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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0 뮌헨·빈

8. 12 (목) 후 : 한여름밤의 축제

U1 슈테판플라츠역

카그란 역에서 지하철 1호선(U1)을 타고 빈의 구시가인 1구로 간다.

빈 여행의 중심이자 출발지인 슈테판플라츠까진 8정거장, 15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슈테판플라츠는 빈에 살 때 한 달에 서너 번은 꼭 가던 곳이다.

 

슈테판 성당

우린 늘 왕궁 앞에 차를 세운 뒤 명품샵이 즐비한 콜마크트 거리를 걸었고, 그라벤 거리를 지나 슈테판 성당 앞을 머물곤 했다.

슈테판 성당 앞을 스쳐지나면 케른트너 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 거리 끝엔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

 

1구 그라벤 거리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아들 녀석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슈테판 옆 Aida 앞에서 줄을 서고는 다른 여행객들처럼

거리를 유쾌하게 쏘다녀본다. 늘 그렇듯 구시가는 아련한 떨림과 그리움을 건네준다.

 

마리아힐퍼 거리

6구의 마리아힐퍼 슈트라세에 갈 일이 생겼다. 한국 음식 때문이다.

준비해 온 라면과 김치 등이 이미 고갈되었기에 이틀 남은 여정을 버틸 한국 식품들이 필요했다.

마리아힐퍼 거리는 빈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가로, 중저가의 대중적인 샵들이 길고긴 거리를 따라 펼쳐진 곳이다.

이 거리의 한국식품점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취한 뒤  8구의 숙소로 향했다.

 

5시쯤 도착한 숙소 근처 지하철역에서 숙소 쪽으로 걸어가다가 오스트리아에 살 때도 못 보았던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경찰들은 사고 차량을 이동시키고 있었고, 다른 차량들과 트램은 연이어 줄 서 대기하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었다.

그런데, 빠르지 않게 진행되는 사고 수습 상황이었지만 항의하는 사람도, 경적을 울리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역시 선진국이다.

 

종일 움직인 육신을 잠시 쉬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적으로 쉬는 맛도 썩 괜찮다.

7시쯤 먹은 우동은 속을 달래기에 아주 괜찮았지만, 한국식품점에서 구입한 김치-식품점 주인이 직접 담근-는 맛이 없다.

저녁식사 후 다시 밖으로 나온 우리. 트램으로 움직인다.

 

미술사 박물관

왕궁과 자연사 박물관, 미술사 박물관 앞을 오락가락하다가 빈 시청사 앞으로 자리를 잡는다.

미술사 박물관은 내가, 아니 아들도 좋아하는 그리스 신화에 관련된 작품이 많은 곳-물론 유럽 미술관 어디든 많음-이다.

입구의 테세우스 조각상부터 전시실마다 필레몬,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등 신화적인 회화들은 물론 조각상들이 가득하다.

신화적인 작품 외에 브뤼겔, 벨라스케스, 루벤스 같은 이름난 화가의 그림을 보는 기쁨도 크다.

 

왕궁

빈 시청사 앞 광장엔 여름이면 펼쳐지는 축제가 한창이다. 이름하여 필름 페스티벌.

여름철 2개월 동안 오페라, 클래식 콘서트, 발레 등 다양한 공연을 담은 영상을 빈 시민들과 공유하는 축제다.

오스트리아에 4년 살았지만 나와 아들이 이 축제를 관람한 건 단 한 번, 그나마 남편은 한 번도 없었다.

 

인파라 할 만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2차 세계대전 후 국회의사당보다 오페라하우스를 먼저 재건한 시민들답게 그들의 음악 사랑은 대단하다.

 

빈 시청사

우린 대형 화면의 오른편 스탠드에 앉았다.

대형화면 앞 정면에도 많은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좌우측에도 계단형 스탠드가 조성되어 있었다.

큰길에서 바로 이어지는 시청사 앞 광장 초입엔 음식 판매소와 테이블이 마련되어 음악과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다.

빈에 거주하던 4년 전 여름, 가장 친한 친구가 빈에 방문했을 때 우린 테이블에 앉아 꿈같은 축제를 즐기며 추억을 지었다.

 

필름 페스티벌

아직 영상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스탠드에 앉아서 축제 분위기에 함뿍 젖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곁에 앉아있던 20대 초반의 남녀가 그 자리에 아이팟과 삼각대를 놓아둔 채, 자리를 봐 달라 한다.

생전 처음 보는 동양인인 우리를 뭘 믿고...

 

8시 40분, 주최 측의 책임자가 무대에 올라 여러 나라 언어로 인삿말을 한다.

곧이어 화면에선 클래식 선율이 흐르고, 자리를 가득 채운 관객들은 화면 속에 그들의 영혼을 들여놓는다.

40분을 감상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우리.

 

국회의사당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한 멋이 있는 구시가의 야경을 뒤로 한 채 트램에 올랐다.

숙소인 8구 아파트에 들어서는 냉장고에 모셔둔 맥주 캔을 들고는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의 아쉬움을 꺼내놓는다.

밤의 여신은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계 바늘을 오른쪽으로만 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