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2010 뮌헨·빈

8. 7 (토) : 도이치박물관과 마리엔플라츠

새벽 2시가 넘었을 뿐이지만 잠이 깼다.

서울은 아침 9시가 넘은 시각, 확실히 시차 적응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하늘은 흐리고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6시에 몸을 일으켰다.

 

남편은 휴가 기간이었지만, 무선 인터넷에 접속해 회사 업무로 하루를 시작했다.

무선 인터넷은 호텔 투숙객에게 제공되는 쿠폰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 체크인하면서 받은 무료쿠폰이 내내 유용했다.

유럽 대부분의 호텔에선 무선 인터넷도 요금을 지불하고 사용하게 되는데, 보통 시간당 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아침 7시 반,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를 만끽하기 위해 호텔 식당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일상에선 아침식사 준비와 출근 준비로 늘 먹는둥 마는둥 하는 아침식사지만, 여행지에선 아주 든든히 아침을 챙긴다.

역시 호텔 예약 사이트의 평은 정확했다. 무선 인터넷 무료 사용도 기분 좋은 일인데, 아침식사까지 아주 훌륭했다.

테이블마다 파란 포트에 담겨있는 커피는 얼마나 맛있었는지.

 

9시가 넘어 밖으로 나왔다. 쏟아지는 빗발이 만만치 않다.

우산을 펼쳐들고 지하철과 트램을 번갈아 타고 도착한 곳은 이자르 강에 인공 섬을 만들어 조성한 도이치 박물관이다.

폭 좁은 이자르 강의 물살이, 내리는 비 때문인지 매우 빠르다.

이른 토요일 아침, 박물관은 한산하다. 한산한 박물관과는 달리 전시물들의 규모와 다양함은 매우 놀랍다.

 

이자르강
도이치 박물관

1903년에 만들어진 도이치박물관은 세계 최초의 과학기술 박물관으로, 건물 전체의 복도 길이가 13km에 이른다.

선박, 항공, 자동차, 기차, 기계, 컴퓨터, 우주과학 등 50여 가지 분야의 17,000여 점의 실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세계 최초의

독일 잠수함을 비롯하여 1897년산 최초의 디젤엔진, 1909년에 제작된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구텐베르크 인쇄소 모습 등

우리에게 낯익은 전시물들도 아주 많았다.

이런 실물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과학 기술의 역사를 만드는 완벽한 시스템이 바로 독일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었다.

기계치인 나와는 아주 대조되게 남자들은 이런 전시물들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라이트형제의 비행기

박물관 겉핥기를 하고 나서 12시가 넘어 박물관 밖으로 나오다 보니, 아침과는 달리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다.

마침 다행히 비가 그쳐 있다.

도이치박물관에서 뮌헨의 중심 마리엔 플라츠로 가는 트램 안, 흐린 하늘도 주변 건물도 비엔나 분위기다.

같은 독일어권이기도 하지만, 오스트리아와 남부 독일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인지 공통점이 참 많다.

 

마리엔플라츠에 다다르니,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5년 전의 기억이 자동 재생된다.

당시 어렸던 아들의 기억에도 마리엔 플라츠와 뮌헨시청사의 인형들이 등장하는지 아주 감회 깊은 표정을 짓는다.

그때도, 지금도 뮌헨 여행의 시작점인 곳이란 점에선 변함이 없다보니 사람들이 많은 것도 변함이 없다.

 

마리엔플라츠

5년 전의 뮌헨 여행은 뮌헨에 대한 여행이라기보다는 주변 도시인 퓌센과 가미쉬를 둘러보는 것이 목적인 여행이었다.

물론 2박 3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빈에서부터 승용차로 움직이다보니 오다가다 도로에 쏟아놓은 시간도 길었고, 아이들의

가을방학이 낀 주말이라는 복잡한 상황까지 맞물려, 단지 뮌헨 공기 마셔보기만 체험한 채 뮌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리엔플라츠를 지나며 만난 것은 빅토리안 시장. 어느 도시든 시장은 사람 사는 멋을, 활력을 주는 곳이다.

빅토리안 시장에서 독일적이고 유럽적인 음식들만을 구경하다보니 우리들의 머릿속엔 밥알이 둥둥 떠돌아다닌다.

벌써 빵이 싫어졌다는 말씀.

 

서울의 명동 같은 노이하우저 거리로 발길을 옮긴다.

맥주가 유명한 아우구스티너켈러엘 가려 했으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실내가 내키지 않아 근처 야외레스토랑에 앉았다. 

식사와 음료를 주문한 후 피로를 식히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갑자기 고음을 내지른다.

나를 꼭 닮은, 아들의 엄살을 슬쩍 야단하려 하는데 가만 보니 아주 작은 벌레가 아이의 손가락을 문 것이다.

남편도 예전 출장 중에 같은 경험이 있다는데, 아들이 상당히 아파한다. 그즈음 나와주는 고마운 점심식사.

식사 후엔 C&A에 들러 서울에서 챙겨오지 않은 아들의 반바지를 고르니, 점원의 독일어가 비엔나처럼 친근하다.

 

S반을 타고 호텔로 오는 길.

U반 노선이 주를 이루는 빈 중심과는 달리 뮌헨은 시내를 관통하는 S반과 U반 노선이 정말 다양하게 많다.

호텔이 위치한 역에는 잘 내렸으나, S반역엔 처음 내리다보니 그 짧은 거리를 빙빙 돌아 헤매면서 호텔까지와 버렸다.

알고보니 S반과 U반 역이 나란히 있었다는 사실.

 

역에서 호텔까지 빙빙 돌아서 오는 동안 제일 중요한 마트를 열심히 찾아봤지만 눈에 띄질 않는다.

오후 3시, 이미 날씨는 활짝 개어있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Edeka엘 아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남편은 객실에 남고, 지도에 표시된 그곳을 금세 찾은 Edeka에서 우린 정말 신이 나서 그 안을 왔다갔다 했다.

비엔나의 슈퍼마켓인 Plus나 Hofer같은 느낌이다보니 마치 고향에라도 온 듯 신바람이 났다.

물과 맥주, 간식, 과일 등을 어제 주유소 샵에서보다 3배나 많이 사고도 같은 가격이라니, 굿!

 

비엔나와 다른 점이라면 유리병이나 PET병에 든 제품을 구입할 땐 병에 대한 보증금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빈 병을 구입한 곳으로 가져다주면 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조금 불편하고 번거롭긴 하지만 환경을 위해선 상당히 괜찮은 제도다.

 

잔뜩 장을 봐다놓고 부자가 된 듯한 우리는 5시가 넘어 낮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7시 이후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기로 약속해 놓고는 아차차.

시차 적응이 전혀 안 된 이유로 꿈도 없는 잠 속에서 헤어나질 못한 것이다.

길고긴 시간을 잠에게 양보한 뮌헨에서의 두 번째 밤이 이슬비처럼, 산들바람처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