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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서유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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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2 : 박물관 속 그리스 신화 큰밥돌 말에 따르면, 또 절실히 경험한 바에 의하면, 유럽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 연휴엔 무언가를 '관람하기' 위한 여행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 런던의 많은 박물관도 이때는 모조리 휴관이고, 뮤지컬 공연도 모두 하지 않았으니까. 진짜 오래도록 보고 싶었던 영국박물관의 그리스로마관을 한 바퀴 휘이 돌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어찌 표현할까. 허겁지겁 그리고 잠시 스쳐 지났을 뿐인 영국박물관 속 그리스 신화를 만나야겠다. 뤼키아에 출몰한 괴물 키마이라는 머리는 사자와 산양을 합친 것과 비슷했고 꼬리는 용을 닮았다. 이 괴물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기에 왕은 이를 퇴치할 용사를 구했다. 그러나 키마이라가 뿜어대는 불길 때문에 용사들은 키마이라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타 죽었다. 그때 뤼키..
영국 1 : 런던을 향하여 조금이라도 더 보려는 마음에 너무 욕심을 부렸나보다. 아침 7시 출발 런던 행 비행기.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여행 준비하는 손길이 바쁜 와중에도 눈꺼풀이 무겁다. 비엔나는 서울만큼 크거나 번잡한 도시가 아니기에 공항도 복잡하지 않은 편이다. 늘 특별한 기다림없이 금세 수속을 할 수 있었기에 이번에도 서두르진 않았다. 그러나, 출발 1시간 전에 도착한 공항은 예상보다 무척 분주했다. 체크인카운터 앞의 긴 줄은 크리스마스가 원인이다. 30분을 기다려 수속을 마친 후 모니터를 보니, 우리가 탑승할 항공기는 탑승 진행 중이다. 게다가 11월부터 강화된 유럽 항공기 내 액체류 물품 소지 제한에 대한 규정 때문에 검색대는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어찌됐든 다행히 지각은 면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저 사람이 누구더라,..
독일 3 : 로젠하임 속으로 독일 여행 마지막 날, 로젠하임(Rosenheim)으로 향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지명, 로젠하임. 아마도 오래 전,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던 식품 이름이 아니었을지. 오늘도 역시 거리를 방황한 끝에 로젠하임 중심가의 지하 주차장을 찾았다. 알고보니 문화정보센터인데 그 앞의 멋들어진 정원과 청동 작품들이 시선을 조인다. 몇 걸음 더 내딛는 수고를 하며 다다른 곳은 막스요셉 광장이다. 아기자기한 파스텔톤 건물들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고, 카페 유리창엔 모닝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향기로운 표정이 비친다. 광장 한쪽엔 1300여년 전까지 로젠하임의 동쪽 관문으로 쓰이던 작은 문이 있다. 광장 또다른 한편엔 1449년에 지어진 너무나 작은 성당이 눈에 띈다. 초에 불을 붙여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비는 기호. 맛있는..
독일 2 : 가미쉬 그리고 퓌센 어제, 도도한 뮌헨 흑맥주에 기선을 줬던 시간도 잠시, 유럽 서머타임이 끝난 오늘 여유 있고 가볍다. 산자락에 놓여진 작은 도시인 가미쉬와 아름다운 퓌센의 성들은 우리를 맞을 채비 중이다. 뮌헨에서 120km쯤에 위치한 퓌센으로 가기 전 독일아저씨 프랭키-회사직원-가 손가락 세워 꼽아준 가미쉬엘 가보기로 했다. 늘상 그러하듯 약간의 헤맴 끝에 가미쉬에 도착한 순간, 너무 예쁜 거리 모습에 탄성이 나온다. 알프스 자락에 펼쳐진 가미쉬 거리는 산마을의 옛 모습 그대로다. 건물 외벽마다 그려진 프레스토화, 깨끗하고 정감 있는 거리, 부서질 듯 바스락대는 낙엽까지 어느 하나 눈길을 모으지 않는 모습이 없다. 마을 자체가 아리따운 수채화다. 아쉬운 마음을 가미쉬에 재워둔 채 퓌센으로 간다. 크지도 높지도 않은 산..
