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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오스트리아 기억

자연사 박물관에서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전성기에 건립된 빈 자연사박물관엔 

숨가쁘게 이뤄온 인류와 동식물과 광물의 이력이 담겨있다.

 

입구에 발을 디디면 웅장한 외관 못지 않은 호화로운 내부 장식은

부푼 기대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마음 사로잡는 아름다운 돌들 구경이나 해볼까나.

광물 전시실 초입, 원석 그대로의 자수정들의 투명하고 오묘한 보라빛은

마음을 활력으로 채워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머어먼 옛날엔 바다였던 소금광산.

그 암염이 입에 넣기 아까울만치 곱다.

 

암염

69kg짜리 금덩어리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선 무한대의 숫자가 돌아가고 있었다.

한 돈이 3.75g이니 과연 몇 돈이며 화폐로는 도대체 얼마가 되는 건지.

법정스님은 '무엇인가를 채웠을 때보다 비웠을 때의 충만감'을 진실하게 부르짖었으나

내 마음은 아직 그 충만감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다.

 

69kg 금

 160캐럿 다이아몬드 및 1.500여개의 보석으로 만든 보석의 부케 앞에선

감히 세속적인 숫자를 가져다대지도 못한다.

능력 밖의 일에 부딪쳐서야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비우게 되니

아직도 마음이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보석의 부케

전시실을 거니는 아이들의 걸음이 솜털 같다.

그 마음도 솜털 같다.

 

 이젠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쓸데없이 눈만 높아졌는지

116kg 토파즈엔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는다.

곱게 채색한 듯한 고운 천연돌들이 오히려 신기할 뿐.

 

116kg 토파즈

2만 5천여년 전 구석기인들의 로망이었던 그들의 비너스.

바카우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되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다.

울퉁불퉁 굵은 곡선이 적나라하게 사실적인데

선사시대를 살았던 구석기 사람들의 소망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거리에 뒹구는 돌이나 전시실에 모셔둔 다이아몬드나 다 같은 돌이건만

희소성이란 기준이 그 가치를 극명하게 분류하고 있었다.

 

인류가 거쳐온 길에는 인류가 나아갈 길이 쓰여 있다.

물질보다, 외면보다 내면을 가꾸는 것이 미래의 진실일 터.

자연사 박물관엔 옛날과 오늘이 나란히 둥지를 맞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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