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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0 뮌헨·빈

8. 8 (일) : 비 내리는 님펜부르크

초저녁부터 잠에 빠졌던 어제에 이어, 시차 적응 안 되는 새벽이다. 깜깜한 새벽 3시. 

빈에 살며 여행하던 예전과는 달리, 시차라는 걸 겪는 걸 보니 우리의 주거지가 서울인 것이 확실했다.

서머타임 기간인데도 5시가 되자 하늘이 밝아오고, 6시엔 빵을 공급하는 차량이 호텔 마당으로 들어온다.

그즈음 일어나는 두 남자, 12시간을 자고 일어난 얼굴이 아주 행복해 보인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오늘의 첫 번째 행선지인 매년 9-10월 옥토버 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진비제’로 간다.

이 드넓은 광장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상상만으로도 아주 설레는데, 600만 명이나 운집한다는 옥토버 페스트를 볼 날이 오겠지.

광장에 소리없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을 뒤로 하고 10시에 오픈하는 ‘노이에 피나코텍’으로 걸음을 옮긴다.

 

옥토버 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진비제

뮌헨의 세 ‘피나코텍’은 미술관으로, ‘알테 피나코텍’, ‘노이에 피나코텍’, ‘모던 피나코텍’이 있다.

‘알테’에는 라파엘로, 렘브란트, 엘그레코 등 시대적으로 오래된 화가의 작품들이 많고, ‘노이에’는 고흐, 모네, 클림트 등

19세기 이후 회화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모던’은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의 집성지이다.

우린 ‘알테 피나코텍’은 패스하고 ‘노이에 피나코텍’으로 입장한다. 일요일엔 ‘피나코텍’ 관람료가 단 1유로다.

 

노이에 피나코텍
구스타프클림트, 파블로피카소, 그리스로마신화
빈센트반고흐

‘노이에 피나코텍’에서 클림트와 에곤 쉴레, 피카소, 세잔느 그리고 드가와 모네, 마네, 또 고갱과 고흐를 만나고

꿈결 같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을 걷다보니 11시 반이 넘어있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엔 넋을 반쯤 걸어두고 멍하니 서서 그의 영혼과 손을 맞잡았다.

샵에 들러 이들의 그림이 담긴 엽서 몇 장을 뿌듯한 마음으로 가슴에 안았다.

현대 디자인과 설치미술이 펼쳐져있는 ‘모던 피나코텍’은 내부를 휘이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모던 피나코텍

점심식사는 슈바빙에서 하기로 했다.

전혜린의 에세이에서 수없이 나오던 그 거리, 레몬빛 가스등이 켜지고 꺼지던, 낭만과 고뇌와 사랑의 거리.

뮌헨에 처음 들렀던 5년 전 가을엔 스산함만 흐르던 그 거리.

 

 

 

슈바빙

활짝 맑은 여름날의 슈바빙은 이름만으로도 경쾌했다.

파리의 몽마르뜨르나 샹젤리제처럼 지명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곳, 슈바빙도 그러했다.

 

여기저기 흔적을 날리며 찾아간 슈바빙의 또다른 목적지는 한국식당이었다.

그런데, 식당의 무언지 모를 초라한 분위기-슈바빙과 어울리지 않는-를 떨치지 못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일어선 우리.

러나 수고로움을 마다 않고 찾아간 슈바빙의 다른 곳에 위치한 한국음식점은 공사 중이라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한식에 정말 목이 말랐었지만, 차선으로 들어간 곳은 바로 피자리아.

손님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음식 맛은 걱정 안 해도 될 듯했는데, 역시나 아주 맛있다!

 

점심도 맛나게 먹었으니 이젠 비텔스바흐 왕가의 여름 별궁이었던 님펜부르크 궁전을 향한다.

트램 타러 가는 길에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싶었는데, 님펜부르크 앞에 내렸더니 비가 소나기 빗발처럼 쏟아진다.

트램 정류장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애석하게도 우리 우산은 호텔 객실 캐리어에 얌전히 모셔져 있으니까.

정류장엔 우리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꽤 많다. 다 함께 비 구경을 하며 10여분을 기다린 후 움직여본다.

 

5년 전에 보지 못한 님펜부르크 궁전은 크고 웅장했다.

전체적인 구도와 정경도 멋지고 특히 정원은 베르사유나 쉔부른 못지 않게 정말 아름답고 예뻤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더 급한 일이 생겼다. 또 비가 내리는 것이다.

 

님펜부르크

비가 천하를 지배할 수는 없는 법, 호텔로 가는 길에 햇빛이 나더니 호텔에 다다르자 무지개가 뜬다.

그 무지개를 보며 우리 셋은 어제에 이어 또다시 눈꺼풀 위에 천근만근을 올린다.

세상에나 이렇게 시차 적응이 안 될 줄이야.

 

5시에 감긴 눈을 여러 차례 뜨기를 반복하다 8시에 몸을 일으키는 의지를 발휘했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어제 갔던 슈퍼마켓 Edeka 근처엘 가봤지만 상점이나 식당이 많지 않았고 일요일이라 주변도 한산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호텔 안 레스토랑.

인도식당이라서 양고기시금치 카레와 야채양송이 카레를 주문했는데, 밥과 함께 먹으니 살 것 같았다.

미리 챙겨간 고추장까지 넣어서 비벼 먹으니 산해진미가 이건가 싶었다.

 

뮌헨에서 맥주 없이 잠든다는 건 어불성설이겠지.

돌아온 객실에서 패스트푸드점표 감자튀김과 샐러드를 안주 삼아 Krombacher에 빠져들었다.

여행과 추억을 이야기하며, 뮌헨의 밤을 우리의 기억에 켜켜이 쌓아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