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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빈에서 부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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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터슈팅켄브룬 스케치 오스트리아 빈의 북쪽에 위치한 운터슈팅켄브룬에서 생활한지 2개월이 넘었다. 3월 날씨는 겨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메마른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봄이다. 하늘도, 들판도 온통 푸르름이다. 우리 마을 인구는 700여명. 전형적인 농촌이다. 게마인데(지방자치사무소) 직원도 시장 포함하여 달랑 셋. 아이들은 게마인데 앞 정류장에서 통학버스를 타고 옆마을 학교로 등교하는데, 게마인데에서 사탕 받는 재미가 괜찮은가 보다. 기호도 기를 쓰고 아침 일찍 정류장으로 간다. 그리고 게마인데 옆엔 멋진 중년신사 혼자 지키는 은행이 있다. 우리 집 바로 옆은 성당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85%이상이 카톨릭 신자이고 카톨릭 관련 행사일은 다 공휴일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려대는 종소리가 처음엔 귀에 거슬렸지만 이젠..
벌레와의 처절한 전투 우리 집에 개미가 출현한 것은 4월 초순이다. 취침 전, 침대 위로 기어오르는 시커먼 개미 모습을 처음 봤을 땐 '그냥 잡으면 돼'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서울에 살 때도 그 흔한 바퀴벌레나 불개미와 동거해 본 적이 없었기에 개미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날도 개미가 가끔씩 보이긴 했지만, 내가 심심할까봐 개미가 놀러오는건가 생각하며 한 마리씩 저 세상으로 보냈다. 살생이긴 하지만 내가 뭐 불교신자도 아니고 우리 거주지를 침입한 미물 몇 마리 없앴다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마침 주말이라 빈 놀이공원에 갔다가 한국식당에서 맛있는 저녁과 노래방에 완전히 신나게 놀다온 그날 밤! 우리집에선 개미들이 파티를 열고 있었다. 시커먼 개미들이 자기집인양 온 동네 개미들을 ..
빈 북쪽마을, 운터슈팅켄브룬 내가 오스트리아에 온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작년 여름엔 여행이었고 지난 겨울의 방문은 생활에 대한 탐색이었으며, 올봄에 또 이곳에 온 이유는 살아가기 위해서다. 지난 겨울, 이곳의 종일 흐린 날씨와 예상할 수 없이 빠른 일몰 시간 때문에 난 거의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 시골이라 편의시설이나 문화시설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이라 같이 지내는 남편 친구 가족외엔 대화 상대도 없었다. 도저히 다니던 직장을 휴직하고, 와서 살고 싶은 마음이 깨알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기를 3주, 드디어 난 해법을 찾았다. 휴식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시간들을, 14년이란 긴 세월동안 집과 직장에 봉사해온 내게 주어진 선물로 여기기로 한 것이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남은 3주일 동안은 책을 읽으며 간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