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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오스트리아 기억

봄날의 푸흐베르크

떠나는 일요일은 늘 즐겁다.

5월 13일, 청명한 봄날, 빈에서 1시간 거리의 푸흐베르크로 걸음을 뻗었다

 

푸흐베르크. 처음 듣는 지명인데, 사람들이 꽤나 북적인다. 

110년 역사의 산악열차를 타고 시속 15km로 1시간을 오르는 내내 불안한 마음이다. 

열차 내에 동양인은 50대로 보이는 중국인 부부와 우리 뿐인데, 

무모한 반소매 차림은 달랑 우리 셋 뿐이다.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심상치 않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긴소매 옷을 꺼내어 걸친다.  

중간 역에 두세 차례 쉬어가며 1,795m 정상에 이르렀다.   

 

불안한 예상 그대로 찬바람 때문에 산 위에 서 있을 수가 없다. 

그럼, 조~기~ 식당으로 막 달려가자구~  

300여미터 뛰어가는데도 몸이 하늘까지 날릴 것만 같다. 

 

오래된 성 내부 같은, 영화 '해리포터'의 마법학교 식당 같은 레스토랑조차도 춥다.

아무리 급히 행선지를 도나우강에서 산으로 바꾸었다고 해도

어떻게 이리도 아무 준비도 없이 올 수 있었던 건지, 참.

 

그런데, 지금이 5월 중순 맞나.

산 아래와 산 위는 판이한 세상이다.  

레스토랑에서 1시간을 머물다보니 하산할 기차 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집채마저 날릴 듯 매섭고 세찬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다.

아래로 보이는 마을은 따스하고 평화로워보이는데,

산 위엔 10평도 안 되는 작은 성당과 산악열차를 기다리는 자그마한 역만이

녹지 못한 눈과 강한 바람을 견제하고 있다.

 

오를 때와는 달리 하산하는 기차는 만원이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도 뭐, 그다지 특별해보이지는 않는다.

 

마을엔 누구라도 누릴 수 있는 따스한 온기가 가득하다.

우리 산 위에 가서 뭐한 거지.

짧디짧은 낮잠 속 꿈을 꾼 듯한 몽롱한 오후였다.  

 

 

< 2007. 5.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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