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왔으면 하고 소원했던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10시 45분 빈을 출발해서 핀란드를 거쳐 서울로 귀국한다.
빈에서의 마지막 라면을 끓이고-여행엔 라면- 어제 1구의 아카키코에서 구입해 조금 남겨둔 초밥을 곁들였다.
짐을 챙기는데 열린 거실 창문 너머로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남자가 큰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그래, 우리 이제 떠난다구.
약속된 장소에 아파트 열쇠를 두고, 7시 10분 아파트를 나선다.
지하철로 서역까지 이동해서 공항버스를 탔고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8시 20분.
핀에어 데스크를 찾아 줄을 섰는데, 우리 앞에 한 무리의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단체 관광객의 인솔자는 일본인이고 현지가이드는 백인-아마 오스트리아 사람인 듯-인데, 이 백인 남자 입에서
유창한 일본어가 줄줄 흘러나온다.
백인의 입에서 일본어가 튀어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던 우린 놀란 눈으로 그 남자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줄을 서기 시작해 탑승 수속을 다 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시간.
앞에 서 있던 승객이 많은 편도 아니었건만, 일 처리가 얼마나 느린지 우리 뒷줄에 선 사람들은 비행기를 놓칠 지경이다.
탑승 수속을 마친 후, 판도르프아웃렛에서 구입한 물품에 대한 세금도 돌려받고 나니 남편의 전화벨이 울린다.
H의 아빠다. 어디냐고. 공항이라니까 화들짝 놀란다. 오후 비행기인 줄 알았고 배웅해주려 했다며 아쉬워한다.
내 집처럼 드나들던 빈 공항인데, 배웅은 뭘. 그리고 다음에 또 올건데, 그럼.
활주로를 이륙한 항공기 아래로 빈 슈베하트 공항 주변의 정경이 보인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번 추억을 밟으려 또 다시 찾아올 곳. 심장이 짙은 아쉬움으로 채워진다.
빈을 떠난 소형항공기는 경유지인 헬싱키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서울 가는 핀에어 항공기가 출발하는 헬싱키 반타공항 38Gate 앞엔 한국말만 들린다.
대기 시간이 금세 지나 탑승한 항공기, 54열 좌석은 엔진소리가 꽤나 시끄럽다.
남편의 귀국 동행여부가 이틀 전까지 결정이 안 나는 바람에, 서울 출발 전 인터넷으로 배정했던 원래 좌석이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역시 원래 앉으려 했던 자리가 최상의 자리이긴 했다.
항공기가 출발하고 그 시각, 서울은 비가 내리고 있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좌석마다 개인 모니터가 있긴 했으나 한국 영화는 서울 출발할 때 이미 본 ‘하모니’ 하나뿐이고 한국어 자막 지원이 되는
영화는 한두 개밖에 없었다. 뭐, 다른 프로그램도 비슷한 처지.
서울까지 날아가는 8시간이 전혀 고단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잠이 들고 깨기를 자연스럽게 반복하다보면 시간은 후딱 지나가버린다.
정말 지나치게, 더이상 그럴 수 없을만큼 사무적인, 핀에어의 한국인 승무원을 신기하게 느꼈을 뿐.
서울에 도착한 날은 출발한 토요일에서 하루가 지난 8월 14일 일요일, 공항은 덥고 끈적인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일상이다.
꿈을 꾼 듯한 이 모든 추억들을 심장 한 쪽에 고이 기억하며, 다시 떠날 미래를 기약한다.
뮌헨이 선사한, 또 빈이 선사한 새롭고 아름다운 추억들.
기억은 일상의 힘듦을 잊게 해 줄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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