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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0 뮌헨·빈

8. 11 (수) : 가장 평온한 세상, 프라터

역시나 어젯밤의 맥주는 상당히 과했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더라도 확인할 건 확인해야 한다.

항공기 예약 사이트에 문의했던 답변을 살펴봐야 했던 것이다.

답변인즉, 남편의 귀국편은 도시 변경이 불가하고, 예약상 같은 도시인 빈에서 아웃하더라도 8월말까진 자리가 없어서

날짜 변경도 불가하다고 했다. 정말 항공대란이다.

 

아침 겸 점심은 서울에서부터 준비해 온 라면이다. 우린 외국에만 나오면 대한민국표 라면을 너무나 사랑한다.

오스트리아에 살던 4년 동안에도 한국식품점에 진열된 라면을 열심히도 사다 먹었다.

더군다나 오늘 같은 날엔 속풀이에도 아주 그만이다.

 

라면을 먹은 후, 남편은 업무에 열중이고 아들 녀석은 마트에서 요거트와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는 내게 내민다.

물 만난 고기처럼 아파트 근처 마트를 제 집 앞 마트인 양 드나드는 아들, 아마 녀석도 나처럼 별 것도 아닌 빈의 마트가

그리웠을 것이다. 그래, 이것도 먹자고.

 

2시가 넘어서야 실외 바람을 맞는다. 낮 기온이 꽤 높은 듯했다. 여름 더위가 느껴진다.

트램 5번을 타고 프라터로 향하기로 했는데, 깜빡한 게 있었다. 빈의 트램은 냉방이 안 되는 것이다.

바깥보다 훨씬 더운 트램 내부, 그 안에서 15분을 버티다가 지하철로 옮겨타니 역시 천국이다.

 

빈에 살 때 자주 드나들던 곳, 프라터 공원. 놀이 기구도 있고 잔디가 넓게 펼쳐진 야외도 있다.

여전히 평화롭고 한결같이 평온하다. 오가는 눈빛들이 다 행복해 보인다.

숙취 있는 얼굴로 벤치에 앉았다. 습도가 높지 않은 나무 그늘은 살랑거리며 시원한 바람을 챙겨온다.

 

프라터

4시다. 프라터 역의 회전초밥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곳 역시 예전에 가끔 들르던 곳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빈 여행의 테마는 추억 따라가기 그리고 추억 되짚기다.

속이 편치 않은 나는 제대로 먹을 수는 없었지만-두 남자는 잘 먹음- 서울에서 간혹 그리워했던 그 맛을 듬뿍 느껴본다.

서울이나 빈이나 같은 연어 초밥인데도 이상하게도 빈의 초밥이 더 맛있게 여겨졌다. 추억과 그리움 때문인지.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BILLA에 들렀다.

빈의 과일은 정말 싸고 맛있다. 씨 없는 청포도와 복숭아를 잔뜩 사들고 가는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다.

 

저녁, 인터넷으로 우리나라 뉴스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자다 깨어보니 밤 11시, 간신히 세수만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어쩌다보니 잠이 주요 주제가 된 여행이 돼버렸다. 우리가 지나는 꿈길은 여전히 종일토록 고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