왔으나 탑승은 15분 늦게 시작되고 그만큼 늦게 이륙하였다.
반 년 전쯤 없어졌다던 웰컴드링크는 역시 서빙되지 않았고, 탑승 후 꽤 시간이 흐른 다음 첫번째 기내식 주문을 받았다.
이스탄불 가는 아시아나 B777-200기의 24석에 이르는, 1-2-1 배열의 비즈니스 좌석이 완전 만석이다.


우린 항공권 예약시 출국 귀국편 모두 가운데 3열로 좌석을 선택했다.
스태거드 타입의 아시아나 비즈니스좌석은 좌우열은 짝수 좌석이, 가운데열은 홀수 좌석이 안쪽으로 배치되어있어 좀더 아늑하다.
그런데, 수납 공간이 너무 적다. 모니터 맨 아래 신발 놓는 공간 말고는 무언가를 둘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이륙 30-40분 후인 오전 11시반, 첫번째 식사가 제공되었다.
나는 쇠갈비구이 쌈밥을, 남편은 블랙트러플 쇠고기안심스테이크를 요청했는데 전채와 주요리, 후식까지 모두 괜찮았다.



1시간 동안 이어진 첫번째 식사 중 꽤 거친 난기류가 발생하자 식사 서빙이 중단되었다.
후식 제공시 발생한 난기류로 인해서는 테이블 위 커피가 순식간에 흘러넘치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번 그리고 매번 오랫동안 난기류가 계속되었는데 겪어본 난기류 중 최다횟수, 최장시간의 무시무시한 난기류였다.



출국기 안에서 처음 고른 영화는 '덕혜옹주'다.
오른쪽 화면을 보니 남편도 나처럼, 아니 나보다 먼저 '덕혜옹주'를 보기 시작했다.
나라 잃은 비애와 조국 없는 고통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 참으로 슬픈 엔딩이다.
서울 시각 오후 2시반, 좌석을 곧게 펴고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눈물이 흐르더니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질 않는다.
여행 후 귀가해도 우리 막내가 없다-강아지별에 잘 있겠지-는 생각이 마음을 스치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서울 시각 오후 4시 50분, 아시아나항공기는 카자흐스탄을 지나고 있다.
난 도토리묵사발, 남편은 라면을 요청해서 나누어 먹었는데 바로 그 아는맛이다. 하늘에서 먹으니 더 맛있다.
두 시간 후 과자류를 요청했더니 블랙김샌드라고 쓰인 김부각 비슷한 간식이 나왔는데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늘 그렇듯 남편은 오늘도 숙면 태세-자리 넓이 좁은 편-이고, 비행기에서 잠을 못 이루는 나는 계속 누워서 휴식했다.
내 자리 왼편에 있는 3A 좌석은 복도와 맞닿아있다.
그 자리에 70대 초반쯤 된 젊은(?) 할머니가 앉아있었는데, 잘 자고 잘 보고 잘 드시면서 비행을 즐기듯 했다.
중간에 손자로 보이는 6,7세 남자아이가 할머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이코노미석 쪽으로 돌아가는 걸 보니, 가족여행을 하면서
노령의 어머니만 비즈니스석을 태워드린 것 같았다. 그 심성이 참 착하고 애틋하다.


두번째로 선택된 영화는 '말모이', 전에 보았으나 한번 더 감동해 보려 한다.
서울 시각 오후 8시반, 이스탄불 시각으로 오후 2시반, 두번째 식사가 서빙되기 시작했다.



나도 남편도 모두 한라봉간장 광어구이를 요청했는데 본식보다 전채인 카프레제샐러드와 후식 딸기무스케이크가 더 나았다.
항공기는 점차 도착지에 가까워지고 인천에서 늦게 출발한 시간만큼 15~20분 늦게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넓은 이스탄불 공항, 입국심사 장소까지 꽤 걸었고 심사부스 앞 대기줄이 상당히 길다.
캐리어는 금세 나오고, 곧바로 탁심광장 가는 16번 공항버스 정류장-배차 30분 내외-으로 향했다.
여행 전에 미리 환전해둔 KB트래블러스카드로 승차시 요금 결제가 가능했고, 버스 안이 승객으로 가득차니 정해진 출발 시각보다
15분 이른 오후 5시 40분에 공항버스가 출발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탁심 근처 공항버스정류장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고 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도보 4-5분 거리다.
탁심 광장 근처 오래된 건물 3층-우리식 4층-에 자리한 숙소엔 엘리베이터 없이 오르내리기 불편한 나선형 계단만이 있다.
캐리어를 끌고 힘겹게 숙소에 올라 짐을 풀고, 1분 거리 미니마트인 Migrosjet에 들어서니 우리나라 편의점 규모라 별로 살 게 없다.
숙소로부터 미그로스젯까지 오가는 짧은 구간에, 레스토랑 호객꾼들이 4~5m마다 악착스럽게 달려든다.
처음 온 이 도시, 만만치 않은데.
직항으로 날아왔으나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고단하고 피곤하다.
간식을 챙겨먹고 아들에게 안착의 톡을 보내고는 오후10시, 이스탄불의 첫 밤을 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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