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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7 스페인

9. 가우디와 바르셀로나 : 1. 15 (일)

어제 버스에서 오래 시달렸음에도 새벽 5시반에 눈이 떠진다.

와이파이로 남편과 또 아들녀석과 톡을 한 후, 한국 인터넷 포털-물론 다음-에 접속하여 조국의 소식을 접한다.

여전히 그들은 시끄럽고 뻔뻔하고 오만하며 비상식적이고 독선적이다.

 

오렌지나무밭
고속도로 휴게소
고속도로 휴게소

이번 여행의 조식 중 가장 부실한 식사를 하고 바르셀로나를 향해 8시반 길을 나선다. 오전 내내 쭉 버스 이동이다.

스페인은 우리나라-Rep. of Korea-보다  5배가 넘는 영토를 가진 나라로, 피레네 산맥 너머 이베리아 반도의 85%를 차지한다.

이렇게 넓은 나라를 7박이란 짧은 시간에 주요 도시를 모두 거치려 하니 이동 거리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빈에 살던 2007년 12월에 가족과 함께 '몬세라트 포함한 바르셀로나'를 3박 4일간, 2008년 6월엔 '마드리드와 그라나다,

말라가, 세비야'를 7박 8일동안 여행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선 '마드리드-톨레도-세고비아-푸에르토 라피세(이상 중부)-코르도바-세비야-미하스-그라나다(이상 남부)

-발렌시아-바르셀로나-몬세라트(이상 서부)-사라고사 -다시 마드리드'라는 길고 먼 여정을 7박에 소화하려니 한 여행지에

최대한 짧게 머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선택한 여행 상품이 다른 패키지보다 여유 있는 일정이라고 하는데도 빡빡하고 자유가 적다.

자유여행할 땐 사방천지에 자유여행하는 사람들만 눈에 띄었는데 패키지여행을 다녀보니 보이는 이들이 다 단체여행객이다.

창 밖은 올리브나무가 끝없던 남부와는 달리 온통 푸른 오렌지나무밭이다. 물론 이 오렌지는 식용이다.

 

올림픽 스타디움
올림픽 스타디움
카사바트요

가이드씨는 이동 중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주의 역사, 가우디 그리고 스페인 교민사회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1992년 올림픽을 개최한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관광은 올림픽 스타디움이다.

평범한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그 옆 몬주익 언덕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황영조 흔적을 접하고는

한식당으로 향한다. 한식당으로 가는 도중 발견된 카사바트요, 이건 버스 안에서 스쳐보는 걸로 끝이라 사진이 저리도 엉망이고,

이후 바로 나타나주신 카사밀라는 그나마 사진도 못 찍었다.

4일 만의 한식은 시각적으론 별로였지만 맛은 뭐 괜찮았다.

 

구엘 공원
구엘 공원
구엘 공원

천재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는 공기 좋은 언덕에 이상적인 전원주택 60호를 분양하려 하였다.

그러나 비탈지에, 교통 불편하고 물 공급도 원활하지 않은 곳이어서 구엘 백작과 가우디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1900년부터 1914년까지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자금난까지 겹치면서 몇 개의 건물과 벤치 등을 남긴 채 끝나고 만 것이다.

이후 바르셀로나시에서 구엘 백작 소유의 이 땅을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 바로 구엘 공원이다.

 

가이드씨가 로컬가이드와 조우하러 간 사이 우리에겐 구엘공원 입구 근처에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연과 종교를 소중히 여겼던 가우디의 건축 철학은 기둥 하나 난간 하나만 살펴봐도 금세 느낄 수 있다.

 

구엘 공원
구엘 공원
구엘 공원

가우디 건축의 독특함이 잘 드러난 구엘공원은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과 타일, 깨진 도기 조각 장식이 자연미를 살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벤치도 여전하고, 파도와 소용돌이를 형상화한 석굴도 여전하고, 공원 중앙의 흙바람도 여전하다.

