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2020 베네치아·피렌체·로마

1. 18 (토) : 피렌체에서 로마로

로마

산타마리아노벨라역으로 향하는 동안 , 아침 내내 내리던 비가 거의 그쳤다.

9시 28분에 승차한 Italo 기차, 그런데 객차 통로가 앞뒤로 꽉 막혀 예약 좌석까지 이동할 수가 없다.

우리처럼 피렌체에서 승차해 통로에 서 있던 이탈리아 남자가 정말 불같이 화를 내며 기차에 승차할 때는 뒤쪽에서부터

승차해야 한다며 소리를 지른다. 승차가 뒤쪽이면 하차는 앞쪽이고 일방통행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여행자들도 대기 장소에서 가까운 출입문으로 타다보니 의도치 않게 객차 통로를 막아버렸다.

복잡한 와중에 미안함을 전하며 차근차근 해결하여 좌석까지 무사히 이동 완료.

 

지금껏 유럽 기차를 여러 번 탔지만 이같은 경우는 처음 겪었다.

이제까지는 승객이 적은 기차를 주로 타다 보니 운이 좋았던 것인지.

이것이 어디서나 적용되는 일반적 규칙이나 상식인지 아니면 이탈리아만의 규칙인지 알 수 없지만 다음엔 어떤 기차든

객차의 뒤쪽 출입문으로 승차해 보기로.

 

트레비 분수

11시, 로마 테르미니역이다.

예약한 아파트는 체크인이 가능한 시각이 아니었기에 우선 역 근처 짐 보관소에 캐리어들을 맡겼다.

로마가이드인 은후배의 안내에 따라 인파 넘치는 트레비 분수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세찬 비가 쏟아진다.

샘이 있던 자리에 포세이돈, 트리톤, 해마 등의 조각상으로 화려한 바로크식 분수를 건립한 것이 트레비 분수다.

 

트레비 분수 앞 건물로 비를 피했지만 금세 그칠 기세가 아니다. 빗발 약해진 틈에 근처 레스토랑으로 가 야외좌석에 앉았다.

식사를 마친 오후 2시, 거짓말 같이 하늘이 갰고 우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나 갠 하늘은 오래가진 않았고 결국 우린 기념품샵에서 색색의 우산을 집어들었다.

 

하드리안 신전

코린트 양식의 거대한 기둥이 압도하는 하드리안 신전을 지나고 피노키오샵 내부도 예전처럼 구경하며 지난다.

내겐 세 번째 방문인 로마. 빈에 살던 2006년 여름과 2008년 12월 이후 12년 만이다.

 

사실 난 두 번의 로마여행을 통해 그 어느 도시에서도 경험하지 않은, 로마의 무질서와 지저분한 상술을 여러 번 겪었고

또 매우 실망했기에 과거가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현재가 올곧지 않은 로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이란 그곳의 조상이 남긴 찬란한 유적과 선조 예술가가 건네준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여행지의 과거를 느끼고 현재를 호흡하면서 나를 보듬을 수 있어야 진정한 여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판테온

고대 로마가 남긴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인 판테온에 이르렀다.

모든 신을 모신 판테온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사위인 아그리파에 의해 건축되었다.

2000년이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돔은 빛이 내부까지 온전히 들어올 수 있도록 최상부를 열어놓았는데,

돔을 다 덮지 않은 것은 돌의 무게로 인한 붕괴 위험 때문이라고도 한다.

트레비 분수처럼 판테온 앞에도 경찰차와 경찰들이 주변을 호위하고 있다.

 

수태고지
라파엘로의 묘
커피가게 '타짜도로'

판테온 내부엔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르네상스 3대 천재 중 하나인 라파엘로의 묘가 있다.

그리고 제단화-제대화- 중 하나는 이젠 자주 접해서 바로 주제와 제목을 인지할 수 있는 '수태고지'다. 

판테온 옆 '타짜도로'는 로마 3대-이런 건 누가 정하는지- 커피 중 하나라고 한다.

원두 커피-판매하는 원두는 단 한 종류- 구입을 위해 우리도 계산대 앞 긴 줄에 합류해야 했다.

 

나보나 광장
나보나 광장의 포세이돈 분수

판테온에서 멀지 않은, 긴 직사각형의 드넓은 나보나 광장은 고대에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포세이돈 분수, 무어인의 분수 및 17세기 조각가 로렌초 베르니니가 만든 4대강 분수가 비 젖은 광장을 채우고 있다.

2006년 여름의 나보나 광장은 파리 몽마르트르처럼 무명화가들이 활동하는 장소였는데,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인지

오늘은 화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스페인 광장
산타마리아노벨라 샵

스페인 광장은 성당, 오벨리스크, 계단, 분수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배경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지금은 영화에서처럼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계단에 앉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계단 아래 '조각배 분수'는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버지인 피에트르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화장품을 구입하려는 일행이 있어서 산타마리아노벨라샵에 들렀고, 일정을 다 마친 우린 숙소로 가기 위해 스파냐역에서 지하철에 올랐다.

 

테르미니역 북쪽에 위치한 짐 보관소에서 캐리어를 찾아 테르미니역 남쪽에 자리한 숙소로 가는 중, 도착하기로 약속한

5시가 넘자 아파트 주인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전송되었다.

곧 도착한다는 답을 보낸 후, 꽤나 큰-3-4명 탈 수 있는-엘리베이터로 다다른 아파트.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이 넘치는 여주인은 직접 만든 초코케이크를 준비해 그녀의 남편과 함께 우릴 기다리고 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기차에서 사투를 벌여 도시를 넘어와, 그 도시의 한나절을 온전히 즐긴 하루.

Coop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고, 경량의 맥주로 로마의 첫밤을 가볍게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