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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7 런던

10. 5 (목) 전 : 영국박물관의 조각들

정확히 새벽 4시, 눈이 떠졌다.

이 시각에 위층에선 체크아웃 준비를 하는지 발소리가 쿵쿵거린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남편은 어제 런던 근교 뉴몰든에 사는 친구 만난 이야기를 한다.

친구는, 우리가 의문을 가졌던 '런던시민의 빈약한 질서 의식'에 대해 답을 해 주었다고 한다.

 

영국의 법과 질서는 가난한 자 입장에서 집행되며, 같은 죄를 짓더라도 가난한 유색인종-식민지였던 인도인 등이 많음-보다

백인들에게는 2배 이상의 처벌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법규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되었을 때 당사자의 경제력을 고려하여

벌금 등을 매기게 된다는 것인데, 이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얘기다. 이런 나라가 꽤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신호 위반이나 무단 횡단 등 기본 질서를 지키지 않은 런던 시민들을 며칠동안 너무나도 많이-대다수- 보았는데,

이들이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라서 벌금이 아주 미약하고, 그런 이유로 법을 지키지 않아도 용서와 이해가 된다는 의미인지.

튼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와는 다른 런던의 무질서와 그 이유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영국 박물관
영국 박물관

9시 조금 넘어 이 객실에 대한 체크아웃을 한 후, 캐리어를 맡겼다. 

내리던 비는 금세 그쳤고, 우린 튜브를 타고 영국박물관으로 향한다.

아, 맑디 맑은 하늘, 그 하늘 아래 그리스신전 양식의 영국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영국박물관 천장인 그레이트 코튼 아래, 11년 전엔 중앙에 원형 도서관이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그곳이 막혀 있다.

우선 기념품샵부터 먼저 둘러본 후 전시실로 이동하다가 떠오른 생각, 예전에 전시실 초입 계단 쪽에 있던 '원반 던지는 사람'은

왜 보이지 않을까.

 

람세스 2세 흉상
로제타 스톤
로제타 스톤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이자 가장 위대한 파라오라고 불리는 람세스2세는 67년(기원전1279년~1213년)이나

이집트를 통치했다. 국가의 번영을 이룬 행정가였고 히타이트족·리비아족과의 전쟁 이외에도 방대한 건설사업을 했으며 

이집트 곳곳에 거대한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국박물관의 '젊은 멤논'이라는 람세스 2세의 화강암 흉상은 테베의 람세스 신전에서 발굴되었다.

처음 운반을 시도했던 나폴레옹 원정대는 오른쪽 가슴에 구멍만 남긴 채 실패했고 이후 1816년 영국으로 운반되었다. 

 

박물관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모여있는 곳은 바로 '로제타 스톤'이다.

이 로제타 스톤의 비문으로 인해 이집트 상형문자가 해독되었다고 한다.

길이 114㎝, 폭 72㎝의 로제타 스톤은 1799년 알렉산드리아 북동쪽의 로제타 마을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멤피스의 사제들이 쓴 비문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BC 205~180)의 은혜를 요약하여 표현했으며, 이집트어와 그리스어의

2가지 언어와 상형문자·민용문자(이집트상형문자 필기체)·그리스 알파벳의 3가지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프로디테
네레이드 제전
파르테논 신전의 흔적

네레이드 제전은 물의 신 네레우스와 님프 도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바다요정 네레이드들이 조각돼 있어서 네레이드 제전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기원전 4백년 산토스지역 통치자가 묻힌 통치자 묘의 유적이라고 한다.

파르테논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으로,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 중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그리스가 오스만제국에 정복당한 후, 오스만은 파르테논을 화약창고로 사용했고 1687년 베니스의 공격으로 신전이 훼손되었다.

1806년, 영국의 엘긴 경은 오스만으로부터 남아있는 파르테논 조각을 구입하여 수 년 동안 영국으로 운반했고,

그리스 정부는 이 조각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도 영국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여행 성수기가 아니어서 깊은 호흡으로 전시실을 둘러보았지만 예전에도 그러했듯 역시 가볍지가 않다.

전시물들 중 자국의 역사와 문화와 관련된 것이 몇이나 되는지, 왜 모조리 남의 나라 것을 약탈하듯 들고온 것들만 있는지,

유적과 유물을 돌려달라는 주인 국가의 외침은 왜 외면하고 있는지.

 

앗시리아 유적

히타이트를 물리치고 세운 앗시리아는 기원전 25세기에서 기원전 612년까지 지금의 중동에서 가장 강성했던 나라였고

고대 앗시리아 제국, 중기 앗시리아 제국, 신앗시리아 제국으로 분류된다. 신앗시리아 제국은 아슈르바니팔 왕 사후에

왕권 다툼 등의 내분으로 약화되었고 기원전 612년 신바빌로니아와 스키타이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다고 한다.

1800년대 중반 영국 고고학자들이 니네베 등의 도시를 발굴하면서 앗시리아 유적이 발견되었고 역시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엄청난 고대 국가였지만 지금은 몇몇 유적으로만 이름이 남아있을 뿐, 오랜 제국의 흥망성쇠가 허망하기만 하다.

 

박물관은 과거를 보여주고 있지만 현재를 살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미래를 나아가야 하는 방식을 제시하기도 한다.

삶에 있어 정답이란 없지만 인생의 가을을 향하는 지금쯤은, 잘못된 선택지를 구분하는 눈은 필요할 듯하다.

비도덕적이고 비자발적이며 지속적이기까지 한 희생과 양보는 고통과 시련만 낳을 뿐이니까.

 

스핑크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아스클레피오스의 딸, 휘게이아

우리, 두 번째라고 너무 띄엄띄엄 보는 거 같은데...

사실 11년 전만큼 영국박물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기에 전시품은 제대로 보지 않고 전시실을 걷기만 한 것 같다.

그래도 반가운 그리스로마 신화 속 아프로디테, 스핑크스, 아스클레피오스, 휘게이아는 여전히 그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국박물관을 나와 지하철로 향하던 중, 백인 아주머니가 박물관 위치를 묻는다.

영국박물관 이름이 인쇄된 쇼핑백이 우리의 직전 행선지를 알려주었나 보다.

 

스테이크 전문점인 플랫아이언를 찾는 대신 눈 앞에 보이는 itsu로 들어가는 편을 택했다.

초밥은 괜찮았으나 만두 올린 우동은 실패다.

면발이 신통치 않았고 내키지 않은 오묘한 향까지 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