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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남유럽 이야기

스페인 10 : 광장, 깊은 소통의 뜰

감사하게도 스페인 여행 내내 하루도 맑지 않은 날이 없다.

매일 맑고 환하니 더위 쯤이야 우리 의지로 충분히 이겨 넘길 수 있다.

 

어제 휘청거렸던 발이 꽤 부어있어 발등에 파스를 갈아 붙였다.

종아리엔 어제 뜨거운 햇살 때문에 붉게 돋아났던 자국도 그대로다.

아침 7시반, 늦은 스페인의 아침식사 -8시반부터라니 헉- 전에 다녀와야 할 곳이 있다.

늦잠을 포기하고 일찍부터 움직이는 이유는 단 하나. 오후에 이 아쉬운 세비야를 떠나 마드리드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비야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방법은 둘이다.

하나는 고속철도인 AVE를 타고 2시간반 만에 주파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버스로 6시간 걸려 도착하는 방법이 있는데,

스페인 기차사이트의 백만번의 예약 결제 오류로 인해 할인요금 예약이 불가했기에 장거리 버스로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빈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토요일(6.28) 오후 출발이었고, 이렇게 세비야에서 마드리드까지의 이동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토요일 아침에 마드리드로 움직이는 건 불가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선택한 방법이 원래의 세비야 일정을 하루 줄여 금요일 오후에 마드리드로 가는 방법이었다.

 

오렌지나무
세비야 대성당

아, 참을 수 없는 이 상큼한 공기.

거리엔 여전히 오렌지 나무가 줄지어있고 세비야 대성당은 역시나 우리를 반겨준다.

산타크루즈 지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눈으로 달려드는 궁전 같이 화려한 건물이 호텔이란다.

 

최고급 어느 호텔
세비야 대학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되기도 한 세비야 대학을 지나 이른 곳은 스페인의 도시마다 있는 에스파냐 광장.

그 수많은 에스파냐 광장 중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다는 세비야의 에스파냐 광장이다.

그래, 광장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얼마나 넓은지 카메라에 반도 담을 수가 없다.

 

에스파냐 광장

9년에 걸쳐 1929년 완공된 에스파냐 광장의 건축물은 그해 박람회장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주정부 건물로 쓰이고 있으며,

건물 아치 아래엔 스페인 각 도시의 문장과 역사가 타일에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또 이곳은 몇 년 전, 우리나라 CF에 등장했던 곳으로 김태희가 플라멩코를 추던 배경이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CF 모델의 춤은 살짝 떠오르긴 하지만 그 무대였다는 이 에스파냐 광장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에스파냐 광장

타일에 그려넣은 그림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아름답고 화려하다.

그림 왼편 작은 동판에 설명이 새겨져있긴 했지만 불친절하게도 스페인어만 있어서 그 내용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너무 좋다, 이 광장. 정말 멋져서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콜럼버스 기념탑

알카사르 성벽을 끼고 콜럼버스 기념탑을 지나 호텔로 돌아오는 미로가 이젠 좀 익숙해진다.

이른 아침 태양은 점점 타오르기 시작하고 이마와 등허리엔 땀이 흘러내린다.

 

호텔만큼 예쁜 식당에 할머니가 혼자 열심히 맛난 아침을 들고 있다.

와, 뭐가 이렇게 다양해. 1인용 유리병에 담긴 우유와 주스 종류도 다양하고 빵, 머핀, 쿠키에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추러스까지

훌륭한 진수성찬이다. 마드리드에 도착하면 추러스를 먹으러 가려 했는데 안 가도 되네.

 

10시반, 최종적으로 주어진 시간을 이용해 마지막 세비야 탐험에 나선다.

시간의 문양이 채색되어있는 산타크루즈의 미로 같은 길을 더 걸어보고 더 헤매본다.

 

"카드키가 없어." 체크아웃을 하려 돌아온 호텔 객실 앞에서 큰밥돌이 외친다.

'저 없어요', '나도 안 갖고 있는데' 작은밥돌과 난 무혐의를 주장했다.

키를 가지고 나온 사람이 없다면 방 안에 그대로 꽂혀있을 터, 리셉션 직원과 확인한 결과 예상이 맞았다.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대도시 세비야엔 버스터미널이 둘인데, 마드리드행 버스를 타기 위해선 그라나다에서 도착한 어제와는 다른 터미널인 아르마스 광장

앞의 터미널로 가야 했다. 그런데, 이 규모 큰 터미널의 시스템은 너무나 원시적이고 엉성했다.

터미널의 전광판은 위층에 달랑 하나일 뿐, 버스 출발 승차장이 있는 아래층 어디에도 모니터가 없었고, 40여개의 승차장엔 행선지가

적힌 종이 하나 붙어있지 않았다.

인포 센터에서 알려준 대로 19번 승차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지만 사람들만 바글거릴 뿐, 출발 시각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에고, 우리 마드리드 못 가는 거 아냐.

나는 부은 발을 끌고 승차장에 세워진 버스들을 샅샅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드리드 행 버스와 같은 회사의 버스를 찾아 기사를 붙잡고 물었더니 마드리드 가는 버스는 19번 승차장 출발이 맞다고 한다. 

30분이나 늦게 출발한 버스는 당연히 30분 늦게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스페인에서 마지막 숙박을 할 호텔은 최중심가에 있다.

호텔에 들어 체크인을 하는데 숙박비 계산을 먼저 하란다. 체크인할 때 결제하는 호텔은 처음이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그란비아 거리를 지나 드넓은 마요르 광장으로 간다. 

맞아, 여기 다시 오기로 했었지. 세비야 에스파냐 광장처럼 마음을 틔우는 이곳 마요르 광장.

나폴리 플레비시토 광장, 브뤼셀 그랑플라스만큼이나 가슴 속 깊은 숨을 내뱉을 만큼 넉넉히 트인 공간이다.

 

광장을 마주 하면 깊고 담대함으로 인해 심장 저 맨끝의 음절들이 스스로 알아서 마음 밖으로 튕겨져 나올 것만 같다.

야외 레스토랑에 앉아, 바르셀로나의 맛난 샹그리아가 그리워 샹그리아를 주문했더니 딱 물 탄 맛이다.

광장은 정말 최고로 마음에 드는데 말야, 사람이 아니네. 속여먹는 사람이, 마음에 전혀 아니라구.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

밤 11시에도 거리는 정말 덥다. 

세비야처럼 마드리드 중심 거리의 하늘도 덮여있다, 더 화려하고 더 느슨하게.

마지막 밤이 지나가는 아쉬움.마음에도 기억이 덮인다.

 

 

< 2008. 6. 27. 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