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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서유럽 이야기

독일 1 : 성벽 속 중세 마을

미리부터 날씨 걱정을 싸안고 있는 건 역시 쓸데없는 소모전이다.

일기예보 사이트에선 3월말 날씨의 혹독과 변덕을 알리고 있었기에, 비나 눈이 쏟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상황.

 

생각보다 괜찮은 날씨다. 흐린 아침 7시반, 독일로 향하는 마음은 마냥 하늘을 날 듯하다.

승용차엔 이미 네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었고 예약한 로텐부르크 숙소의 주소까지 완벽히 입력되어 있다.  

 

9시 50분, 독일로 들어섰고 고지대인 파사우엔 가느다란 눈발이 날린다.

고속도로 저쪽 너머에 많은 눈이 쌓여있는 걸 보니 며칠 사이 꽤 많은 눈이 내렸나 보다.

 

대부분의 구간에서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 고속도로는 통행권이 필요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무료.

뉘른베르크를 지나 길가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파사우에 이어 두번째 휴식인데,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간다.

다행히 운짱인 큰밥돌도, 보통은 장거리 승차를 힘들어하는 작은밥돌도 오늘은 최상의 컨디션이다.

 

가는 길이 평이하긴 했지만 이렇게 쉽게 목적지에 닿은 건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네비게이션의 절대적 도움 덕. 

로텐부르크 성벽 바깥쪽에 주차를 시도하다가 성벽 안으로 차를 들였다.

                                       

마르쿠스 탑 옆 호텔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하다 금세 멈춘다.

우와, 거리가 정말 예쁘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그대로잖아.

세계 2차 대전 당시 40%이상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한 로텐부르크(Rothenburg ob der Tauber)는 중세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성벽 도시다.

 

슈네발
슈네발

로텐부르크의 명물 과자인 슈네발(Schneeball)부터 얼른 입에 물었다.

영어론 Snow Ball인 셈인데, 바짝 각오를 하고 먹어서 그런지 많이 달진 않다.

성벽을 따라 걷는 길, 한 호텔 앞엔 알락달락한 부활절 계란이 과실처럼 나무에 걸려있다.

 

성벽 안 서쪽에 자리한 부르크정원에서는 성벽의 다른 편과 성벽 바깥 낮은 지대의 평화로운 정경이 한눈에 잡힌다.

저 아래 보일듯 말듯 흐르는 강이 타우버강이라는데, 저리도 좁고 구불구불한데 강이라니.

 

마르크트 광장

매시 정각에 볼 수 있다는 의원연회관의 작은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마을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으로 왔다.

광장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의원연회관의 중앙에 걸린 시계 양쪽엔 크지 않은 창문이 달려있는데, 

드디어 3시가 되자 창이 열리면서 한쪽엔 장군이, 다른 창엔 술잔을 든 시장이 보인다.

 

그러더니, 아니 그러다 말더니 그냥 창이 삐걱 닫힌다.

뭐야, 설마 이게 끝? 꺾었던 목을 바로하며 작은 밥돌의 한마디, '뭐니, 이게 뭐니'.

'마이스터트룽크'라 불리는 이 인형은 17세기, 30년 전쟁 당시 스페인 장군으로부터 포도주 통을 단숨에 마시면

시민을 학살하지 않겠다는 제안을 받은 시장이, 포도주 한 통을 다 마셔 시민들을 구해낸 이야기를 재현한 것이다. 

담긴 의미는 깊고도 가상했지만 그 전달력이 너무 약했다.

 

로텐부르크 성벽

아까 올라가보지 못한 성벽 쪽으로 다시 발길을 옮긴다.

12세기에 처음 지어졌고 이후 두 차례 더 축조된 성벽 낡은 계단엔 사고가 나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내린 눈이 다 녹지 않은 나무 계단이 삐걱거린다.

높은 곳에 오르기를 즐겨하지 않는 내 다리가 슬며시 흔들린다. 성벽을 따라 걷는 기분이 묘하다.

어디선가 예스런 차림을 한 기사와 병사가 나타날 것도 같고, 중세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 촬영팀을 만날 것도 같다.

돌벽엔 2차 대전 후 성벽을 재건할 때 기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이 훈장처럼 붙어있다.

독일인은 물론, 일본인, 중국인 이름까지.

 

뢰더문

성벽을 내려와 로텐부르크의 관문 격인 12세기 건축물인 뢰더문 밖으로 나와본다.

문 밖도 역시 로텐부르크인데, 성벽 안과 약간은 다른 정취가 펼쳐진다.

아, 좋다. 동화 같은 마을도 좋고, 영화 같은 성벽도 정말로 좋다. 

 

다른 유명 여행지들도 대부분 그렇지만, 로텐부르크 건물들의 1층도 기념품 상점이거나 레스토랑이다.

로텐부르크의 상징이기도 한 예술적인 간판들을 구경하다 기념품 가게 순례에 들어갔다. 

마을 건물 모형, 갖가지 인형, 화려하거나 아기자기한 장식품들, 다른 여행지에서보다 훨씬 재미나고 신난다. 

그 중 밥돌들의 관심을 끈 건 단연 무기다. 무기류와 투구, 갑옷 등이 전시된 상점에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플뢴라인

잠시 숙소에 들었다.

큰밥돌은 바로 단잠에 빠지고 작은밥돌은 해리포터가 방영되는 TV에서 눈을 모른다. 

나는 탁자에 앉아 여행 일정을 정리하고 있다.

 

저녁식사 하러 간 레스토랑 입구에 그곳이 맛집임을 알리는 작은 한국어 안내문이 있다. 

그앞 입간판엔 일본어 메뉴판이 있다고 크게 쓰여져 있는데 로텐부르크엔 정말 일본인 여행객이 많았다. 

"Merci, merci~" 서빙하는 아저씨가 자꾸 프랑스어를 내뱉는다.

거리엔 늦겨울 같은 찬 바람이 불고 있다. 

 

< 2008. 3. 22. 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