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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7 프푸·하이델·콜마·파리

8. 10 (금) 전 : 센강 따라 오르세로

열차가 지하철역으로 들어오는 진동에 숙소 건물이 오들오들 떨린다.

지하철역과 건물 간 거리가 아주 가깝진 않은데, 진동이 이렇게 깊이 느껴지는 건 건물 아래로 선로가 깔려있기 때문일 듯.

아주 오래된 건물이긴 해도 전동차의 진동이 이렇듯 강하게 전달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독일에 가까운 국경도시 콜마르보다 훨씬 서쪽에 위치한 파리는 콜마르보다 해가 더 늦게 뜨고 더 늦게 진다.

흐린 아침, 식사 후 창을 여니 바깥에서 불어드는 바람이 여름답지 않게 아주 서늘하다.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오늘 오전 일정은 오르세 미술관 관람이고, 숙소에서부터 천천히 걸어도 15~20분이면 충분하니 도보로 움직인다.

9시 조금 넘은 시각, 오르세 가는 길에 펼쳐진 웅장한 루브르 박물관과 그 입구인 유리피라미드 앞의 엄청나게 긴 줄.

파리 방문은 세번째지만 12년 전 첫 파리여행에서만 루브르엘 들어갔을 뿐, 3년 전에도 또 이번에도 루브르는 지나친다.

 

12년 전, '파리 왔는데 루브르는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입장한 그곳은 번잡하다는 말이 부족할만큼 복잡했고 복작거렸다.

살고 있던 빈에 비해 처음 겪는 파리는 지저분했고 정신없는 도시인데다, 특별히 관심가는-모나리자조차도 그다지- 그무엇도

없는 상태에서 엄청난 인파 속 루브르를 돌아다니다보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금세 지쳐버렸다.

그때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훨씬 더 긴 대기줄을 자랑하는 루브르.

파리여행자는 늘어나기만 하고, 대부분의 여행자에게 루브르는 필수가 되다보니 루브르의 밀도가 짐작되고도 남을 터.

 

카루젤 개선문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앞을 지나 카루젤 개선문 옆을 스치면 튈르리정원이 펼쳐지고, 건너편엔 센강 따라 오르세 미술관이 자태를 드러낸다.

우린 오늘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하고 내일은 오랑주리 미술관에 입장할 예정이라 매표소에서 통합권을 구입했다.

루브르 박물관 앞과는 달리 오르세 미술관 앞은 평온하리만큼 고요하고 한산하다.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을 찾은 건 3년 전에 이어 난 이번이 두번째고 남편은 첫 관람이다.

원래 기차역이었던 오르세는 1939년에 폐쇄되어 방치되었다가 1984년에 오르세 미술관으로 재탄생하였는데, 주로 파리에서

활동한 화가들의 19세기 전후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하기 때문에 방대한 양의 작품을 전시하는 루브르에 비해 덜 위압적이다.  

 

고흐, 오베르 교회, 1890년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8년

오르세의 1층 중앙 전시실은 조각 작품이, 바깥쪽엔 회화 작품이 주로 전시되고 있다.

2층에 전시된 고흐의 작품들은 캔버스에 물감 튜브를 대고 짜놓은 듯한 두꺼운 질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3년 전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서 퍼덕이던 그 울렁거리는 마음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 땐 오르세 미술관 내부 전체가 촬영금지 구역이었기에, 그림을 보고 또 보고 나서도 마지막에 다시 전시실로 들어가

고흐가 남긴 격정과 절망을 응시하며 아쉬움을 달랬었다.

 

오르세 미술관 카페
오르세 미술관 카페

다른 층 전시실로 가기 위해 움직이던 중 현대적이면서도 독특한 카페와 레스토랑을 만났다.

오르세 외관에 부착된 대형시계 안쪽으로 이렇듯 분위기 있는 근사한 카페가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차 한 잔 들이는 시간은 다음-물론 파리에 다시 올 날은 요원함-으로 미루고 화가들에게 다가간다.

 

세잔, 사과와 오렌지, 1900년경
모네, 루앙대성당, 1894년
모네, 루앙대성당, 1894년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세잔이 그린 사과는 눈에 보이는 대로의 사과가 아니라 사과 자체의 모습을 뜻한다고 한다.

감각으로 느껴지는 사과가 아닌, 지적인 수준을 요하는 사과 즉 머리로 본 사과를 그린 것이라 하는데, 문외한인 내가 본

세잔의 사과는 원근감이 파괴된 사과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색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빛의 화가인 모네가 보고 또 그린 물의 색깔은 그 물에 비친 의 색깔이라 한다.

'루앙 대성당' 연작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의 색과 빛을 잡아 그림으로 옮겼다.

 

드가, 무용수업, 1876년
드가,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1876년

드가는 전설이나 신화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소재로 삼았고 사진처럼 기발한 구도와 시점으로 표현했다.

드가는 모네처럼 말년에 시력이 점점 떨어지는 병을 앓았지만 거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계속 붓을 들었다고 한다.

 

그림을 감상하고 화가 이름을 확인하며 그림들을 디카에 또 폰카에 남긴다.우리 뿐 아니라 대부분의 관람객이 그림 앞에서

자연스럽게 디카나 휴대폰을 들어올린다.

그렇지만, 3년 전엔 그리도 원했던 촬영이었는데, 지금은 촬영금지였던 예전의 오르세가 그립다.

그림들을 사진으로 찍다보니 감상보다 촬영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셔터 소리와 시야에 방해 받지 않고 모든 관람객이 온전히 그림에만 집중했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춤, 1876년
마네, 풀밭 위의 점심, 1863년

르누아르의 그림은 따사롭고 온화하다.

생전에 자신의 작품이 고가로 거래되는 안락함을 누린 르누아르는 말년엔 관절염에 걸려 손목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마비된 손에 붓을 묶어 그림을 그리는 열정을 보였다.

 

16세기 판화 작품인 '파리스의 심판'을 소재 삼은 그림은 '풀밭 위의 점심'이다.

한가하게 소풍을 즐기는 남자들 틈에 한 여자가 홀로 벗은 채 앉아있고, 그녀의 시선은 관람객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마네의 회화 역시 단순하고 평면적이다.

 

생제르망 가는 길

정오가 훨씬 넘은 오르세 앞은 예상치 못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빗줄기가 튼실하지 않았기에 우산 파는 흑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생제르망 거리로 향했다.

지하철로 움직이기엔 애매하고 비만 아니라면 걷기엔 결코 멀지 않은 생제르망으로 가던 중 빗줄기는 매우 강건해졌다.

'Semilla'로 가는 길은 그칠 줄 모르는 폭우가 막아섰고 우리 눈 앞엔 메트로역이 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