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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1 홍콩

8. 12 (금) 후 : 증오의 MGM

고온다습이라는 엄청난 여름 기후를 뚫고 MGM 그랜드호텔로 가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남편의 지인이 강력 추천한 MGM 그랜드호텔의 점심 뷔페 때문이었다.

사실 세나도 광장 주변의 중심가와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등장했던 베네시안 호텔이 마카오 여행의 목적이었는데,

여행 떠나기 며칠 전 남편이 던진 MGM 그랜드 호텔의 점심 뷔페 발언은 마카오 여행에 대한 기대를 배가시켰다.

 

아핫, 그 뷔페가 그렇게 괜찮다고. 그럼 그 호텔 홈페이지에 한번 들어가 볼까.

호텔 홈페이지에 명시된, 그리고 내 눈으로 확인한 International Buffet 레스토랑의 이름은 분명 'Rossio'였다.

 

Rossio

리스보아 호텔을 나와 MGM 그랜드호텔까지도 아주 짧은 거리는 결코 아니었다.

드디어 MGM 그랜드 호텔, 그러나 흐르는 땀과 높은 습도가 주는 불쾌지수 때문에 녹초가 돼버린 우리.

게다가 호텔로 들어간 입구는 카지노 쪽이었는데, 호텔 직원은 아들녀석을 보더니 만18세 미만은 카지노를 가로질러

통과할 수 없으며 레스토랑으로 가려면 다시 둘러가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한국말로 '안 돼, 돌아가, 미안 미안해'라는 말까지 날려준다.

 

어쩌겠어, 다시 한참 돌아가야지,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상태.

둘러온 MGM 어느 중국 뷔페 레스토랑 앞에서 남편은 그 레스토랑 직원에게 본인이 찾는 뷔페 레스토랑인지를 묻는다.

그 곁에서 내가 호텔 홈피에서 본 바로는 그곳 이름은 중국 뷔페 아닌 Rossio라고 말해도 추천인을 거론하더니 그곳이

아니라며 화를 낸다. 그러나 Rossio가 맞았다. 지인이 완전 잘못 알려준 것이었다.

 

Rossio

그러나 Rossio 레스토랑에 들어가 앉아서도 남편은 신경질을 내며 나를 몰아세웠다.

여행이란 걸 하면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화도 나고 서러워서 나는 식사도 하지 않고 한참을 앉아있기만 했다.

두 남자는 접시를 두어 번 채우더니 남편이 아들에게 다 먹었냐고 묻고는 그만 가자고 한다.

 

지금 뭐하는 거니. 여기 오자고 한 건 내가 아니거든, 이름 잘못 알아온 것도 내가 아니거든, 모두 너 때문이거든.

그제서야 난 자리에서 일어나서 음식을 챙겨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 얼굴에선 감정이 터질 만큼 북받쳐 올라 눈물이 분수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MGM을 나온 뒤, 세나도 광장으로 돌아오는 교통편을 이용하기 위해 오전에 잠시 멈췄던 베네시안 호텔로 이동한다.

택시를 타고 아까 버스로 건넜던 다리를 다시 지난다. 마카오의 버스와 택시도 홍콩처럼 모두 운전석이 오른쪽이다.

 

중심가를 살짝 벗어난 마카오 시내는 지극히 중국적이다.

남유럽의 흔적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택시로 15분 만에 도착한 베네시안 호텔.

 

베네시안 리조트

베네시안 호텔은 정말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와 비슷했는데, 어떤 곳은 이탈리아 바티칸의 모습을 본따기도 했다.

호텔 입구로 들어와 상점이 모여있는 'The Grand Canal Shoppes'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꽃보다 남자'에 등장했던 곳, 화면으로 보면서 정말 베네치아 같아서 신기해 했던 바로 그곳이다.

 

베네시안 리조트

건물 형태도, 운하도, 운하에 떠있는 곤돌라까지도 베네치아를 닮았다.

그러나 건물도, 운하도 모두 사람이 빚어낸 것이었고 공간 자체가 실내였기에 하늘 역시 만들어낸 것이었다.

베네치아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지만 베네시안 리조트는 2004년 베네치아를 여행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화려한 베네시안 리조트를 뒤로 하고 다시 홍콩으로 가기 위해 베네시안 셔틀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보는 리조트 외관도 베네치아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도 보이고, 리알토 다리도 보인다.

 

버스가 타이파 페리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은 3시 50분.

홍콩 행 5시 티켓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4시 페리 승선 여부를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한다.

페리 출발까진 10분밖에 안 남았으니 아주 급한 상황이 돼버렸는데, 마카오 출국 심사 줄은 정말로 길다.

 

마카오의 타이파 페리터미널

우리에게 안내된 선실은 티켓에 명시된 일반석 아닌 1등석 선실이다. 거의 비어있어 홍콩에서 출발할 때와는 달리 쾌적하다.

햇살이 살짝 비치는 선실, 입국 카드-출입국 카드를 몇 번 쓰는 건지-를 다 써놓은 남편이 정신없이 잠에 빠져있다. 

 

KFC표 에그타르트

다시 도착한 홍콩 셩완 역에서 KFC를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홍콩의 대표 간식인 에그타르트도 못 먹어봤네.

웬만한 제과점보다 맛나다는 KFC 에그타르트를 구입해서 재빨리 완차이행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퇴근 시각인지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호텔 객실은 여전히 시원하고 KFC표 에그타르트도 꽤나 맛있다.

이것저것으로 간단히 저녁 뱃속을 채우고 몸의 긴장을 풀어놓는다.

길고도 험한 하루, 홍콩과 마카오를 오갔던, 힘들고 또 힘들었던 시간들을 순식간에 놓아버렸다.

(글을 쓰면서도 왕창 울컥한다. 예전 일인데도 잊을 수 없다. 나쁜 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