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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9 밀라노·베네치아

2. 7 (목) 전 : 부라노 가는 바포레토

또다시 새벽 4시반, 눈이 떠지고 정신은 몽롱하다.

뒤척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시각은 6시 40분, 어제 먹고남은 피자를 커피와 함께 먹어주고 세탁기를 돌린다.

8시엔 밥과 즉석미역국과 계란프라이까지 완벽한 한식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부터 얼마나 먹어대는 건지.

 

아쿠아알타를 대처하는 베네치아 대문들
리알토 다리

9시 10분, 날씨도 풍광도 정말 좋은 아침이다.

오늘은 어제 미리 구입한 48시간짜리 교통카드를 이용해서 부라노섬으로 갈 예정이다.

숙소 앞 산탄젤로 선착장에서 1번 바포레토를 승선한 후 부라노섬 가는 12번으로 갈아타기 위해 리알토에서 내렸다.

 

물론 리알토 선착장에서 바로 12번을 탈 수는 없다.

12번 바포레토가 출발하는 F.te Nove(Fodamente Nove) 선착장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했다.

구글맵과 함께 탁월한 공간지각력을 발휘하여 단번에 F.te Nove 선착장을 찾아내는 남편.

 

F.te Nove 선착장 주변

9시 45분쯤 선착장에 도착했으나 가장 빠른 12번 바포레토의 출발 시각은 10시 10분.

리알토 다리의 북동쪽에 위치한  F.te Nove 선착장은 대운하 주변과는 차별화된 정경을 보여준다.

멀리까지 완전히 탁 트인 전망과 군데군데 떠 있는 여러 섬들은 베네치아의 또다른 얼굴이다.

 

부라노섬

10시 10분에 승선한 12번 수상버스는 완전 만원이다.

온통 중국인들이라 그들 언어의 어조가 감당 안될 만큼 요란하고, 게다가 우리 뒤편에서 들리는 젊은 한국어의 어조도

그냥 넘기지 못할 만큼 심상치 않다. 애써 외면하며 바다만을 응시하기를 40분, 부라노다.

본섬과는 완전히 다른 알록달록한 화사한 색감의 건물들이 운하 양편으로 줄지어 있다.

 

집들이 다채로운 빛깔로 채색된 어촌인 부라노는 예전엔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었다고 한다.

여자들은 레이스를 떴고 남자들은 어업에 종사했는데, 남자들이 바다에서 마을로 돌아올 때 자기 집을 쉽게 찾기 위해

외벽을 화려한 색으로 칠하는 풍습이 있었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지금은 여행객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여행객들이 다채로운 빛깔의 집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부라노섬을 즐기고 있다.

 

마을 어디를 둘러보아도 밝은 원색이나 파스텔톤 화사한 색감의 건물들이 흔하다.

이 색감을 유지하기 위해, 여행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마도 매년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면서 관리하겠지.

많은 사람들이 찬란한 이 빛깔을 아끼고 사랑하겠지만, 꽤 올드한 우린 매년 공들인 외벽보다 몇 해쯤 칠을 걸러 바닷바람에

긁히고 태양빛에 바랜 외벽이 훨씬 정겹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Al Raspo De Ua

운하를 지나고 광장을 따라 걷다가 검색해 놓은 식당 중 하나인 'Al Raspo De Ua'가 눈에 띄었다. 

그림 액자와 작은 가면들이 벽을 채우고 있는 내부에 앉아 점심에만 주문할 수 있는 '오늘의 메뉴'를 골랐다.

여러 가지 오늘의 메뉴 중 '샐러드/ 물이나 와인/ 해물파스타 또는 해물라자냐/ 오징어구이나 오징어튀김'이 나오는 메뉴를

선택했고, 골고루 먹어보기 위해 서로 다른 음식을 주문했다.

 

아주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음식이 나쁘지는 않았고, 자리값 없이 음료까지 포함하여 가격을 지불했으니

물가 비싼 베네치아란 걸 감안하면 가성비 괜찮은 곳이었다.

식당 실내를 가득 채운 유리공예품이나 미니가면과 그림을 보는 재미도 괜찮았다.

 

베네치아 본섬에서도 그랬듯이 부라노에서도 열심히 기념품점을 들락거리며 어제에 이어 또 펜던트를 구입하고

어제는 사지 않았던 산마르코성당 모형과 곤돌라 모형도 손에 넣었다.

부라노의 오후, 하늘빛은 여전히 파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