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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동유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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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4 : 트리에스테 너머 지난 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실시됐던 유럽 서머타임이 해제되는 날이 오늘이다. 덤으로 1시간을 거저 얻은 기분.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호텔 식당 사방에선 독일어가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 독일어권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이다. 아침 바다를 산책하고는 전날 다 못 고른 기념품을 사러 기념품점에 들렀다. 9시도 안 되는 시각인데 오픈한 가게가 있다. 머리 희끗한 여주인은 재빨리 영어를 뱉어가며 자기 물건들을 자랑한다. 당연히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먼저 발견하는 법. 가게 주인의 상술에 휘말려 기분좋게 두 개나 고른 우리~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는데 직원이 영어와 독일어 중 편한 쪽을 묻는다. 흠, 그대는 둘 다 능통하단 말이지. 돌아나오는 호텔 주차장엔 오스트리아 번호판을 단 승용차가 가득하다. 이젠..
크로아티아 3 : 그 바다, 모스체니츠카 오파티아 해변에서 늘씬한 여인이 유람선 승선 안내를 하고 있다. 오랜만에 유람선 한번 타 볼까나. 게다가 어린이는 무료라는데. 자그마한 유람선에는 독일어가 가득하다. 승선객 중 서양인 아닌 이들은 우리와 동남아 사람들 뿐. 아무도 시끄러운 이들이 없는데 젊은 동남아인 넷만 물색없이 떠든다. 나즈막한 산 아래 해안엔 가을 그림이 연속되고 유람선이 뿜어내는 물거품은 바다에 떠밀려 이내 흩어진다. 세련되지 않은 스피커에선 이탈리아 노래가 흥을 돋운다. 우리 먹고 싶은 것 말하기 할까. 자장면, 만두, 냉면, 활어회, 전복죽... 천천히 1시간을 물 위에 떠서 이른 곳은 이름도 어려운, 모스체니츠카 드라가. 작은 어선 떼와 관광용 보트가 쉬고 있는 곳을 지나면~ 이렇듯 고운 자갈 해변이 등장해준다. 낮지 않은 ..
크로아티아 2 : 리예카의 가을꽃 늘 새벽부터 부산 떨던 아침이 여행지에선 역시 느슨하다. 깔끔하게 차려진 맛있는 아침을 먹고 올려다본 하늘은 어제보다 한결 청명하다. 이젠 버스 타러 가야지. 호텔 직원이 적어준 버스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도착해서 버스에 오르며 행선지를 확인하니 아니란다. 건너편에서 타야 한다며 친절히 알려주는 버스 차장(?) 아저씨. 비엔나에도 있는 ㄱ자로 꺾어지는 굴절 버스다. 아침이라 군데군데 자리가 비어있어 얼른 골라잡아 안착하니 버스는 해안으로만 달린다. 오른쪽 시야에 들어오는 멀고먼 바다가 끝이 없다. 30분을 달려 다다른 곳은 오파티아보다 큰 항구 도시 리예카다. 대로 가까이엔 선착장이 길게 이어지고 그곳엔 큰 배들이 그득하다. 이곳에도 해변이 있을 듯한데... 밝은 톤은 아니어도 한길의 건물들은 중세를 벗..
