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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빈에서 부친 편지

헨젤과 그레텔

'헨젤과 그랬대'

인터넷으로 우리나라 인기 프로그램을 보던 중, 시청자가 보낸 재미난 별명 중 탁월한 단어들의 조합이 흘러나왔다.

헨젤과? 뭘 그랬대? 누가? '헨젤과 그레텔'의 기막힌 변형이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페라가 Staatoper 아닌 Volksoper에서 상연된다고 한다.

연말엔 일도 없이 꼼지락대느라 예약 시기를 제대로 잡지 못했고, 그래서 새해 첫날부터 폭스오퍼 홈페이지를 찾았으나,

국립 오페라극장과는 달리 독일어로만 된 예약 과정을 세세히 알기엔 우리의 독일어가 너무나 가련하고 단출했다.

겨우 예약을 마친 공연의 좌석은 구석탱이, 그것마저도 몇 자리 남아있지 않았다.

 

1월 6일, 이르지 않은 오후.

늘 승용차를 세우던 왕궁 주차장에 역시나 차를 재워두고, 트램을 타고 폭스오퍼로 향했다.

낮이 짧은 시기라 4시가 되니 벌써 해가 서녘에 걸려있다.

 

오페라극장엔 Volksoper라는 글자가 선명히 찍혀있고, 벽면마다 1-2월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설명서와 포스터가 걸려있다.

그러고 보니 각 오페라마다 두 달동안 3-5번밖에 공연을 하지 않는다.

 

오페라극장 벽면을 따라 들어간 입구 안쪽엔 공연을 보러온 빈 시민들이 시끄럽지 않게 북적이고 있다.

큰밥돌이 정문 오른편 창구에 예약 바우처를 들이미니, 창구직원이 왼편 계단 옆의 예약 전용 부스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곳에서 예매권을 관람권으로 바꾼 후에도 잠시 입장이 제한된다.

산소가 부족한 기분에 얼른 밖으로 나왔다.

오페라극장 맞은편엔 낡고 지극히 유럽스러운 붉은 트램이 영화 장면처럼 스르르 지나간다.

 

다시 곧 극장 2층에 올라, 객석으로 들어가려하니 나이 지긋한 남자 직원이 입장을 막는다.

입구 앞에 마련된 코너에 코트를 벗어 맡기고 오란다. 

자리에 앉으니 짐작했던 것보다 시야가 훨씬 좋지 않다. 다음부턴 얼른얼른 예약해야겠다는 다짐.

 

동화를 원작으로 한 공연이라 어린이 관객이 참 많다.

1893년에 초연된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은 3막으로 구성되어 1시간반 가량 상연되었다.

알려진 동화와는 일부 다른 부분이 있어서 미리 내용을 숙지하고 갔지만 이내 홀라당 잊어버리고, 그저 성악가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무대 아래쪽 오케스트라의 연주에만 빠져들었다.

무대 배경도 예쁘고 그레텔과 요정의 노래와 자태도 참 고왔다.

 

공연이 끝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출연 성악가들이 하나씩 또는 단체로 무대 인사를 한다.

갈채 속에 드러난 그들의 환한 낯빛, 그것은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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