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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포르투·리스본

4월 17일 (월) : 알파마의 속삭임

그제에 이어 오늘 새벽에도 종아리에 경련이 일었다.

평소에 종아리 경련이 거의 없고, 요 며칠동안 많이 걷지도 피곤하지도 않은데 알 수 없는 일이다,

깬 김에 앱으로 KLM 온라인체크인-지정 좌석이라 안해도 되건만-을 하는 중 별안간 앱이 멈춰버린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남편 노트북으로 시도해서 무리 없이 체크인을 완료한 후 다시 잠시 눈을 붙였다.

 

이른 아침, 골목은 이미 여행객들의 발걸음으로 가득하다.

9시 넘어 비빔밥과 미역국을 챙기고, 골목에서 울리는 활기 따라 알파마 탐험에 나선다.

 

산타루치아 전망대
산타루치아 전망대

알파마 돌아다니기 딱 좋은 날이다.

알파마 계단을 올라가는 중 우연히 발견한 무료 엘리베이터, 단번에 산타루치아 전망대까지 데려다 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오전의 전망대는 이미 인산인해, 테주강은 물론 대서양까지 보일 듯한 아줄레주 테라스에선 단골 버스커들이 흥을 돋우고 있다.

 

산타루치아 전망대
산타루치아 전망대
산타루치아 전망대

며칠 전에도 올랐던 곳이지만 오늘은 진짜 날씨가 다했다.

흐린 그 날보다 힐링 지수가 몇 배로 증가하는 날이다.

 

조금 더 높은 포르타스두솔 전망대는 더 환상적이다.

사방이 모두 트여있고, 시야에 잡히는 멋진 건축물들과 테주강은 더할 나위 없이 최고다. 

어디선가 등장한 한국인 단체 할배할매들도 서로 찍사가 되고 모델이 되면서 이 광경을 멋지게 즐기고 있다.

 

포르타스두솔 전망대
포르타스두솔 전망대
포르타스두솔 전망대

이제 정처없이 발 가는 대로 알파마를 돌아다니면 된다.

리스본의 시초가 된 곳, 리스본 대지진의 피해가 거의 없던 곳, 언덕 위 오래된 집들과 미로 같은 골목이 더욱 운치 있는 알파마는

비탈길을 오를수록 숨어있던 새로운 알파마를 선사한다.

알파마 좁은 골목을 탐색하는 올드트램 안엔 여전히 여행객들이 그득하다.

 

골목을 걷고 계단을 걷던 중 상조르주 성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알파마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상조르주 성은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자 요새라고 한다.

지금은 성벽만 남아있고 공원으로 조성되어 리스본의 경관을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성엔 입장할 생각이 없었으나 어쩌다 근처까지 왔으니 그 앞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성문에 들어서니 뜨거운 햇살 아래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었다.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높은 성벽은 마치 인생의 행로 같다. 가로로 세로로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상조르주 성 입구
리스본 대성당

난 이상하게도 유럽 대륙에만 오면 피자가 당긴다.

머무는 숙소 근처에 나폴리식 피자를 맛있게 하는 피자리아를 찾아내려 늘상 집요히 노력한다.

 

이번 여행에선 포르투 피자에 이어 그저께도 들른 리스본 피자리아도 실패다.

구글 평점이 괜찮긴 했으나 약간의 의구심을 지닌 채 찾은 동네 피자 가게.

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이곳은 내부엔 바 자리만 있고 야외엔 테이블 서너 개가 있는 작은 식당이다.

기본 피자인 마르게리타를 주문 포장했고 숙소로 들어가면서 근처 가게에서 물과 맥주를 구입했다.  

피자 비주얼은 평범했으나 오, 그에 비해 아주 맛있다. 포르투갈에서 먹은 피자 중 유일하게 맛있었다.

 

낮 시간 동안 숙소에 두세 시간 머물러야 할 이유가 있다.

다음 달 친구들과의 여행 일정 중 콜로세움 입장권 예약일-딱 30일 전-이 오늘이다. 

코로나19 이전과는 달리 현장에서 입장권 구입이 아예 불가하기에 무조건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한다.

콜로세움 입장권은 30일 전 온라인예약이 가능하다는 것과 대략의 오픈 시간만 정해져 있을 뿐 원하는 시간대 예약이 쉽지 않다.

 

그런데 새로고침을 해가며 예약사이트를 확인하는 도중, 갑자기 내내 잘 되던 숙소 와이파이가 먹통이다.

내 핸드폰과 남편 노트북으로 와이파이 연결이 안된 것은 물론이고 남편 핸드폰의 데이터로밍마저 되지 않았다.

남편만 데이터로밍을 해 온 상황이었고, 다행히 와이파이 공유기 전원을 끄니 남편 폰의 데이터로밍은 가능했다.

 

남편이 호스트와 2번 통화를 했고 문자메시지도 주고받았다.

TV 역시 연결되지 않았는데, 어떤 문제가 생긴 건지 알 수 없다고 한다.

호스트는 인터넷 업체 담당기사가 바로 숙소로 올 수 없으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남편 핸드폰으로 입장권 예약 대기를 하면서 무한대의 새로고침 끝에 드디어 오후 4시경 입장권 예약을 완료했다.

결제할 신용카드 정보란이 갑작스레 이탈리아어로 튀어나온 것 말고는 대기의 고통은 있었으나 어렵지 않게 완료했다.

 

한숨 돌린 5시, 다시 알파마 구석구석을 찾아다닌다.

포르투처럼, 돌바닥 도로나 계단에 접한 폭 좁은 건물엔 여러 개의 번지 수가 부여되어 있다.

 

수도원
판테온
판테온

원래 가 보려 한 산타클라라 시장은 파장이었으나 다른 건축물들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다.

전망대에서 보이던 돔의 정체가 바로 판테온이었고 그 옆 규모 큰 건물이 수도원이었던 것이다.

 

바로크 양식의 판테온 외관이 산뜻하고 고고하다.

이곳엔 바스쿠다가마와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등 무덤이 있다고 하는데, 입장 시각이 지나서 들어가진 못했다. 

 

산타클라라 공원

판테온 근처 알파마 언덕의 비탈을 그대로 살려 조성한 공원이 반갑다.

공원 벤치에 앉아보니 공원 한편엔 반려견 공원이 마련되어 있고, 울타리 너머엔 테주강이 펼쳐져 있다.

 

내려갈 계단을 바라보고 내려온 계단을 쳐다본다.

올랐던 계단을 내려오고, 또 오르고 내려오고, 다시 또 올라야 하는 가파른 알파마 계단은 우리 인생을 닮았다.

 

늘 마시던 와인과 알파마 골목에서 구입한 작은 진저주는 남편 손에 들려있고 난 한결같이 맥주다.

연결되지 않는 인터넷을 대신해서 핸드폰에 저장된 음악을 오랜만에 감상하니 새삼스럽게 즐겁다.

이제 정말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