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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9 밀라노·베네치아

2. 6 (수) 전 : 산마르코 성당과 종탑

Sant'Angelo 광장이 보이는 이 전망 좋은 스튜디오는 4m가 넘는 높은 천장 덕에 난방을 틀어도 실내가 추운 편이다.

대신 거위털 이불이 매우 따뜻하고 포근하며 라텍스매트리스의 쿠션감이 아주 적당하여 묵는 내내 숙면을 취했다.

물론 어제 초저녁 취침으로 인해 오늘은 깜깜한 새벽 4시에 눈을 떴지만 말이다.

 

산탄젤로 광장

새벽부터 탁자에 앉아 오늘 일정을 논의하며 우유와 커피에 모짜렐라치즈를 곁들였다.

이탈리아 모짜렐라는 말이 필요없다. 단연 최고다.

이른 시각이지만 어제 저녁-된장찌개-에 이어 오늘 아침도 한식-너구리, 김치볶음-을 든든히 챙긴다.

숙소 밖에선 갈매기 소리가 들려오고 스튜디오 안 텔레비전 채널에선 독일어가 흘러나온다.

 

7시 20분, 세월과 바닷바람에 부식된 빛바랜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걷는다. 

작은 광장을 지나고, 짧은 다리를 건너고,  호텔 앞과 상점 앞을 스쳐 지나간다.

썰쌀하지만 맑은 하늘 아래 물길을 멈춘 넓지 않은 석호엔 운항을 기다리는 곤돌라 무리가 가만 모여있다.

 

산마르코 광장의 성당과 종탑
산마르코 광장

산마르코 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하면 안 될까.

신자인 남편이 무신론자인 내게 물었었다. 괜찮지, 근데, 언제 어디로 가지...

미사가 열리는 곳을 찾기 위해서는 대성당 앞 청소부에게 한 번, 성당으로 들어가서는 직접 그 입구까지 데려다 줄 정도로

친절한 남자 직원에게 한 번, 이렇게 두 차례의 질문이 필요했다.

 

산마르코 성당 내 작은 성당엔 몇 사람만이 자리에 앉아 8시에 열리는 미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탈리아어로 진행된 30분의 미사는 8명만을 위한 작은 행사였고,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무언가 숙제를 해낸 듯한 표정을 짓는 남편, 벅차 오르는 심정일까.

 

미사를 마친 후 바라본 드넓은 산마르코 광장은 이른 아침인데도 이미 한중일 패키지 여행객 무리가 쏟아져 있다.

오전에 오를 예정인 산마르코 종탑은 아직 오픈하지 않았기에 광장 시계탑 아치문 밖을 향했다.

아주 오래되지도, 아주 현대적이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음, 좋은데. 맛도 분위기도 가격도 모두 다 만족스럽다.

 

2004년 유럽을 처음 방문한 뒤 2005년부터는 4년 동안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유럽 여러 도시를 여행했고,

그 이후에도 자주 유럽을 들렀지만 우리에게 가장 애증의 국가는 이탈리아다.

여러 번 여행하면서 그들의 얕은 민낯을 자주 보았기 때문인데, 바우처보다 비싼 호텔 숙박료를 요구한 곳도,

택시 요금바가지를 씌운 곳도, 응대 기준도 없고 질서 의식도 없는 곳 모두 이탈리아 도시들이었다.

고대 이탈리아는 위대하였는지 모르나 내 눈으로 본 현대 이탈리아인의 의식은 형편 없었다.

 

산마르코 종탑
산마르코 종탑 입구
산마르코 종탑에서 본 산마르코 광장

9시 30분, 엘리베이터-계단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를 타고 99m짜리 산마르코 종탑으로 오른다.

15세기에 건립된 산마르코 종탑은 부서져 버렸고 현재의 종탑은 1912년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종탑 꼭대기엔 대천사 가브리엘의 금빛 조각상이 있다.

 

산마르코 종탑에서의 정경

하늘은 청명하지만 겨울 바람은 차디 차다.

99m 높이에서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정경은 베네치아가 아니면 접할 수 없는 굉장한 장관이다.

두칼레 궁전이 보이고 산타마리아 델라살루테 성당의 둥근 지붕이 보이고 마조레섬을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그림처럼 떠 있다.

 

산마르코 성당

이른 아침에 미사를 보기 위해 처음 입장했던 곳과 같은 입구로 들어 이번에는 대성당 내부로 향한다.

830년경,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인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건립된 산마르코 대성당은 5개 돔이 지붕을 이루고 있다.

기원전에 제작된 성당 전면의 네 마리 청동말은 13세기 베네치아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것이라 하는데,

외부 것은 복제품이고 대성당 박물관에 진품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산마르코 대성당 내부 중 일부만 공개되기에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물론 봐도 잘 모르지만- 모자이크천장화만 봐도 정교 느낌 강한

비잔틴 양식이다.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등의 카톨릭 성당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S.Angelo 광장

대성당 탐험을 마친 우린 휴식을 위해 숙소로 향한다.

작은 운하를 건너고 상점 구경을 하고 기념품을 구입하는 자유가 으로 즐겁고 소중하다.

산탄젤로 광장이 보이는 스튜디오 안, 중저가 알뜰폰인 내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층고 높은 건물 덕분에 엄청난 울림을

선사한다. 블루투스 스피커가 필요 없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