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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서유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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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4 : 플란더스의 개 빈에서부터 확인한 일기예보가 절대 맞지 않길 바랐지만 눈뜨자마자 바라본 아침 하늘에선 비가 흩뿌리고 있다. 7시, 식당은 어제와는 달리 차분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올라왔을 때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빈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저녁 8시. 이 아침, 호텔 체크아웃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아직 둘러보지 못한 브뤼셀 쏘다니기. 가늘게 또 이따끔 세차게 뿌려대는 빗속을, 우산을 받쳐들고 그제 어제와는 조금 다른 루트로 브뤼셀을 둘러보기로 했다. 비가 내리니 지저분한 거리-브뤼셀은 그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꽤 지저분하다-가 정화되는 느낌이긴 하다. 호텔을 나온지 얼마 안 되어, 우산 사이로 또 새로운 만화 벽화가 보인다. 지금껏 만화에 특별한 애착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뜻하지 않게 발견되는 브뤼..
벨기에 3 : 겐트를 걷는 즐거움 브뤼헤 역으로 가는 버스는 조금 전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따라 천천히 달린다. 멀지 않은 곳에 운하가 보이는 거리도 지나고, 마르크트 광장 옆도 스치고, 낙엽 날리는 수도원 앞길도 살짝 비춰준다. 브뤼헤역에 도착하자마자 겐트 성피터스역으로 출발하는 열차 시각을 확인하니 출발까지 15분이나 남아있다. 그때 화장실에 가겠다는 작은밥돌, 급했는지 기차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내 말을 밀어낸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간지 10분이 흘러도 이 녀석이 나올 생각을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기차를 못 탈 가능성은 높았기에, 난 안절부절 남자 화장실 앞을 기웃거렸다. 바로 그순간 이글거리는 내 눈에 확 띈 세면대 앞의 작은밥돌, 여유까지 부리며 손을 씻고 있다. 뛰엇~! 플랫폼을 향해 셋이 전 속력으로 뛰면서도 잔소리를..
벨기에 2 : 브뤼헤의 가을 풍차 10월말과 11월초, 이즈음은 오스트리아 공휴일이 두 번이나 있고, 각급 학교에선 짧은 가을방학에 해당되는 시기다. 브뤼헤를 다녀오기로 한 10월 마지막 일요일인 오늘은 유럽 서머타임이 끝나는 날이기도 하다. 1시간을 벌고 일어난 아침 하늘은 다행히 맑은 편이다. 여름 아닌 계절에 여행을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바로 날씨다. 여름에야 대체로 일기가 좋은 편이고 비가 내리더라도 짧게 소나기처럼 내리는데 비해, 봄이나 가을 특히 가을에 쏘다닐 땐 흐리고 을씨년스러우며 비가 내리는 경우도 많다. 7시, 일찍 움직였다고 생각했지만, 객실이 많은 호텔이라 그런지 이미 식당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마음에 드는 자리 잡기도 쉽지 않은데, 하이톤으로 여기저기서 들리는 친숙한 언어. 한국어가 심히 부..
벨기에 1 :브뤼셀로 날다 늘 갈 곳을 떠올리고 떠날 곳을 정한 다음엔, 여행에 관련한 이런저런 예약을 미리미리 챙겨하는 내게, 언젠가 작은밥돌이 걱정 어린 눈길로 내뱉었다. "목숨을 걸어요, 목숨을...." 이번에도 목숨의 반은 하늘에 걸어두고 3개월 전에 예약한- 못 가면 비행기값 홀라당 날아가니까-저비용 항공기를 탄다. 유럽에서 몇 년 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저비용항공은 예약이 빠를수록 가격이 상상할 수 없이 저렴하다. 그러나 이번 항공기 출발 시간이 깜깜한 새벽 6시 50분, 늦어도 4시 40분엔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출발 전날 취침 전, 휴대폰 알람을 맞춰놓은 것은 물론 집에 있는 자명종 시계도 머리맡에 총 출동시켜 두어야했다. 휴대폰 알람소리에 화틀짝 놀라 일어나니 새벽 2시40분이다. 우리의 아침 양식인..
