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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2004 여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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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7. 26. 월 (비 오는 날) 우리 아들 기호가 사고를 쳤다. 사진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만지다가 필름 있는 곳을 연 것이다. 얼른 내가 받아 닫았지만 리턴이 되었는지 다시 표시 번호 1번~ 오후에, 퇴근한 남편이 확인을 위해 카메라 필름 있는 곳을 열어보니 필름은 그냥 중간쯤 걸려있는 상태이다. 어제 비엔나에서 찍은 사진들이 다 날아가버린 것이다. 중앙 묘지, 시립 공원, 케른트너 거리, 슈테판 성당, 왕궁, 그리고 도나우 강변. 다시 비엔나에 갈 기회가 있겠지만 많이 속상하고 아쉽다. 기호에겐 타이르면서 이번 기회에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기호도 아쉬움을 표현한다. 지금은 오후 5시 20분. 핀카펠트엔 비가 내린다.
2004. 7. 25. 일 (비엔나의 휴일) 기호는 오스트리아에 온 후부터 매일 6시면 기상이다. 아직 적응이 안 되는건지 자유로운 마음에 일찍 일어나는건지, 심심하다는 기호를 즐겁게 위협(?)하여 수학 문제를 풀게 한다. 물론 기호도 기쁜 마음으로 수학 공부를 한다. 오늘은 미뤄뒀던 일기를 이틀 분이나 다 써놓고는 아침부터 강아지 모모와 사과놀이를 한다. 사과놀이란, 집마당 사과나무에서 잔디밭으로 떨어진 사과를, 기호가 던지면 모모가 물어오고, 그 사과를 기호가 또 던지면 또 모모가 물어오고 하는 것인데, 둘은 서로 마음 잘 맞는 형제 같다. 약간 흐린듯한 아침 하늘. 하늘 저편에선 파란 부분이 조금씩 보이지만 아침 바람은 꽤 차다. 한여름이라도 오스트리아의 새벽과 밤은 서늘하고 시원하다. 천혜의 날씨다. 기다리던 휴일의 비엔나 투어는 여행가이드..
2004. 7. 24. 토 (오스트리아 피자) 드디어 주말이다. 맑은 아침에 갑자기 비가 내린다. 오늘 어디 간댔더라 하며 걱정하는 사이 금세 비가 그쳐버린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다가도 어느새 환하게 개는 오스트리아 여름 날씨의 전형이다.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제 널려놓은 마당의 파라솔 위를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그 사이 두 아가의 울음소리가 집안 구석구석에서 울려온다. 남편은 또 담배가게엘 간다고 해서 심심한 기분에 또 따라나섰다. 그런데 가게 문은 닫혔고, 가게 앞 자동판매기는 무언가 문제가 생겼는지 계속 동전을 토해 낸다. 차선책으로 근처 레스토랑에서 조금 비싼 담배 쟁취에 성공하는 남편. (담배가 뭐 그리 좋은지, 금연 가자~) 이곳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라도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남편도 오스트리아에 여러 번 다녀서인지..
2004. 7. 23. 금 (핀카펠트에서) 어제의 긴 항공기 탑승이 무척이나 피곤했나 보다. 아침식사는 신선하고 맛있는 빵으로 들고, 점심엔 비빔국수를 먹었다. 그리곤 낮잠에 바로 빠져버렸으니. 내리 3시간이나 침대 위에 누워있었단다. 시차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아침식사 후, 남편이 담배를 사러 간다기에 시내 중심가 쪽으로 따라 나섰다. 시내 중심이라 해도 작은 도시라서 몇 개의 사거리를 낀 2차선 도로와 주변 건물들이 전부다. 도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멈춰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달려오던 차가 횡단보도 앞에 정차한다. 이곳 도로는 무조건 사람이 먼저란다. 참 낯설다. 담배도 우리나라처럼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Tabak과 주유소샵 등에서만 판매한다. 정신을 챙겨서 거리 풍경들은 접하고 나니 비로소 유럽에 온 실감이..
2004. 7. 22. 목 (오스트리아 가는 날) 오늘이다, 오스트리아 가는 날. 기대에 싸여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나 보다. 휴대폰에 맞춰놓은 알람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으니. 5시 반, 밖은 이미 훤하다. 새벽인데도 이미 핸드폰에 들어와있는 문자가 있다. 고선생님의,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준다는 문자. 정중히 거절 문자를 보내고 어젯밤에 챙겨둔 짐을 살폈다. 여러 가지 준비물들을 확인한 다음, 자고 있는 기호를 깨우니 금세 일어난다. 며칠동안 떨어져있던 아빠를 만나러,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이 기호에게도 약간의 흥분으로 작용했나 보다. 7시 40분, 식사를 하고 문단속을 한 후 집을 나섰다. 공항 버스를 타러 길동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공항으로 오시겠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길동에서 1시간 40분이나 버스를 타고서야 드디어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