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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8 뮌헨·잘츠부르크·빈

8. 7 (화) : 빈에서만 떠나다

빈 구시가

오늘은 빈을 떠나는 날이고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그러기에 남아있는 식재료들을 모두 해치워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즉석밥과 즉석짜장, 소시지, 계란은 물론 후식 요거트까지 완벽하게 뱃속에 넣고는 정리정돈까지 완전무결하게 마쳤다.

 

10시 25분, 숙소를 나선다.

37번 트램을 타고 쇼텐토어까지 1정거장을 이동한 후 다시 1번 트램으로 10여분 움직이면 슈베덴플라츠다.

구형 트램은 그 정취가 비할 바 없이 멋스럽지만 계단이 있기에 캐리어를 든 여행자에겐 엄청난 고난인데, 우린 운좋게도

빈을 떠나는 날 승차한 두 트램이 모두 저상형 트램이었다.

 

슈베덴플라츠에서 공항가는 버스 내부

11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이미 슈베덴플라츠 정류장에 대기 중이었다.

아, 근데, 버스도 신형인가, 캐리어를 바깥 쪽에 싣고 승차하던 예전의 버스는 사라지고, 버스 안까지 캐리어를 들고 올라 

다시 정해진 짐칸에 들어올려 실어야 했다. 아, 힘들다.

 

20분 만에 도착한 빈 공항, 데스크에 있는 직원이 몇 안 되는 걸 보니 몇 년 새 엄청난 속도로 기계화가 되었나.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빈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계에 여권을 스캔하여 수화물 택을 직접 뽑으면 체크인데스크 입구의 직원이 캐리어에 부착해 준다.

그리고는 데스크 앞에서 수화물을 위탁하면서 캐리어 무게까지 직접 체크해야 했는데 무려 3kg 오버다.

캐리어를 열고 짐을 꺼내 쉬리언니와 영후배에게 맡긴 후 다시 무게를 재니 OK란다.

 

 

빈 공항의 오스트리아항공 데스크

출국장으로 입장하여 바로 검색대를 통과했다.

예전엔 출국장으로 들어오면 면세점샵들을 먼저 만났고 검색대는 탑승구 바로 직전에 있었는데, 많이 달라진 빈 공항이다.

 

탑승 시각까진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기에 우린 빵과 물을 구입해 휴식을 취하며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런데, 14시 10분 출발 예정이었던 프랑크푸르트행 항공기가 14시 55분 출발로 지연된다고 모니터에 뜬다.

시간이 좀더 흐르자, 16시 50분으로 지연 출발한다고 안내되는데, 그러면 프푸에서 서울 가는 항공기를 갈아탈 수 없다.

근처 게이트 직원에게 문의하니 오스트리아항공 데스크로 가보라고 한다.

데스크 앞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보니 우리보다 훨씬 앞 순서인 한국인 20대 자매도 우리와 똑같은 상황이다. 

 

그 사이, 탑승 예정이었던 프푸행 루프트한자 항공기는 공항 안전보안 문제로 끝내 결항되었다는 안내가 흘러나온다.

휴대폰의 루프트한자앱을 통해서도 항공기가 결항되었으니 대체 항공기를 이용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프푸 공항 보안구역에 1명 이상의 생명체가 무단 침입하여 공항 일부가 폐쇄되었고, 그 결과 49편의

항공기가 결항되었다는 소식이 우리나라 뉴스에도 보도되었다고 한다.

탑승 예정이었던 항공기는 프푸에서 비엔나로 온 후 다시 프푸로 돌아가는 항공기인데 공항 소동으로 프푸에서 출발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프푸발 서울행 항공기는 정상 구역이라 서울로 제시각에 출발했다고 한다.

 

비엔나발 파리행 오스트리아 항공

한참을 기다려 오스트리아항공 데스크에서 받은 대체 항공권은 그 자매들처럼 오스트리아항공을 타고 파리까지 간 후,

파리에서 대한항공으로 인천까지 가는 항공권이다. 단, 파리 가는 항공권은 정식 탑승권으로 받았으나 서울행 항공권은

예약 확인서만 건네주며 파리 대한항공 탑승구에서 직접 탑승권을 받으라고 한다.

출발 예정 시각을 30분 넘긴 5시 50분에 빈을 떠난 항공기는 7시50분, 파리 샤를드골 공항 2터미널 D에 도착하였고,

다시 9시에 출발하는 인천행 항공기를 타야 하니 서둘러야 했다.


대한항공은 2터미널 E에서 출발한다.

파리 공항의 터미널 1,2,3은 각각 셔틀트레인으로 이동해야 하고 같은 터미널이라 해도 그 거리가 먼 경우도 많다.

게다가 항공기를 내린 2터미널 D에서 대한항공을 탑승할 E로 가는 도중에 출국 심사까지 거치느라 긴 시간이 소요되었기에

우린 혼이 빠지도록 걷고 뛰고 또 이동 버스까지 탄 후 겨우 대한항공 탑승장소인 Gate L 앞에 도착했다.

심지어 우리보다 먼저 우리와 같은 대체 항공권을 받은 그 자매들보다 먼저 말이다.

 

그러나 우린 대한항공 한국인 직원이 건네는 청천벽력 같은 말에 우리의 귀를 의심했다.

빈 공항 직원이 '항공권 변경'이란 것을 하지 않아서 우리가 받은 항공권으로는 탑승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명백하게 직원이 잘못한 것이고 자기들도 우린 돕고 싶지만, 빈 공항에서 처리하지 않은 일이라 어쩔 수 없단다.

지금 빨리 루프트한자 데스크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1터미널로 가라고한다.

그렇게 우리 넋이 빠지는 사이,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한국인 자매는 대한항공 항공기에 무사히 탑승했다.

 

내일 서울에 도착하리란 희망으로 파리 공항 안을 넋놓고 뛰었는데, 이제 어쩐담.

더이상 꺼낼 기운조차 없었지만, 루프트한자 데스크엘 가기 위해 2터미널 D에서 1터미널까지 셔틀트레인을 타야 했다.

게다가 늦은 시각이니 루프트한자 데스크를 찾기 위해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1터미널에 도착해 퇴근하려는 루프트한자 직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여기저기 연락을 취해보더니 모든 업무가 다 끝나서

지금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공항 직원의 잘못으로 이리 되었다고 설명했으나 지금은 방법이 없다고 한다.

 

내일 새벽 4시에 데스크를 오픈할 예정이니 그때 다시 오라 한다.

이미 밤 10시가 넘었고, 공항에서 그나마 안전한 곳을 직원에게 물었더니 직접 안내해 준다. 

우리, 이렇게 파리 공항에서 밤샘하게 된 것인가.

작년 여름에 남편과의 여름여행을 마치며 파리 공항을 떠나면서 10년 후에나 파리에 오겠지 했는데, 단 1년 만에 타의에 의해

파리 공항에서 노숙을 하게 되다니.

 

파리 공항 1터미널

파리 공항의 밤은 만만치 않았다.

여행객도 아니고 파리시민도 아닌 듯한, 목적 수상한 사람들이 대기하는 여행객보다 많아보였다.

아까 루프트한자 직원이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이 분위기 속에서 우린 우리의 가방을 사수했야 했다.

목적 수상한 사람들을 경계하며 자리를 몇 차례 이동했고, 졸음과 싸우며 서울의 가족들과 연락했다.

숙언니 가족의 도움을 받아 8일 저녁에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기로 항공권을 변경했다.

 

원치 않은 파리의 이 밤, 이 새벽.

세월이 흐르면 이 시간들이 고귀한 경험이 되고, 아련한 추억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