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탐사('04~08)/서유럽 이야기

독일 3 : 오래된 로만틱

하이델베르크 캐테 볼파트 (Kaete Wohlfahrt)

점심을 먹고 나온 하이델베르크 거리에 로텐부르크에 본점을 둔, 그러나 어제 로텐부르크에선 미처 들어가보지 못한

크리스마스 상점 캐테 볼파트(Kaete Wohlfahrt)가 있다.

1년 내내 크리스마스 상품을 판매하는 이곳의 내부는 바깥에서 만난 진열장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처음 보는, 크고 작은 갖가지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어찌나 많은지 하나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고 들뜨면서 신나기만 했다.

 

캐테 볼파트 (Kaete Wohlfahrt)

거실 장식장 한 켠을 장식할 공예품을 사든 채 아직 건너지 못한 네카 강으로 향한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내려다보였던 폭 좁은 석회빛 강.

네카 강으로 가는 길에 띈 예쁜 간판, 그 상점에선 초콜렛을 판매하고 있었다.

키스처럼 달콤쌈싸름한 초콜렛이라, 아주 적확하고 환상적인 비유다.

 

초콜렛상점 간판
알테 브뤼케
하이델베르크성과 네카강

네카 강에 걸려있는 카를테오도르 다리는 알테 브뤼케-'오래된 다리'의 뜻- 라고도 불리는데, 나무로 지었던 것을

18세기 후반에 다시 석교로 건축했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성 쪽에서 알테 브뤼케를 건너면 성과 마주보는 비슷한 고도에 '철학자의 길'이 있다.

18-19세기의 저명한 철학자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이 산책을 하며 명상에 잠겼던 길이라 하는데, 낮은 기온과

차가운 바람 때문에 강 저편까지 넘어 오르기엔 역시 무리다. 

 

다시 돌아온 하우프트거리에서 희곡 '알테 하이델베르크'에 등장하는 주점 '붉은 황소(Roten Ochen)'를 찾아갔다.

이 희곡은 1954년 '황태자의 첫사랑'이란 이름으로 영화화되는데 난 이 영화를, 사람들이 주점에서 잔을 들고 

'drink, drink'하며 노래 부르는 장면밖에 못 보았기에 영화 속 주점이 이 Roten Ochen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게다가 일요일이라서인지 부활절 연휴이기 때문인지, 1703년에 개업했다는 이곳이 오늘은 휴업이다.

 

Roten  Ochen

로텐부르크로 돌아오는 고속도로 가장자리엔 주변에 '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푯말이 여럿 보인다.

그러나 쌓인 눈과 흐린 날씨 때문에 우리가 발견한 성은 고작 두어개, 고성가도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앞차만 보고 달린다.

 

속도 제한 없는 고속도로엔 차들이 무섭게 질주한다.

오며가며 느낀 것이지만 독일의 고속도로는 상태가 굉장히 좋아서, 차들이 속도감을 의식하지 못하고 미끄러지듯 주행한다.

역시 무한 속도의 도로는 세계 최고의 시설과 자부심 없이는 시행될 수 없는 것이다.

 

로덴부르크 마르크트광장

돌아온 로텐부르크는 이미 어둠에 싸여 있다. 간단한 저녁을 먹고 밤 풍경 벗하러 숙소 밖으로 나왔다.

인적 없는 마르크트 광장엔 흐릿한 불빛만이 길 안내를 하고 있다.

 

로텐부르크 캐테 볼파트(Kaete Wohlfahrt)

크리스마스 상점인 캐테 볼파트(Kaete Wohlfahrt)의 진열장엔 불이 환히 밝혀 있다.

상점 정문 쪽 내부를 기웃거리는 우리 옆에, 한국말을 주고받는 남녀 한쌍이 가벼이 걷고 있다.

 

뿌연 가로등만이 지키고 있는 거리에 상점들의 불빛은 유난히 밝고 환하다.

디오니소스를 만나고 맥주 잔을 마음에 담고, 진열장을 구경하며 늦지 않는 밤길을 쏘다니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고성가도와 로만틱가도가 잇닿은 이 작은 도시가, 오랜 친구가 되어 추억을 적신다.

 

레스토랑에 들어 맥주를 주문했다.

전통 의상 입은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답하고, 우리가 앉은 탁자 저편에선 부모와 아들의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하이델베르크, 정말 감동적이었어.

그러게, 내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 아니 감동이 생긴다니까.

우리 탁자에서도 작은 소근거림이 이어진다.  짧은 여행의 마지막 밤이 아쉽고 또 아쉬워서.

 

< 2008. 3. 23.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