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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4 파리·스부·잘츠·빈

8. 2 (토) 후 : MAK, 너는 자유다

# 오스트리아 응용미술관, MAK 

 

U3 Stubentor역엔 오스트리아 응용미슬박물관인 MAK이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공예품 박물관으로, 다양한 양식의 장식품과 식기 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U3 Stubentor역

맑고 뜨거운 햇살 아래 지하철로 이동한 Stubentor역, 그 앞 새하얀 건물이 퍽 인상적이다.

정갈한 빈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향기로운 꽃 가게도 MAK 앞을 차지하고 있다.

 

MAK

MAK은 예전에 빈에 살 때, 우연히 이곳의 1층 샵에 들렀던 기억이 있다.

신선하고 재미난 디자인의 문구와 기념품이 인상적이었던 기억만 있을 뿐 내부관람은 하지 않았었다.

하긴 그땐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딘지조차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니까.

오스트리아의 많은 미술관과 전시관이 그러하듯 이곳 MAK 역시 만19세까지의 학생들에겐 입장료가 무료다.

 

MAK 1층
MAK 1층

 

# 클림트를 만나다

 

그리하여 아들녀석은 무료, 나의 입장료는 7.9유로.

MAK 입구부터 독특한 디자인의 장식과 다양한 문양의 가구들이 보인다. 여기 느낌 괜찮은데, 나쁘지 않아.

 

MAK : 클림트

아, 클림트다.

내가 클림트에 대해 애정이나 관심이 큰 건 아니지만 뜻하지 않게 만난 거장의 그림은 예기치 않은 기쁨을 주었다.

클림트 작품을 만난 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니까 말이다.

책장을 그대로 재현한 테피스트리 비스무레한 벽 장식물도 현대적이면서 고풍스럽다. 저것도 클림트 느낌이 드네.

 

MAK

# 디자인 세상, MAK

 

중앙에 실내 중정을 두고 사면을 둘러 지은 MAK 건물은 스페인 남부의 이슬람 건축양식과 닮아있다.

사면 중 한쪽인 저편 통로에서 현장 강의를 듣는 무리들의 표정이 자유로우면서도 무척 진지하다.

2-3층을 먼저 둘러본 후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지금껏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들녀석의 눈이 반짝인다.

그러더니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내어 마음에 드는 전시물들을 찍기 시작한다.

 

내 눈에도 개성적인 전시물들이 가득했으니 디자인을 전공하는 아들녀석의 특별 관심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특히 야구글러브 형태의 1인용 흰 소파, 아주 마음에 든다. 상품으로 나온다면 구입하여 거실 한쪽에 놓아두고 싶다.

내가 감상한 MAK은 동서양의 전통 있는 다양한 가구, 유서 깊고 희귀한 장식품과 식기류, 또 디자인과 실용성을 겸비한

생활용품이 가득한 곳이었다. 한번쯤은 가보아도 실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곳이다.

 

# 그리운 사람들

 

다시 돌아온 숙소 근처의 U4 Spittelau역, 슈트뢱에서 전에 자주 먹던 치즈빵을 사려했는데, 문이 닫혀있다.

뭐래, 겨우 1시반인데. 가만 보니 한여름 토요일엔 정오까지만 영업한다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난 EUROSPAR에, 아들은 피자가게에 들러 다시 숙소로 돌아왔고 점심은 테이크아웃해온 맛있는 피자다.

 

이젠 숙소에서 뒹굴거릴 일과 저녁에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일만 남아있다.

여행은, 가끔은 이렇게 긴 숨을 쉬면서 호흡을 고르기도 해야 한다. 이렇듯 되새김질도 하면서 말이다.

 

저녁 7시, 약속대로 U1 Rennbahnweg에서 H 엄마와 H, H 동생을 만났다.

우리가 빈을 떠날 때 아가였던 H 동생이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란다.

늘 바쁜 H 아빠는, 우리가 먼저 만나 회포를 풀고 있던 식당으로 조금 늦게 나타났다.

 

아, 이런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할까. 모두들 여전하다.

9시, 아들녀석과 H는 슈베덴플라츠의 카페로 가고 우리의 남은 대화는 끝이 없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여 오스트리아로 유학 온 H 엄마의 이야기.

H의 외할머니는 딸-H엄마-과 멀리 떨어져 사는 서운함을 이렇게 표현했단다.

바이올린 말고 가야금을 시킬 걸, 그러면 유학을 보낼 필요도 남의 나라에 살 일도 없었을텐데.

 

슈베덴에서 다시 만난 아들녀석과 숙소로 돌아온 시각은 밤 11시.

밤하늘엔 해가 지고 별들만 남아있었지만, 우리 마음의 해는 여전히 지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