크로아티아 1 : 아드리아 품은 오파티아 지난 여름 나폴리 바다를 보았음에도 이상스레 바다에 목말랐었다. 가을이 던져놓은 메마름 때문에 몸 속 물기가 빠져나가는 중이었을까. 바다로 떠나기로 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떠나는 아침은 여느 아침보다 더 분주하다. 전날 밤, 하늘에 달무리가 일더니 아침 길은 변덕의 집합체이다. 흐리다가 빗방울이 보이다가 햇살이 내리쬔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와 클라겐푸르트를 지나 국경을 넘어 슬로베니아로 들어가니, 국경에서 10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 통행 요금 징수하는 곳이 있다. 오스트리아와는 다르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체계다.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는 구간별로 통행요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운행 기간에 따라 자율적으로 통행권을 부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1년치 요금이 70유로(9만원) 정도이니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
체코 : 깊은 최면, 체스키크룸로프 마음이 휘날렸던 건 잠시일 뿐이었는데, 아직도 '체스키크룸로프'라는 최면에 빠져있는지. 한인성당 소풍에 끼어 '체스키크룸로프'로 간 9월 초. 체코의 자그마한 마을, 체스키크룸로프는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소박한 곳이다. 크룸로프 성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중세 15-18세기에 지어진 바로크와 르네상스 양식이다. 그들 위를 군림하던, 또 그들의 깃발이기도 했던 영주의 성인 크룸로프 성. 물가엔 그곳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초가을답게 높푸른 하늘~ 젊고 절도 있는 귀족이 향 좋은 차를 마시던 성 안 창가에도 연붉은빛 꽃송이는 유유히 피어있다. 성에서 내려보이는 아름다운 중세 마을. 성과 마을을 분리하는 듯하면서도 둘러싸고 흐르는 블타바강~ 운하보다 더 좁은 저 물들을 강이..
헝가리 : 소프론의 하늘 분명, 여름 실종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8월이 이렇게 차가울 순 없다. 카디건을 걸치고 단추까지 꼭꼭 채우고서야 문을 나서야 했다. 이곳의 8월 15일도 우리나라처럼 늘 공휴일이다. 재미있고 신나는 우연. 그 우연을 핑계 삼아 국경을 넘었다. 소프론은 오스트리아 동쪽 국경에 닿아있는 헝가리의 작고 오래된 도시다. 소프론에 들어서자마자 영어와 독일어로 쓰인 치과 간판들이 눈에 띈다. 헝가리 국경 도시에는 저렴한 치과 치료를 받으려는 서유럽인들이 많다더니 정말인 듯 하다. 낡은 중심 광장엔 유럽 어디서나 자주 띄는 정경들이 드러난다. 기념탑이 있고, 성당이 있고, 야외 레스토랑이 있다. 작고 낡은 민속품 가게도 오도카니 광장 한 켠을 지키고 있다. 거리를 걷다 만난 어느 레스토랑. 600년 된 그곳의 와인은..
체코 : 프라하의 악사 지난 주말, 어른들 모시고 프라하엘 다녀왔습니다. 봄 축제 행사로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고 있었죠. 구시가 진입도로를 차단하는 바람에 시내를 몇 바퀴나 뱅뱅 돌았는지요. 제일 먼저 간 곳은 프라하 성입니다. 16세기까지 보헤미아 왕가의 궁전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일부가 대통령 관저로 쓰이고 있는데, 인형 같은 근위병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키고 있지요. 성 안 한쪽에서 펼쳐지는 거리 악사들의 연주 또한 환상이었습니다. 프라하 성에서 바라본 시내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10세기부터 건축되어 100여년 전에 완성되었다는 성 비타 성당도 그윽하기 그지없습니다. 온통 축제 무대가 된 구시가 광장입니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중 마라톤의 출발 지점도 이곳입니다. 구시가 광장을 빠져나오면서 바라본 광장이지요. 왼편엔..
슬로바키아 2 : 봄비 속 브라티슬라바 2 성 마틴 성당과 나란히 이어진 낡은 건물이 성당보다 앞서 우리를 반긴다. 이젠 아무도 살지 않는 그곳 창엔 유리 대신 고흐의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이색적이면서도 독특하다. 순간 갈라지고 긁힌 벽면에 아까 스친 노인들의 얼굴이 아련히 겹친다. 고흐 건물을 지나 고딕 양식의 성당은 그 오른쪽에 입구가 있다. 내부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300-400년의 역사를 지닌 성 마틴 성당. 바깥에선 색을 분별할 수 없던 스테인드글라스가 어두운 성당 안에서 제빛을 낸다. 성당 맞은편 높다란 돌담은 건물들을 따라 그 앞을 견고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요새의 방어벽 같다. 그리고 저 언덕에 자리한 브라티슬라바성에 봄비 내리는 한적한 비탈길을 산책하듯 오른다. 젖은 비탈길엔 금빛 간판 화려한 작은 박물관도 있고, 자유와 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