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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1 홍콩

8. 12 (금) 전 : 마카오, 남부유럽을 찾아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이 울린 이유는 8시에 출발하는 마카오 행 페리의 승선을 위함이다.

어제 IFC몰의 기화병가에서 구입한 빵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6시 30분에 호텔을 나선다. 다행히 맑은 날이다.

 

마카오 행 페리를 타기 위해서는 호텔 근처의 완차이 역에서 페리가 출발하는 셩완 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홍콩에서 지하철을 타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지하철 내 에스컬레이터는 체코의 프라하만큼이나 빠르고, 지하철 승강장엔 서울 지하철처럼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완차이에서 셩완까진 3정거장, 셩완 역에 도착하여 페리터미널로 이동하는 중, 통로 벽면에서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들의

콘서트를 알리는 홍보물을 보인다.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릴 적엔 홍콩 영화와 홍콩 배우들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는데 이제는 뒤바뀐 상황이 되었다.

 

빅토리아 항구

마카오드래곤의 페리 티켓을 당일 왕복으로 구입하여 출국 심사장으로 가니 헤아릴 수 없이 인파가 가득하다.

중국 본토에서 온 관광객들인지 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동어와는 다른 느낌의 언어를 떼지어 시끄럽게 구사하고 있다.

예전엔 홍콩과 마카오가 각기 다른 나라의 식민지였지만 지금은 같은 중국 내 도시인데, 왜 출입국심사를 하는지.

미리 준비한 멀미약을 원샷으로 마셔주고 7시 40분, 드디어 배에 승선한다.

 

8시에 출발한 큰 규모의 페리가 커다란 파도의 움직임 따라 출렁거리듯 움직인다.

배의 출렁거림과 함께, 10년 전 묵호에서 울릉도까지 가는 배 안에서 3시간을 고통스러워했던 기억과 몇 달 전 제주 본섬에서 

마라도까지의 짧은 울렁거림의 기억이 고스란히 통합되어 스쳐간다. 멀미약을 준비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복용한 멀미약 덕분에, 또 이른 기상 때문에 페리 안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뒷좌석의 중국인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엄청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나의 단잠을 깨우기 위해 정말 애쓰는 중국인들이다.

 

베네시안 호텔 앞

9시 20분, 마카오다.

마카오에는 페리 터미널이 두 곳인데, 우리가 탄 마카오드래곤 페리는 타이파 페리터미널에 도착했다.

줄 서서 입국카드까지 작성한 우리는 이곳에서 마카오 중심인 세나도 광장으로 움직여야 한다.

광장 근처 리스보아호텔행 셔틀버스는 이미 출발했기에 일단 베네시안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베네시안까지 가기로 했다.

10분만에 도착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분위기를 한껏 내놓은 그 호텔 앞에서 세나도까진 시내버스로 움직여야 했다.

물론 버스 정류장을 한번에 찾지 못하고 오가며 헤매다 겨우 찾아, 게다가 꽤 기다려 26A 버스에 올랐다.

 

세나도 광장

홍콩 화폐와 마카오 화폐는 거의 같은 가치-홍콩 달러가 아주 약간 값어치가 높음-를 지닌다고 한다.

콩 화폐는 마카오에서 사용할 수 있지만 마카오 화폐는 홍콩에서 사용 불가다.

버스에 오르며 20달러(약 3,000원)짜리 지폐를 요금함에 넣었다.

실제 요금보다 약간 더 되는 돈이었지만 그냥 넘어가야한다. 마카오 버스 내에선 거스름돈이 없기 때문이다.

홍콩 버스 역시 그렇다고 들었는데, 홍콩에선 옥토퍼스카드만 사용했기 때문에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거리의 뜨거운 햇살도 힘겹지만, 높은 습도 역시 홍콩이나 마카오나 모두 견디기 힘겹다.

베네시안 앞에서 세나도까지는 20분, 버스 안은 홍콩처럼 시원했기에 내리려니 아쉽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마카오는 남부 유럽 느낌이 꽤 난다.

우리는 포르투갈에 가보지 않았기에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인접 지역인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색채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몇몇 건물 외관이나 건물의 한 부분 또는 거리 일부가 그렇다는 것이다.

 

마카오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으나 그 시간보다 중국의 일부였던 시간이 훨씬 길기에 포르투갈적이기보다 중국적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마카오에 오기 전, 마카오 관광청에서 보내온 가이드북을 보며 이곳에서 남부 유럽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기에, 마카오 역시 중국의 한 도시일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도심의 길을 따라 움직이던 중, 우리나라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나왔던 에그타르트 가게가 눈에 띄었다.

물론 '꽃보다 男子'라고 씌여있었기에 알아챈 건데, 가이드북에서는 그곳 에그타르트 맛에 대해 좋지 않은 평을 내고 있다.

그러니 그냥 통과. 사실 너무 더워서 에그타르트를 입에 댈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성 바울 성당

이번 여행에서는 항공과 호텔, 교통, 먹을거리에 대한 준비와 조사는 했으나 볼거리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았다.

궁금하면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을 열어보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슬쩍 스치듯 지나면 되는 것이었다.

유럽을 다닐 때처럼 어느 미술관과 박물관엘 가야 하고 어떤 유적을 봐야 하는지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았다.

 

리스보아 호텔

이제는 무더위를 뚫고 세나도 광장 너머에 있는 MGM 그랜드호텔로 걸음을 돌린다.

언뜻 보기엔 10분이면 도착할 듯 보였지만 10분도 더 걸어 도착한 곳은  MGM 아닌 리스보아호텔이었다.

MGM 그랜드호텔은 거기서 조금 더 가야 했다. 헉, 이 정도인 줄 알았으면 세나도에서부터 택시를 탈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