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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삶과 사랑 사이

가을 햇볕

 

가을 햇볕

 

안도현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먹는
고추장도 되고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
도 되고.

 

 

 

9월 중순이 지나면서 해가 말도 못하게 짧아져버렸다.

아직은 일광절약시간제가 실시되고 있는데도,

저녁 7시면 어둠이 내려버린다.

서머타임이 끝나는 10월말엔 깜깜한 오후 5시를 만날 것이고

12월과 1월엔 컴컴한 오후 4시를 맞아야 한다.

짧은 가을과 긴 겨울을 날 마음가짐이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작년보다는 올해가

조금씩이나마 느긋해지는 걸 보면,

아니 각오의 칼날이 무디어지는 걸 보면,

이곳의 비수기와도 꽤나 친근해진 건 사실이다.

이제 막 시작된 낙엽의 향연도 두럽지 않고

예측 불허의 비바람도 초연할 수 있을 것 같다.

간만에 기특한 소리~

 

그런데, 사실 나도 요즘 살짝 가슴이 뛴다.

빛나는 사랑 탓도 아니고,

가을 햇볕 탓은 더더욱 아니다.

가끔 몰려오는 원인 불명의 짜증을 혼자 분석해보고는

역설을 들이대며 즐거운 상상을 한다.

나는 분명 몇 해 동안 무심했던

가을을 앓기 시작한 것이라고.

 

뭐, 나이가 몇갠데 그런 타령이냐구요?

흠흠, 아님 말고~

그래도 그래도

가을이 이렇듯 아름다워보이니

제 인생의 눈금도 조금씩 가을을 향하나 봅니다.

봄보다 또 여름보다 한결 성숙해진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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