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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7 프푸·하이델·콜마·파리

8. 10 (금) 후 : 루브르의 밤

Les Halles역

비가 쏟아지는 지하철 역 앞에서 궁리를 하다가 생제르망 대신 일단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내일 가려 했던 숙소 근처의 Leon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변경한 것이다.

늘 생제르망 거리엘 간다해도 비 때문에 그곳의 정취를 즐기기엔 무리일 테니까.

 

Leon

Les Halles역에서 숙소까지 뛰어들어간 우린 바로 우산을 챙겨들고 숙소에서 멀지 않은 Leon으로 향했다.

어허라, 평일 점심인데, 게다가 관광지 한복판도 아닌데, 의외로 거의 만석인 Leon 내부.

퉁명스럽고 연로한 백인서버에게 샐러드와 메인요리 그리고 후식이 함께 나오는 점심 메뉴를 주문했다.

브뤼셀에 본점을 둔 홍합전문점 Leon은 파리 곳곳에 여러 지점이 있는데, 3년 전 아들과 파리에 왔을 땐 샹젤리제 지점에서

식사를 했었다.

 

Les Halles역 부근

천천히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온 숙소 근처 그러니까 Les Halles역 부근 거리는 비 내렸던 자국을 다 삼켜버렸다.

도로에 약간의 물기만 남아있을 뿐, 햇살 짱짱하고 또 건조한 파리의 여름 기후는 강건한 빗줄기의 기억을 다 잊게 했다.

하늘 저편으로 먹구름은 쫓기듯 흘러가고 있었고 우리가 서 있는 길 위엔 맑게 밝아진 하늘만이 미소를 내밀고 있다.

 

오후 3시, 휴식을 위해 숙소엘 들었고 짧은 오수에 빠졌다.

서울에선 몇 개월에 한번 취하는 낮잠을, 여행지에선 자주 그 기분을 즐긴다.

나와는 달리 낮잠대마왕인 남편은 한국이건 유럽이건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항상 낮잠에 빠진다.

 

커피와 본마망 간식을 구입하기 위해 모노프리로 향했다.

Les Halles역은 서울 왕십리역처럼 아주 많은 지하철 노선이 지나는데, 느낌도 왕십리역과 흡사하다.

흑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그러다보니 상점 입구마다 건장한 가드가 그 앞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

또한 빈발하는 테러 위협 때문인지 Les Halles역은 물론 다른 역에서도 무장한 경찰들의 모습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컵라면으로 저녁 속을 풀고 또 채우고 창밖을 보며 쉬고 또 쉬다가 9시가 되어서야 야경을 보러 간다.

프랑스의 여름 해는 꽤나 일 많고 길어서 그 임무를 마치기까지 긴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사실 우린 여행지에선 아침형 인간-난 평소에도 아침형 인간-이라 야경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처음에 숙박하려 했던 13구 아파트호텔에 묵었다면 야경 때문에 밤을 헤쳐 루브르까지 오는 수고는 결코 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이 숙소가 위치 하나는 괜찮기에, 루브르까지 걸어서 10분밖에 걸리지 않기에, 그덕에 지금껏 겪어보지 않은 밤의

루브르를 만나게 된 것으로 숙소의 누추함을 촘촘히 위로해 본다.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밤의 루브르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마주친 G20 마트에서 긴 바게트를 집어들었다.

역시 프랑스의 바게트는, 파리의 바게트는 어디서 사든 먹든 늘 최고다.

영화 '다빈치 코드'의 열쇠인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엔 환한 불빛이 반짝이고, 찬바람 날리는 루브르 앞마당은 밤빛을

만나러 온 사람들로 적당히 소란스럽다.

 

밤 10시반, 숙소로 돌아오며 오늘 19,000보를 넘겼다는 특종을 전하는 남편.

오늘은 오르세가 수훈갑이군, 내일은 오랑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