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2015 빈

7. 31 (금) : 다시 올 기약

빈을 떠나는 날, 새벽 내내 뒤척였다.

LA에 도착한 남편과 톡으로 몇마디 주고 받은 후, 간단히 식사를 한 다음 짐을 쌌다.

 

근데, 어제 저녁에 짐을 캐리어에 챙겨볼 걸 그랬나보다. 별로 산 것도 없는데 캐리어만으로는 해결 불가다.

넘치는 물건은 일단 스파비닐쇼핑백과 면세품쇼핑백에 이중으로 넣어두고, 그것들을 공수할 백팩을 구입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상점들이 모여있는 그곳으로, 1주일동안 셀 수 없이 오갔던 그곳으로 간다.

 

약국
피자리아

어제 보았던 미용실 앞을 지나고, 뱀을 형상화한 간판이 걸린 약국-Apotheke, 약국 로고- 앞을 지난다.

고대의 뱀은 의술과 예지력을 상징했는데, 뱀이 지팡이를 오르는 모습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다.

맛있는 이탈리아 피자를 선사해 주었던 레스토랑 로마, S-Bahn 렌벡 역을 알려주는 이정표까지, 1주일을 함께 했던

이 모든 것이 뭉클하기만 하다.

 

빌라(마트)
호퍼(마트)
아랍인이 운영하는 만물상

백팩을 찾기 위해 아침 8시부터 호퍼는 물론 문 연 가게 모두 다 살펴보았지만 마땅치 않았다.

아랍인이 운영하는 만물상에선 작은 캐리어와 백팩을 판매하긴 했지만 색상이나 모양이 형편없이 미웠다.

그래, 그냥 들고 가자. 쫌 쪽팔리는 비주얼이긴 하지만, 뭐 어때.

 

9시가 넘어 숙소를 떠날 준비를 마치고 캐리어를 확인하니, 캐리어가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오스트리아 항공은 수화물 무게는 20kg까지 허용되고 초과 중량에 대해선 정확하게 오버차지를 부과한다.

결국 캐리어의 짐을 조금 덜어 쇼핑백에 넣은 후, 3층에 위치한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건물 1층 출입문을 나가기 전 다시 캐리어를 들어보니 분명 20kg이 넘을 듯하다.

캐리어를 다시 열어 1kg정도의 짐을 빼는 동안, 젊은 남자 주민 두셋이 내 곁을 지나가며 밝은 인사를 한다.

안녕, 캐리어 뚜껑 열어 짐을 옮겨담는 내 비주얼이 별로인데도 유쾌히 인사 건네는 빈 시민들, 당케.

 

빈 공항
빈 공항
빈 공항

빈 공항에 가기 위해서 빈 숙소로 올 때처럼 18번 트램을 오른다.

짐은 많아 죽겠는데, 구형 트램이 오는 바람에 트램 계단 오르기-신형트램은 저상형- 참 힘들다.

두 정거장 후, St.Marx역에서 공항 가는 S-bahn을 타면 되는데-티켓은 1존만 추가구입- 역시 짐이 문제다.

기차에 캐리어를 올리기 힘겨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10대 청소년이 얼른 거들어준다. 당케제어~

 

빈 공항에 도착하여 오스트리아항공의 체크인카운터로 가니, 기계로 셀프체크인을 하라고 한다.

할 줄 모른다고 하니-오사카공항에서 해본 적은 있음- 직원은 시도해보라고 용기를 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나는 기계가 시키는 대로 했음에도 셀프체크인 실패다.

결국 안내직원에게 도움을 받아 셀프체크인을 하고나니, 그는 카운터 중 하나를 가리킨다.

카운터에서 측정한 캐리어 무게는 댜행히도 19.6kg, 도쿄을 거쳐 서울까지 가는 두 장의 티켓을 받았다.

 

빈 공항
빈 공항

G케이트 앞에서 검색대를 통과하고 출국심사를 한다.

기내로 들고가야 할 쇼핑백이 꽤나 무겁지만 빈 공항의 하늘은 맑고 푸르다.

탑승구 앞에서 유난히 떠드는 20대 남자 넷은 한국어를 말하고 있고, 간간히 들리는 일본어는 시끄럽지 않다.

도쿄행 항공기에 탑승하고 보니 그 남자들이 바로 앞줄이고 그들은 내 슬픈 예감에 맞춰 의자를 마음껏 젖힌다.

1주일 전, 도쿄에서 출발할 때 내 앞줄에 앉아 뒷줄 승객을 배려하던 일본인들과 정말 대조된다,

 

나리타 공항

자다깨다를 반복하다-보통 기내에서 1시간도 못 잠- 10시간 반만에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환승 검색대를 거쳤고, 탑승구에서 멀리 떨어진 의자에 길게 누워 쉬고 있는데, 내 이름이 불린다.

나리타에서 인천까지 가는 항공사는 아시아나인데, 내 항공권은 오스트리안 발행티켓이니 아시아나티켓으로 바꾸어야 한단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2시간 동안 정신 못차리고 꿈속을 헤맸다. 인천공항의 탑승교가 무더위로 후끈거린다.

8월 1일 토요일 오후, 서울 우리집도 무더위 속에서 정신없이 후끈거린다.

꿈속처럼 아직도 빈에 있는 듯하다. 내마음은 늘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