독일 1 : 뮌헨의 안개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서둘렀다. 3일 간의 여행에 필요한 옷가지나 식품은 물론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야 했기에 출근하고 등교하는 여느 아침 못지 않다. 자동차로 독일 남부를 향해 떠난다. 며칠 사이 쌀쌀해진 기온, 그래도 다행히 햇살은 맑다. 잘츠 근처 휴게소에 잠시 들른 후 얼른 뮌헨을 품에 맞고 싶은 마음에 그대로 내달린다. 잘츠를 지난지 오래지 않아 국경이 보인다. 국경이라도 국가명이 적힌 이정표만 보일 뿐 더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 체코나 헝가리 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예약한 숙소를 찾느라 뮌헨 시내를 헤매긴 했지만 무사히 안착. 콘도 형식의 숙소가 깔끔하다. 조금 수다스러운 관리인 아주머니의 안내와 설명을 들은 다음, 밖으로 나왔다. 어느 새 오후 3시가 넘어있다. 트램을 타고 도착한 마리엔..
프랑스 6 : 라파예트 아침 식사 시간이 되자 눈이 떠진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처럼 재빨리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니, 식사 준비만 되어 있을 뿐 손님은 아무도 없다. 환상적인 크루아상과 카페오레를 든든히 먹고는 패션의 도시 파리를 느끼기 위해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향했다. 라파예트까진 걷기엔 꽤 멀었지만, 관광지 파리가 아닌 사람 사는 파리를 겪고픈 마음에 골목골목을 걸어보기로 했다. 좁은 거리에 늘어선 과일가게, 옷가게, 정육점, 미용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별반 다르지 않다. 건물마다 길다란 창 하단엔 철제로 만든 검은 난간이 보인다. 파리의 대표 백화점인 라파예트의 내부 장식은 유적을 방불케 했다. 벽의 부조나 천장 장식은 궁전을 연상하게 한다. 열심히 눈요기를 하다보니 호텔 체크아웃 시간이 가깝다. 지하철을 타고 ..
프랑스 5 : 베르사유 가는 기차 아침식사 후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숙소 이동을 제안한다. 자기네 사정을 말하며 아래층 다른 한인 민박의 가족실을 추천하는데 흔쾌히 옮기기로 했다. 물론 그곳 아닌 중심가 호텔이다. 파리에서의 하루 이틀 쯤은 호텔을 원했었는데 오히려 잘됐다 싶은 마음이다. 짐을 챙겨 숙소 밖으로 나왔다. 간식을 사러 기호와 슈퍼마켓에 간 사이, 남편은 책자에 나와 있는 호텔에 전화를 걸어 예약하는 민첩성을 발휘한다. 쓸만하다. 산장 분위기 나는 호텔에 짐을 넣어두고 곧장 베르사유로 간다. 1685년에 완공된 베르사유 궁전은 누구나 다 들르는 명소로, 파리 근교인 일드프랑스에 위치해 있다. 벌써 11시다. 멀리 교외 전철인 RER C선이 보이는데, 재미있게도 2층짜리 열차다. 얼른 2층으로 올라가 전망 좋은 자리..
프랑스 4 : 몽마르트르의 구름 파리 여행 4일째. 시간은 냉큼냉큼 잘도 흘러간다. 오늘 행선지는 몽마르트르다. 지하철에서 내려 몽마르트르 언덕 위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오르는데, 돌계단의 오물과 악취가 오감을 어지럽힌다. 널려 있는 쓰레기를 흔히 볼 수 있는 파리 시내지만, 몽마르트르의 더러움이 단연 최악이다. 중앙에 거대한 돔이 있는 사크레쾨르는 1919년에 세워진 로만비잔틴 양식 성당으로, 서유럽에선 접하기 쉽지 않은 양식이다. 희디흰 빛깔이 고고하고 단아하다. 마침 성당에선 성모 몽소승천일-공휴일-을 맞아 미사가 한창이다. 뒤쪽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을 따라 일어서고 앉기를 몇 번 반복하자 이어 뭉클한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가슴에 미끄러진다. 안내도에 표시된 몽마르트르 묘지는 사크레쾨르 성당의 동편이다. 산책하듯 한적한 거리를 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