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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포르투·리스본

4월 16일 (일) : 파두 그리고 테주

아침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앞집 지붕에서 내내 구슬프게 운다.

자식이 아픈가, 가족이 어디론가 떠났나, 아님 휘청이는 나라를 걱정하는 울음인가.

 

리스본을 떠날 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기에 냉장고의 식재료들을 열심히 먹어줘야 한다.

계란새우볶음, 상추쌈에 볶음김치와 북어국까지 식탁에 올리니 서울에서보다 더 맛있는 아침식사가 차려졌다.

포르투 숙소와 똑같은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커피머신에 사흘 전 콘티넨테에서 구입한 스타벅스캡슐을 넣어 커피를 내리고

어제 동네 빵집에서 포장해 온 토르테까지 먹고나니 외출 준비 완료다. 

 

파두 박물관

오늘도 구름 없이 푸른 날. 

오전 10시 전후로 동네 성당 종소리가 여러 차례 규칙 없이 울린다. 간격이 일정한 것도 아니고 참 신기하다.

10시 40분, 숙소를 나와 알파마 초입 건너편에 있는 파두 박물관에 입장했다.

 

파두 박물관
파두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강렬한 장면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파두 가수들의 사진이 시간을 초월해서 전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한 가수가 여러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모든 입장객에게 제공된 오디오가이드를 통해서는 사진에 매겨진 번호를 눌러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파두 박물관에서 보이는 알파마 지구 초입

운명 또는 숙명을 의미하는 Fado는 바다를 삶 자체이자 숙명으로 여겼던 리스본 민중들의 노래라고 한다.

암울했던 포르투갈의 역사가 담겨있고. 바다를 향해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과 도시를 떠나온 이의 향수가 담겨있다.

그리움과 외로움은 구슬픈 곡조가 되어 파두 기타 연주자와 애끓는 음성의 파두 가수에 의해 애절하게 표현되었다.

 

파두 박물관
파두 박물관

소극장에서 파두 가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파두와 바다를 그린 서정성 짙은 그림을 마주한다.

3대 중 2대가 고장이었으나 멀쩡한 1대의 파두 감상 오디오에선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절절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미 파두를 세계적인 장르로 끌어올렸고, 오래 전 드라마 배경음악을 통해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파두 가수다.

 

파두 박물관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파두 박물관

난 파두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오디오가이드로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를 들었다.

마력 같은 목소리와 우수에 찬 멜로디에 취해 2~3곡의 호드리게스 노래를 수없이 반복해서 재생했다.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추모관은 지하층에 있었다. 

리스본 알파마가 고향인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스토리가 다양한 영상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그녀가 남긴 LP와 동영상, 낡은 사진과 각종 기사는 물론 공연 의상과 수여된 훈장도 전시되어 있었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파두 박물관을 나섰지만 여운은 오래 이어지고 있다.

4월 낮, 리스본의 야외는 28도지만 숙소 안은 더할 수 없이 서늘하다.

식사를 하고 파두를 이야기하고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를 들으며 늘어지게 누워 노곤한 육신을 쉬어준다.

 

테주강
테주강
코메르시우 광장

해가 지면서 테주강 노을을 보러 간다.

도우루강에 비하면 소박한 노을이고 또 야경이라 할 게 없는데도 사람들은 모여서 4월 25일 다리를 보고 있다.

화려한 노을이 없어도, 불빛이 희미해도 바다 같은 테주강은 그곳에 있다.

 

알파마
알파마

알파마의 파두 공연 식당에선 할아버지 가수들의 탁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새삼스레, 조금 전까지 취해있던 아니 지금도 헤어나올 수 없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역시 최고의 파두 가수다.

알파마 밤 하늘엔 애절하고 정열적인 그녀의 음성이 아련히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