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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7 스페인

10. 몬세라트 : 1. 16 (금)

바르셀로나 근교 소도시에서 기침(起寢)한 아침, 오늘 일정은 몬세라트 수도원이다.

호텔과 몬세라트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서 출발시각이 파격적으로 9시반이란다.

여유 있게 아침식사를 하던 중, 의미 없는 말들이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잠시 갈등 상황이 벌어진다.

여행 준비를 총괄했던 사람도, 가이드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던 사람도, 여행 방법 자체에 대한 의문과 불만이 있던 사람도

갑작스러운 상황이 당황스럽다. 

 

어젯밤의 환희 '복도테리아'
몬세라트 수도원으로 오르는 산악열차
몬세라트 수도원으로 오르는 산악열차에서

호텔에서 몬세라트까지는 버스로 30분도 안 걸린 듯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북서쪽으로 50km 거리의 몬세라트 수도원은 1,253m 산 중턱에 위치한 베데딕트 수도회의 수도원으로,

현재도 80여명의 수도사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수도원의 바실리카 대성당에서는 세계 최초의 소년 성가대이자

세계 3대 소년 합창단으로 손꼽히는 ‘에스콜라니아’와 카탈루냐의 성인인 ‘검은 성모상’을 만날 수 있다.

대성당 정면에는 예수님과 12제자를 조각해 놓았는데 1900년에 현재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그럼, 저 위 수도원까지는 뭘 타고 올라가지.

당연히 선택관광인 케이블카다. 그런데, 하필 케이블카가 고장이란다. 남은 방법은 산악열차인 카라마예라밖에 없다.

9년 전에도 카라마예라를 타고 왕복했기에 이번엔 케이블카로 왕복하는 즐거움을 누리려나 했는데.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간 몬세라트 수도원엔 쌀쌀한 바람이 분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건 광장 한쪽 벽면에 위치한 ‘산타 조지’의 조각상이다.

이는 성가족성당 서쪽 파사드인 ‘예수의 수난’을 설계한 수비락스가 제작한 것으로, 얼굴을 음각으로 조각하여 어느 각도에서

보든 그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광장을 지나서 웅장한 대성당 정면을 보면 예수님과 12제자의 조형물을 마주하게 되는데,

우린 한 사람씩 성당 앞 중정의 중심에 서서 두 팔을 한껏 벌려 우주의 기운을 듬뿍 받아들였다.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

바람은 싸늘해도 날은 매우 맑다. 여긴 정말 한국인들이 많다.

겨울 스페인은 어딜 가도 한국여행객이 많았지만 이곳은 특히나 더욱 많다.

몬세라트의 최고인기스타인 검은 성모상은 미사가 끝나는 11시 45분부터 볼 수 있다고 가이드씨가 알려온다.

그전까진 자유 휴식시간이다.

경관을 즐기고 사진을 찍고 기념품샵을 들르면 그 휴식시간이라는 것이 후딱 날아간다.

미사가 끝나기 전부터 우린 성당 바깥쪽 오른편에 검은성모상을 알현하기 위한 줄로 걸음을 옮겼다.

 

검은성모상
몬세라트 대성당

제일 앞쪽에 줄을 섰기에 95cm의 검은 성모상을 만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검은 성모상 관련 전설에 따르면 1세기에 만들어져 동굴에 숨겨졌던 것을 9세기에 발견하고, 또 옮기려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아

-세상의 흔한 전설과 민담- 작은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이 조사한 연대측정법에 따르면 12세기 조각상이란다.

수도원 대성당 제단 뒤편 2층에 자리하고 있는 검은 성모상은 유리로 보호되어 있지만 오른손에 들고 있는 공은 만지며 기도할 수

있게 오픈되어 있다. 우리도 순서대로 우주를 의미하는 공을 만지며 진심을 다해 소원을 빌었다.

 

점심식사를 한 식당

오전 일정이 끝났으니 이제 점심 시간이다.

