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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서유럽 이야기

독일 4 : 올훼스의 창

로텐부르크를 떠나는 아침. 가려니, 햇살은 더 투명하고 거리 풍경은 더 선명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마르크트 광장에게 이별을 이른다.

시청사를 눈에 담고, 시의원 연회관의 시계는 마음에 싣고 600년 넘은 약국은 가슴에 재었다.

 

마르크트 광장

로텐부르크에서 빈으로 돌아가는 1/3 지점에,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레겐스부르크가 있다.

거대한 고딕양식의 성당 옆에 주차를하고 인포 센터를 찾고보니, 이 도시에 대한 한글안내서가 비치되어 있다.

 

레겐스부르크 한글안내서
레겐스부르크 성페터 성당

레겐스부르크는 2차 세계대전 중 항공기 제작 장소였던 이유로 여러 차례 공습을 받았으나 다행히 중세 건물 대부분

손상을 입지 않았으며, 13세기부터 300여년에 걸쳐 건립된 고딕 양식의 성 페터 성당은 소년 합창단이 아주 유명하다. 

아직 움을 튀우지 않은 나뭇가지에 그 색이 옮겨질 것만 같은 파스텔톤의 거리를 따라 걸어본다.

넓지 않은 광장 한켠에선 잔잔한 음악이 분수처럼 울려퍼진다.

아, 그래, 이곳은 '올훼스의 창'의 배경이었어.

 

레겐스부르크

원작을 만화로 각색한 '올훼스의 창'은 우리나라에선 1980년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올훼스는 그리스신화 속 오르페우스로,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의 비극처럼 이 이야기도 지독히 슬프게 끝난다.

 

레겐스부르크 음악학교의 어느 건물엔 '올훼스의 창'이란 이름의 낡은 창이 있다.  

이 창을 통해 만나는 남녀는 사랑에 빠지나 그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는 전설이 담긴.

명문가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 남자로 키워진 유리우스와 러시아 혁명을 피해 비밀 망명한 크라우스, 피아니스트의 천재성을

지닌 가난한 고학생인 이자크, 이 세 사람의 만남과 학창 시절이 바로 레겐스부르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를 무대로 전개되는 길고 긴 이야기, 그 끝은 유리우스의 죽음으로 사랑도, 전설도, 삶도

모두 막을 내리고 만다.

 

슈타이너브뤼케(돌다리) 초입

유난히 많은 피자집 중 한 곳을 골라 배를 채우고, 현존하는 독일 석조다리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슈타이너 브뤼케로 향했다.

하늘은 맑아도 다리 위에 부는 바람은 늦겨울처럼 쌀쌀맞다.

 

슈타이너브뤼케

다리를 건넜다가 돌아오면서 다리 초입의 탑을 향해 디카를 들이대며 발을 왼쪽으로 한 발자국 옮겨놓는 순간,

큰밥돌이 갑자기 내 오른팔을 힘 주어 휙 당긴다.

왜 그래하며 눈을 돌리니 버스가 50cm도 채 안되는 거리를 두고 내 왼쪽으로 슬슬 지나가고 있었다.

정말 정말 큰일날 뻔 했잖아, 그리고 여긴 차량이 다니는 다리였구나, 이렇게나 좁은데.

위험한 순간을 아슬아슬 넘긴 채 쫑알거리다가 문득 새벽에 꾸었던 아찔한 꿈이 떠올랐다.

 

구시가 최중심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훼스의 창'에 나올 듯한 탑이 보였다.

시간을 간직한 그 탑의 높은 창엔 음악이 일렁이고 사랑이 물결친다. 

 

알테카펠레 성당

이젠 레겐스부르크를 떠나기 전 해야 할 마지막 한 가지만이 남겨져있다.

글안내서에 소개된 알테카펠레 성당. 범상한 외관과는 달리 호화로움의 극치를 드러낸 알테카펠레 내부는 

고아하게 흰 벽과 또렷하고 화려한 금색 광채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을 황홀하게 했다.  

 

차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레겐스부르크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예기치 않은 선물 같은 도시, 초봄의 이 푸른 하늘을 잊지 못할 거야.

레겐스부르크를 향해 또 독일을 향해 안녕을 읊조리는 사이, 구시가 관문인 고대 로마 성문이 작별의 손을 올린다.

  

고대로마 성문 (179년)

< 2008. 3. 24. 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