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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0 베네치아·피렌체·로마

1. 17 (금) : 미켈란젤로 광장과 아르노강

구름도 많고 여유도 많은 아침. 종일 자신의 색깔대로 피렌체를 즐기는 날이다.

난 가장 늦게까지 숙소를 지키고는 10시에 길을 나섰다.

 

미켈란젤로 광장의 '다비드'

오늘 첫 일정은, 다비드가 있고 피렌체의 전경이 조망되는 미켈란젤로 광장.

숙소 앞 아르노강의 카라이아 다리에서 쉬리선배, 은후배와 만나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운행 시간을 지키지 않는 12번 버스에 올라 15분쯤 후 도착한 미켈란젤로 광장은 온통 잿빛이다.

 

사진 찍기 좋고 전망 멋진 장소를 한국 패키지팀이 차지하여 휩쓸고 가면 바로 다른 한국 패키지팀이 채운다.

그들은 버스에서 내려 사진만 찍은 후 버스에 오르고, 다른 팀이 또 버스에서 내려 같은 곳에서 같은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두세 팀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우리에게 피렌체 전망이 허락되었다.

하늘은 잠깐씩만 햇살을 뿌릴 뿐 내내 구름으로 덮여 있다.

 

언덕까지 다다를 땐 버스를 탔지만 아르노강으로 내려갈 땐 천천히 걷기로 했다.

언덕이긴 해도 경사가 완만했고, 조금씩 다가오는 구시가 전경을 느끼기엔 도보가 최고니까.

도보 끝에 평점 보고 들어선 구시가의 피자리아, 요 사진 속 피자는 이번 여행에서 먹은 최고의 피자였다.

 

우피치 미술관
시뇨리아 광장

식사 후 선배와 후배를 떠나보내고 이젠 혼자만의 자유다.

내 눈이, 내 발이 가는 대로 피렌체 거리를 평온하게 밟아 나간다.

그제 보고 오늘 또 만나는 우피치 미술관도, 포세이돈이 지키는 시뇨리아 광장도, 보이는 모든 것들이 참 좋다.

 

베키오 궁전 앞 '다비드'
'메두사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사비나 여인의 납치'와 '켄타로우스를 치는 헤라클레스'(왼쪽)

시뇨리아 광장의 로지아를 장식하는 조각상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안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영웅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는 진품 못지 않은 용맹스러움을 떨치고 있고, 로마 역사 속 사비나 여인은

처참한 공포와 처절한 고통과 깊은 슬픔의 눈빛을 전해 준다. 

오후,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푸른 하늘이 열리고 있다.

 

산타트리니타 다리
베키오 다리

피렌체의 상징 중 하나인 베키오 다리를 가장 근사하게 볼 수 있는 곳은 그 서편에 있는 산타트리니타 다리다.

그러나 트리니타 다리를 베키오 다리 전망용으로만 삼기엔 너무나 아깝다.

베네치아에서 리알토보다 아카데미아 다리를 더 좋아했듯 피렌체에서 내 마음에 들어온 다리는 트리니타니까.

다리 초입을 장식하고 있는 신화 품은 조각상, 아르노강을 다 아우를 듯한 주변 경관, 각도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상판과

교각, 그리고 그것이 주는 단순하면서도 안정적인 멋스러움, 이 모두가 내겐 최고다.

 

오후 4시, 열쇠는 내 손에만 있고 체력 또한 떨어진 상태.

Spar에 들러 카푸치노를 구입한 후, 해 떨어지기 전 숙소 쪽으로 향했다.

숙소 옆 카르미네 광장엔 아주 소박한 외관을 한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이 있다. 

그 내부의 한 예배당을 마사초의 벽화가 장식하고 있는데, 마사초는 회화에서 최초로 완벽한 원근법을 구현한 화가라고 한다.

힘들었고 호기심이 들지 않았고 과한 입장료도 한몫했기에 성당 입구의 안내판만 보고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다음 기회로. 

 

마사초의 '세 개종자들에게 세례를 주는 베드로'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해가 지자, 자신만의 여행을 마치고 차례로 들어오는 선후배들.

수선배와 숙선배, 영후배가 오른 아침 두오모 쿠폴라는 영화처럼 아름다웠으며, 쉬리선배는 베키오 종탑에서 두모오 쿠폴라와 지오토 종탑을 한눈에 전망했다고 했다.

미켈란젤로 언덕의 야경을 즐기고 돌아온 수선배와 영후배는 낮에 관람한 피티 궁전-우피치투어시 S가이드의 피티 궁전에 대한 세뇌(?)에 넘어감-은 화려하고 예뻤으나 S가이드 없는 궁전은 매우 아쉬웠다고 소감을 전한다.

 

다같이 깜빡증이 도져 저녁 마트를 4번이나 간 날. 우린 김치전을 곁들여 피렌체의 맥주와 와인을 다 소진했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로마 가는 날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