30분 이상 이동하여 도착한 식당에선 안쪽에 마련된 단체석으로 안내되었고, 점심 메뉴로는 스페인 생햄인 하몽과 돼지고기구이-

부위는 잘 모름-, 샐러드, 오렌지를 내어준다. 9년 전에도 그러하였듯 하몽은 역시 내맛이 아니었다.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려면 긴 시간이 걸리는데, 단체여행에서 식사 시간은 참 짧다.

식당에 도착하면 이미 샐러드, 빵 등은 세팅이 돼있고 메인요리 역시 금세 나와주시니 시간이 걸릴래야 걸릴 수 없는 시스템이다.

 

오후 2시 반, 오늘은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중간 지점인 사라고사에 머물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사라고사는 스페인 화가 고야가 태어난 아라곤 지방의 주도로, 고야는 이곳에서 미술 공부를 했고 사라고사 필라르 성모대성당 돔에

프레스코 천장화를 그렸다.

성모마리아가 전해준 기둥-필라르-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된 필라르 성모대성당에는 스페인 내전 당시 3개의 폭탄이 떨어졌는데

폭탄이 하나도 터지지 않아 사람들은 이를 성모마리아의 기적이라고 믿는다.

 

사라고사 필라르 성모대성당
사라고사 필라르 성모대성당
사라고사 필라르 성모대성당

몬세라트에서 사라고사로 가는 중 휴게소에서 잠시 쉰 후, 가이드씨는 어제 보여주려 했던 '지중해 대탐험' 영상을 틀어준다.

모로코편을 보고 이어서 그라나다 알함브라가 나오니 갑자기 화면이 꺼진다.

가이드씨의 실수인가 했더니 고의다. 그라나다편은 안 보는 게 낫다며 한두 마디 던지고 만다.

이유가 짐작되면서도 어이가 없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틀지 말았어야지.

 

사라고사 대성당에 도착하여 내부를 살펴본 후 그 앞 광장을 거니는데, 가이드씨가 내게 말을 건다.

난 이미 바르셀로나에서 가이드씨에게 살짝 커밍아웃을 했다. 빈에서의 4년과 스페인 자유여행 경험을 말이다.

가이드씨의 대화 주제는 역시나 영상 속 알함브라다. 내가 나사리 궁을 언급했더니 그렇단다.

 

사라고사 호텔로 가는 도중, 가이드씨는 우리에게 하소연을 한다.

가이드로서 알함브라에서 다 못 보여준 것도 속상한데 우리(?)가 자기를 오해했단다.

알함브라 궁전의 백미인 나사리궁은 예약하지 않으면 관람이 불가한데, 몇 년 전부터 단체여행객에게 주던 티켓이 1/10로 줄어서

나사리에 입장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자기를 오해해서 신열이 나는데, 가이드하며 아픈 적은 처음이란다. 뭐니, 어쩌라는 거.

그러면 처음부터 알함브라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했어야지 않나, 상황을 말 안하고 은폐한 건 본인일텐데.

알함브라는 네 지역으로 나뉘고 어쩌고 하는 얘기를 알함브라에선 안 하고 왜 지금 하면서 이 야단인지. 정말 최악이다.

 

사라고사 호텔 객실 전망
패스트푸드점에서 맥주를

기차역과 바로 붙어있는 사라고사 호텔에 들었다.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호텔 식당 단체석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역과 주변에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많을 거라 기대하며 밖을 나섰는데, 아무 것도 없다.

스페인은 밤문화가 발달된 나라인데, 일부러 인구밀도 낮은 곳의 호텔만 골라다니는지 어찌 이렇게 모조리 허허벌판인지. 

 

다행히 작은 상점-서울이었다면 들어가기 꺼렸을법한- 하나를 찾아내어 캔맥주를 챙기고, 아까 역주변에서 봐뒀던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에 들어가니 다행스럽게도 맥주가 있다. 오징어튀김 안주는 요상했지만, 맥주 하나는 참 시원하고 맛났다는 후문.

객실로 돌아와 캔맥주에 소토닉까지, 스페인의 마지막 밤은 새벽의 요정을 찾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