달라진 것이라면 전에는 없던 입장료를 받고 있다는 것, 게다가 바르셀로나 로컬가이드는 다른 지역의 로컬가이드와는 달리

우리 여행팀을 뒤쪽에서 케어하지 않고 제가 먼저 앞서갔다는 것, 그리고 그 바람에 우리 몇몇은 잠시 대열을 잃었다는 것.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 예수의 탄생
사그라다 파밀리아 : 예수의 탄생

오후 4시, 이젠 가우디가 설계하고 건립한 최고의 역작, 성가족 성당(Sagrada Familia)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즉 성가족은 요셉, 마리아, 예수를 뜻하고 성당의 건축면은 탄생부터 부활까지 예수의 일생을 표현한다.

1882년에 착공된 성가족 성당은 지금도 공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가우디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탄생을 나타내는 건축면은 가우디 생전에, 수난은 2002년에 완공되었고 지금은 예수의 부활 파사드 건축이 한창이라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기계를 대지 않고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특별함과 웅대함에, 보는 순간 누구나 넋을 놓게 된다.

아, 이 대단함이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고 어느 시대에도 생겨나지 않은, 또 앞으로도 나오기 쉽지 않은 건축물이다.

2007년 12월에 이어 두번째 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역시 볼수록 신기하고 대단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 예수의 수난
사그라다 파밀리아 모형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에 대한 가이드씨의 해설이 끝나고 지하박물관과 샵 등을 둘러볼 시간이 주어진다.

지하에서 성당의 건축 과정과 도면 등을 둘러본 후 가이드씨가 알려준 가우디의 무덤도 보려했으나 시간에 쫓겨 포기.

샵에서 기념품을 구입하고는 들어온 쪽으로 나가려했으나 그쪽으론 나갈 수 없다는 말에 EXIT로 나가니 완전 울타리 밖이다.

영후배와 난 사그라다 파밀리아 울타리를 쭉 돌아 집합장소 담 밖에서  담 안의 언니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람블라스 거리
람블라스 거리

아랍어 '냇물'에서 유래한 람블라스 거리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파우 광장에 이르는 1km의 거리를 가리킨다.

우리 여행팀은 람블라스 거리를 각자 자유롭게 산책한 후 콜럼버스탑이 있는 파우 광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우리 6명은 거리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고 기념품 구경을 하고 또 스페인 달달간식인 뚜론도 사서 챙겼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이 먹고 같이 보고 하다보니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여행팀원 모두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약속시간이 되자 콜럼버스탑으로 다들 모였는데, 한 부부-여행팀 중 유일하게 부부-만 나타나지 않는다.

길을 잃었나. 직선거리니 잃을 길도 아닌데. 기다리던 가이드씨가 웬일인지 나서서 고이 찾아 모셔온다.

 

바르셀로나 항구 근처의 음식점
바르셀로나 항구 근처의 음식점

드디어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현지식 저녁식사를 한다.

바르셀로나 중심지인 람블라스 거리 끝의 항구 바로 앞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드나드는 음식점이다.

아마도 우리가 자주 시청하는 홈쇼핑 패키지여행 상품-보는 것 자체는 꿀잼-에서 말하는 '특식'이 이런 경우인 건지.

샐러드, 빵, 빠에야, 크레마 카탈랴나(크렘블레)가 모두 맛있었는데, 특히 빵과 빠에야는 상급의 맛이었다.

여행 내내 단체여행객들이 가는 외곽의 음식점만 들르다가 구시가 한복판에 자리잡은 현지음식점에 오니 감격스럽다.

자유여행시 늘 당연하게 들렀던 구시가나 중심지의 현지음식점이 이렇게 감격스럽고 감사하게 다가오다니.

 

호텔 체크인을 한 후 맥주바나 카페라도 찾으려 했으나 이 호텔은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위치다.

바로 옆엔 폐업한 주유소가 있고 그 건너엔 다른 주유소와 작은 마켓만 있었다.

처음엔 로비 앞 오픈카페-먹고 즐길만한 분위기는 아니긴하다-에서라도 맥주 한 잔을 나눌까 했는데, TV로 축구 관람을

하는 열댓명의 남자들의 소란함은 그 옆을 지나치기만 해도 대단히 부담스러웠다.

 

그러면 작은 마켓이라도 가야지.

나와 영후배는 재빨리 맥주 몇 캔을 구입해왔고 폭신한 의자와 탁자가 갖춰진 복도테리아-영후배의 센스-로 언니들을 불렀다.

복도테리아에서 시작된 여흥은 객실로 이어지고 우리들의 이야기도 밤새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