영국 6 : 추억 더하기 런던 도시 하나 바라보는데 4일은 너무나 짧고 아쉽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일찍감치 아침식사를 끝낸 다음 호텔 체크아웃하기 전의 마지막 여정을 챙겨본다. 이거 지하철역 직원에게 물어보면 안 될까, 어제 우리가 날렸다고 생각한 이 티켓, 혹시 구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런던도 비엔나처럼 버스나 지하철을 모두 시에서 운영하는 듯한데, 그렇다면 무슨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았다. 뭐, 적다면 적은 돈(7파운드)이지만, 쓰지도 못하고 날렸으니 많이 아까웠다. 또, 버스 운행 휴무일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연휴라 여행객이 많으리라 짐작할 수 있음에도, 버스승차권 판매기에 안내문 하나 붙여놓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으므로 어제 승차권 발권은 전적으로 우리만의 과실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직원에게 물어본..
영국 5 : 휴일, 또 휴일 어제 아침엔 찾지 못했던 버스승차권 자동발매기의 위치를 드디어 발견했다.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체질에 맞다는 결론을 내린 후라 주저없이 승차권 일일권 2장을 발권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나그네가 흥얼거리며 한 마디. 오늘은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네. 엥, 버스 안 다니는 날이 어딨어, 참~ 그런데, 버스승차권 발권에 성공한 순간, 또다시 지나가는 과객의 친절한 말씀. 오늘은 크리스마스라 버스와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단다. 갑자기 머리가 후끈후끈해진다. 그러고보니 오늘 아침엔 도로에서 버스를 못 본 것 같다. 버스 도착 시각을 알려주는 정류장 부스의 작은 전광판을 보니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다. 그럼 지하철 역으로 가보자구.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한 지하철 역은 출입구가 셔터로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다. 그 ..
영국 4 : 템즈강변에서 사진에서 본, 또 멀리서 본 웨스터민스터 사원은 백자 같은 흰색이라 여겼는데, 가까이 보니 세월과 역사가 밴 빛깔이다. 영국 국교회의 대표 웨스터민스터 사원은 8세기에 세워졌으며, 여러 번의 개축을 거쳐 지금의 양식이 되었다고 한다. 같은 고딕 양식이라 그런지 파리 시테섬의 노트르담 성당과 많이 닮은 느낌이다. 11세기 이후로 왕들의 대관식 장소로 쓰이고 있는 이곳도 가는 날이 장날이다. 크리스마스 행사로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비엔나엔 도나우강이 흐르고 파리엔 센강이 물결 치며, 템즈강은 런던을 가로지른다. 템즈강변에 자리한,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 런던의 당당함과 웅장함을 자랑한다. 국회의사당의 한쪽은 공사 중. 어수선한 자재들 틈에서도 청교도 혁명의 주역인 올리버 크롬웰의 눈매엔 ..
영국 3 : 헬로, 노팅힐 우리 가족에겐 여행시의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 아침 일찍부터 여행지 탐험에 힘쓸 것. 그런데, 이 호텔은 도무지 우리의 약속에 협조를 해 주지 않는다. 평소엔 7시 30분부터인 아침식사 시간이 휴일엔 8시부터란다. 뭐, 별 수 없다. 안 먹고 움직일 순 없으니. 게다가 유럽 대륙에 있는 국가보다 호텔비는 훨씬 비싸면서 식사는 왜 그리 부실한지. 오늘도 어제처럼 해 구경은 틀린 것 같은데, 일조량 결핍증인지 길가 승용차 안에선 한 남자가 잠에 취해 있다. 호텔 근처의 하이드파크엔 벌써 사람들의 흔적이 보인다. 우리도 가서 흔적 하나 남겨볼까. 흐리고 을씨년스런 하늘 아래 공원 분수대는 굵은 물줄기를 내뿜는다. 물줄기에서 떨어져나온 물방울 빛깔마저 흐린 아침, 백조와 비둘기 떼의 날개짓마저도 뿌옇다. 역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