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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포르투·리스본

4월 15일 (토) : 리스본 거리에는

숙소 근처

어디선가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갑작스레 잠에서 깬 시각은 새벽 4시.

나처럼 어제 저녁을 안 먹고 잤는지, 첫 새벽부터 한 남자가 컵라면을 뜯고 있다.

더이상 잠들지 못하고 계속 뒤척이다보니 밖은 조금씩 어둠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하늘은 그 많던 구름을 그새 어디론가 보내버렸다.

우리의 유럽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대구조림-바칼라우 아님-을 만들어 아침식사를 한 후, 숙소를 나선다. 

필수적인 몇 마디만 주고받았을 뿐, 우리 영혼의 기상 상태는 여전히 최악이다.

 

알파마에서 코메르시우 광장 가는 길
테주강변
코메르시우 광장

군데군데 남아있던 구름은 남김없이 사라져 하늘은 코발트블루가 되었다.

알파마에서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가는 길이 참 예쁘다. 캐리어가 없으니 거친 돌바닥조차도 멋지다.

코메르시우 광장 북쪽의 개선문을 통과하면 아우구스타 거리를 만날 수 있다. 

아우구스타 거리는 코메르시우 광장과 이어진 리스본 최대의 쇼핑 거리로, 북쪽으론 호시우 광장까지 이어진다.

 

아우구스타 거리
아우구스타 거리
코메르시우 광장

선선했던 어제까지와는 달리 햇살이 매우 따갑다.

주말이라 어딜 가든 사람들이 넘쳐나고, 어제 다툼의 키워드인 '감수'를 빌미 삼고 소재 삼아 우리의 대화도 심히 넘쳐난다.

 

테주강
테주강 : 18C 부두의 흔적

건너 저편이 보이지 않는 테주강엔 바다 내음이 나고, 강 기슭엔 파도가 밀려오고 썰물이 진다.

무역 부두였던 테주강의 흔적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파도 따라 뛰어 오가고 갈매기는 바다인 양 날아다닌다.

유라시아의 서쪽에 자리 잡은 테주강으로부터 더 서쪽인 대서양 시작점까지 직선으로 10km나 될까.

이곳에서 나는 갯내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유다.

 

숙소보다 더 높이 있는 알파마엔 인기 있는 동네 제과점이 있다.

관광지임에도 착한 가격의 제과점에서 커피와 빵을 먹은 다음 3개를 더 포장해서 숙소로 들어왔다.

아들과 톡을 하면서 서울 소식, 막내-강아지- 소식을 묻고, 또 계륵만도 못한 야구 소식을 찾아본다.

 

오묘한 신맛의 파스타를 먹는 도중 더 오묘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오후 3시,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가보니 숙소 근처 작은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기타를 치고, 원을 만들며 춤을 추고, 민요인 듯한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인다.

오, 이런 흥겨움 정말 좋다. 알파마 골목도 진짜 좋은데, 알파마라서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은 진짜 최고였다.

 

산타아폴리니아역 앞 테주강 크루즈
군사박물관

뜨거움을 뜷고, 대형 크루즈 선박이 즐비한 산타아폴리니아로 향한다.

핑구도스 마트에서 여행의 마지막 식재료를 구입한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군사박물관을 발견했다.

입구 쪽만 보겠다고 요청하여 살펴본 박물관 중정엔 대포가, 입구와 중정 벽면엔 멋진 아줄레주가 장식되어 있다.

거리는 뜨거웠으나 그늘은 덥지 않고, 아주 오래된 숙소 안은 매우 시원하다.

 

오후 7시 반, 리스본 대성당 담벼락에 차려진 피자리아 테이블을 마주했다.

대성당과 주변 건물들엔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고 우린 생맥주를 주문했다. 오, 괜찮다.

 

우리 테이블 담당서버는 따로 있는데, 갑자기 동양인 여자서버가 오더니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한국식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있었으나 그녀는 네팔인이고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피자 맛은, 이미 구글 사진을 보았고 기대는 안했으나 구글 평점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맛이다.

 

리스본 대성당 담벼락
리스본 대성당
리스본 대성당

대성당은 묵묵히 알파마를 지키고, 식당과 카페와 바에선 광란의 소리가 울려퍼진다.

숙소로 돌아와 난 흑맥주를 더 마시고 남편은 마음에 와인을 더 들여놓는다.

리스본의 토요일은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