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2010 뮌헨·빈

8. 13 (금) : 빈숲과 판도르프

8구 아파트

오늘 아침 식사 메뉴는 남편은 또 우동, 아들과 난 오븐에 구운 마늘 바게트다.

오스트리아엔 오븐에 넣어 굽기만 하면 식사로 충분한 식품들이 많이 판매되고 있는데, 마늘바게트도 그 중 하나다.

긴 바게트 사이사이에 마늘버터가 촉촉히 숨어있어 고소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낸다.

예전에 빈에 살 땐 냉장 바게트나 냉동 피자-도우가 얇고 바삭한 유럽식 피자-를 간식으로 애용했었다.

그 맛도 꽤 괜찮은 편이어서 지금도 가끔 그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8시 반, 아파트를 나선다.

오스트리아의 여름 해는 5시 전에 이미 솟아오르기 때문에 아주 이른 출발은 아니다.

 

오늘은 빈숲이다.

빈숲은 빈의 외곽에 위치한, 말 그대로 숲이 우거진 넓은 지대로, 그린칭이나 하일리겐슈타트가 많이 알려져 있다.

이미 두어 번은 다녀왔던 지역이고 아주 애착이 가는 곳은 아니었지만 왠지 이번 여행에선 잠시라도 들르고 싶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베토벤하우스와 베토벤 유서의 집을 다녀왔던 기억, 그린칭의 호이리게에 머물렀던 기억.

그 기억의 초상을 찾아 이곳의 푸른 내음을 품으려 하는 건지도 모른다.

 

예전엔 승용차로 움직였지만, 오늘은 지하철 하일리겐슈타트역에서 버스 38A를 타고 그린칭으로 향한다.

아침이라 유명한 호이리게-그해 생산된 와인을 파는 술집-가 오픈했을 리는 없지만, 그저 맑은 기운을 마음에 담고 싶었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고, 호이리게에서 맑은 아침 공기을 맞이하고도 싶었다.

한산한 그린칭의 아침이 평온하고 잔잔하다.

 

 

그린칭
그린칭

빈숲의 고지대인 칼렌베르크까진 다시 버스를 타고 움직인다.

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인데, 특히, 철거되었는지 2층 전망대가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도나우강이 보이고, 처음 빈으로 이사 왔을 때 살던 고층아파트가 눈에 띈다.

청명한 날은 아니었지만 빈의 전망을 바라보기엔 꽤 괜찮은 날이다.

 

칼렌베르크
칼렌베르크

빈숲을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여권을 숙소에 두고 왔다!

오후에 판도르프아웃렛에 가기로 했는데 물품 구입 후 택스리펀에 여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깜빡하고 사본만 챙겨왔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숙소 근처에서 피자를 사 들고 숙소에서 널부러져 챙겨먹으며 잠시 쉬어본다.

 

트램을 타러 다시 길을 나선다.

판도르프아웃렛을 오가는 셔틀버스는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에만 운행을 하는데, 셔틀버스가 출발하는 오페라하우스 앞

버스 승차장엔 이미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 있었다.

빈에 살 땐 늘 승용차로만 판도르프아웃렛엘 다녔기에 이 무시무시한 여행객들 틈에서 무사히 버스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이다.

 

빈 오페라하우스

1시, 판도르프아웃렛 가는 첫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앞문은 여행객들이 몰려들어 완전 아수라장이다. 빈에서 이런 무질서는 처음 보는 것 같다.

나는 거의 마지막 순서로 버스에 올랐지만 버스를 못 탄 두 남자들 덕분에 다시 내려 다음 버스를 타야 했다.

1시간 간격으로 있다던 버스가 10분 후, 우리 앞에 멈춰선다. 성수기라 추가 배차한 버스인 것 같다.

 

40여분을 달리는 동안 밖은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다행히 도착하니 해가 쨍쨍~

2시간 동안 급속으로 쇼핑을 마치고, 4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려니 정말 바쁘다.

 

숙소로 향하는 도중에 남편만 바로 숙소로 가고, 난 아들과 함께 BILLA에서 초콜릿과 쿠키 등 서울로 가져갈 물건들을 구입했다.

빈에 살 땐 SPAR와 HOFER를 애용했는데, 빌라가 스파나 플러스와는 진열이나 체계가 다르고 또 단시간에 쇼핑을 하다 보니

계획했던 물품들을 몇 가지 빼고 샀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어쩔 수 없고.

드디어 내일 아쉬운 귀국, 대충 짐을 싸 놓고는 다시 숙소를 나섰다.

2번 트램을 타고 구시가의 케른트너에 도착, 거리 모습 하나하나를 눈으로 훑으며 그라벤 거리까지 걸어간다.

예전에 가끔씩 들르던 그라벤의 레스토랑에 앉아 마지막 저녁식사를 나누며 맥주도 함께 가슴에 담아본다.

아쉽고 또 아쉬운 마지막 밤.

 

숙소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9시 뉴스를 시청하며 다시 맥주 캔을 들었다.

맛있고 추억 어린 이 맥주를 다시 마시려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 것인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여름엔 비가 오래 내리지는 않는 빈인데, 유난히 강한 빗줄기가 천둥 번개와 함께 쏟아진다.

잠자리에서도 우리들의 머리 위에선 빗소리가 여전히 강하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