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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7 런던

10. 4 (수) 전 : 런던타워에 어린 비애

런던타워

오늘도 역시나 새벽에 떠진 눈.

우연히 2for1 카드에 관한 검색을 하다가 내셔널레일카드만으로는 할인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역에 비치된 브로셔의 쿠폰-이걸 챙겼어야 함-이나 홈페이지 예약이 필요했고, 그리하여 남편은 재빨리 홈피를 통해

런던타워 예약을 한 후 리셉션에서 인쇄까지 완료했다. 런던타워 가기 전에 알게 되어 정말 다행.

갑자기 항공권을 구하고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준비를 하니 역시 놓치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아침식사 후 8시 조금 넘어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에서 멀지 않은, 예약한 아파트의 리셉션을 찾았다.

3박의 숙박비-런던은 비싸다-를 먼저 지불하고 오후에 입실하기로 한 후, 캐리어는 리셉션에 맡겼다.

그리고 리셉션과는 다른 건물에 있는 아파트 위치를 미리 확인하니 세상에나, 반지하에 위치한 객실이다.

 

여행하면서 반지하에 객실이 있는 경우는 처음 보았고 부킹닷컴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기에 놀랄 수밖에.

그러고 보니 이 근처 건물마다 반지하에 방이, 아니 집이 있었던 것 같긴 하다.

암튼 다시 리셉션에 가서 객실 교체를 요청했지만 오늘은 빈 객실이 없으니 내일 3층 객실로 바꿔준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나. 이번 여행에서 숙소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한 문제 거리다.

 

타워브리지
타워브리지
타워브리지

8시 50분,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에 오른다.

Towerhill역에 하차하니 눈에 먼저 들어와 준 타워브리지, 여전하구나.

250m 길이의 타워브리지는 1894년에 초코브라운색으로 완공되었고 19977년에 현재 색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2006년 12월에 저 타워브리지를 낮에도, 또 밤에도 보기 위해 4일간의 여정 동안 두 번이나 근처를 기웃거린 기억이 떠오른다.

 

런던타워
런던타워

2for1 카드에 심혈을 기울인 덕분에 우린 런던타워 입장은 반값-1인 28£가 아닌 2인 28£-으로 해결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런던타워는 영국 왕실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중세의 성이다. 

분명히 성인데, 이 건축물을 왜 성(城)이나 궁(宮)이라 이름 붙이지 않고 타워(塔)라 이름했을까.

 

블러디타워

런던타워 안에 지어진 크고 작은 건축물마다 타워라고 명명되었기 때문일까.

아는 것 없는 내 눈엔 차별성 없이 비슷비슷해 보이는 건축물들이 무채색 구름 몰린 하늘 아래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어느 타워엔 무기들이, 어느 타워엔 무시무시한 고문 기구들이, 또 어느 타워엔 감옥과 처형장이 자리해 있다.

여기, 참 무겁고 거칠고 어둡고 답답한 곳이다.

 

블러디타워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한 후, 그의 동생인 리처드는 죽은 형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두 왕자를 블러디타워로 데려갔다.

그 후 두 왕자는 완벽하게 종적을 감추었고 에드워드 4세의 동생 리처드는 왕이 되었다.

2세기가 지난 후 화이트타워에서 두 어린이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사람들은 실종되었던 두 왕자라 믿었다 한다. 

핏줄마저 피를 뿌리는, 권력을 잡기 위한 잔혹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를 바 없는 것일까.

 

왕실 보물관 입구
전쟁 박물관

런던타워 안 왕실의 보물관엔 세계에서 가장 큰 530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한다.

촬영 금지이긴 했지만 보물관 안에서 다른 화려하고 호화로운 것들과 함께 분명히 내 눈으로 보았을텐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희곡 '헨리 8세'와 영화 '천일의 앤'의 주인공인 앤 불린이 간통죄로 처형된 장소도 런던타워다.

헨리 8세는 형이 죽자 형수였던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하고 1509년 왕위에 올랐다.

1527년 헨리 8세는 캐서린 왕비의 시녀인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캐서린과 이혼하려 했으나 교황은 이를 거부한다.

결국 1533년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결혼을 하였고 영국 교회와 로마의 교회를 분리시키게 된다.

 

앤 불린

헨리 8세(1491-1547)는 여섯 명의 왕비를 갈아 치운 여성 편력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게다가 헨리 8세는 여섯 왕비 중 두 번째 왕비 앤 불린과 다섯 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를 처형했을 정도로 무서운 군주였다.

그가 그토록 많은 왕비를 갈아 치운 이유 중의 하나는 후계자로 삼을 왕자를 얻기 위해서였는데, 하지만 그는 여섯 왕비에게서

겨우 한 명의 아들과 두 딸밖에 얻지 못했다고 한다.

 

런던타워를 거닐었던 두어 시간 동안 몇 백 년의 역사를 건넜고 몇 천 년 같은 비애를 쏟아진 듯하다.

식민지가 끊이지 않았던 나라였기에 해가 지지 않았던 나라였던 곳, 그것을 유지하고 이끌기 위해 자행되었던 잔악한 비애가

런던타워의 대기에도 어려 있는 것일까. 런던에서 안정되고 정갈한 질서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이와도 관련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