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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17 프푸·하이델·콜마·파리

8. 11 (금) 후 : 파리의 오후

오랑주리에서 개선문까진 지하철 1번선으로 움직인다.

파리는 서울의 1/6에 불과해서 걷는 걸 좋아하고 체력만 따라준다면 몽마르트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명소를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우린 짧은 거리 도보도 무리인 나이가 되었기에 몇 년 전부터 도보는 꼭 필요할 때만 애용한다.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샹젤리제 거리

Charles de Gaulle – Étoile역은 개선문 바로 아래에 있다.

역을 빠져나오면 관광객과 자동차들로 둘러싸인 개선문이 거짓말처럼 바로 눈 앞에 출현한다.

개선문이 위치한 샤를드골에투알 광장은 샹젤리제 거리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이곳에서부터 콩코드 광장까지의 긴 대로가 바로 샹젤리제인데, 2km에 이르는 이 거리엔 5개의 지하철역이 있다.

체력만 허락한다면 콩코드 옆 오랑주리에서부터 샹젤리제를 걸으며 천천히 개선문까지 다다르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개선문을 보고 샹젤리제를 잠시 거니는 건 추억으로 가는 즐거운 선택권이었다.

개선문 가? 에펠탑 볼 거야? 몽마르트르는? 베르사유는 안 가지?

남편은 두 번째, 난 세 번째 만나는 파리라서 선택지가 다양하고 또 아주 자유롭다.

 

개선문에서 에펠탑 가는 30번 버스

3년 전 아들녀석과 파리에 있을 땐 샹젤리제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개선문에 눈도장을 찍고는 에펠탑까지 걸어 움직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났고, 우린 체력을 시험해볼 만큼 젊지 않으므로 에펠탑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버스가 멈춘 곳은 Trocadéro역 사이요 궁 근처로, 사이요 궁은 센강변 에펠탑의 조망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에펠탑

개선문의 하늘은 맑았으나, 에펠탑 위엔 무채색의 구름 덩어리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파란 하늘, 사이요 궁 앞 정원 중앙의 물 뿜는 분수대, 그 주변의 푸른 잔디와 나무, 에펠탑 뒤 마르스 광장의 푸르름이

조화를 이뤄야만 에펠탑의 조망이 최고조에 달할 수 있는데, 음울한 날씨 때문에 어느 하나도 멀쩡한 것이 없다.

게다가 사이요 궁 쪽 난간엔 예전에는 없던 긴 사각형의 안전대가 설치되어 생명체의 접근을 막고 있다.

아마도 사진에 애착을 부리던 여행객이 난간 위에 올랐다가 인명 사고로 이어진 게 아니었을지.

 

이제 시테섬 Cité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날이 흐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오후 일정이 분주한 느낌이다.

트로카데로역에서 6번선을 승차하여 몽파르나스역에서 4번선으로 환승하는 도보 거리가 정말 멀다. 

거짓말 보태 1km는 되는 듯, 서울 잠실역 저리가라다.

 

세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

사이요 궁전 부근엔 요기할 만한 식당이 없어서 Cité역 근처에서 식사를 하려 주변을 탐색하니 마땅한 게 눈에 안 띈다.

그래, 저 앞 중국식당에서 라이스 먹자. 몇 가지를 골라 탁자 위에 올렸는데, 실패다, 아주 맛이 없다.

식사 후 세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 쪽으로 오니 쓸모 있는 식당들이 여럿 모여 있다.

아쉬운 마음이 살짝 들려하는데 어느 레스토랑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혼자 야외 좌석에서 식사를 한 20대 한국 여인이 계산서를 받은 후 서버에게 건넬 식사비를 테이블 위에 놓아둔 모양인데,

집시가 그 돈을 집어 훔치는 순간 서버가 잡은 것이었다.

종업원은 집시에게 경찰을 부른다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한국 여인은 자리에 앉은 채 남의 일인 듯 미동도 없이 한글 여행서와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사건이라 아무 상관없는 우리도 눈을 뗄 수 없던데 그 여인네 대단하다.

 

노틀담 대성당
파리시청사
센강

어마어마한 인파에 싸인 노트르담 대성당에게 인사를 건네고 파리시청사 옆을 스쳐 센강을 건넌다.

파리의 오후는 여전히 흐리고, 구름의 짙은 그림자는 내내 센강을 비추고 있다.

좀 쉬어볼까. 시설은 좀 경악스럽지만 위치 하나만은 최고인 숙소다.

 

Les Halles역의 쇼핑몰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다시 갠 날씨, 종일 변덕이 춤추는 날이다.

아직 빛이 살아있는 오후 7시, Les Halles역의 거대한 쇼핑몰인 포럼데알을 둘러본 후 어느 피자레스토랑에 들었다.

더도덜도 아닌 딱 유럽식 피자맛, 그런대로 맛은 괜찮았다.

 

 

숙소 밖 정경
숙소 밖 정경

내일이면 떠날 아쉬움-여행의 끝은 늘 아쉽다-에 여기저기를 산책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내내 나를 찔러대던 두통은 가셨지만, 콜마르에서 삐끗한 왼쪽 등의 통증은 가시지 않고 여전하다.

파리의 마지막 저녁, 떨리는 건물 위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