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유/생의 한가운데

우울한 오늘

2020년 3월 30일.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이 시각, 난 LOT폴란드항공의 부다페스트행 기내에 앉아 있어야 한다.

 

너무도 힘겨운 2019년을 지내면서 꼭 2020년 상반기엔 휴직을 하여 지친 마음에 치유를 주리라 결심했다.

올해 업무가 시작되기 전 휴직원을 제출했고, 이미 발권해 둔 항공권을 떠올리며 숙소를 예약했다.

부다페스트 직항인 폴란드항공의 항공권은 프로모션 기간에 예약한 터라 상상도 못할 만큼 착한 가격이었다. 

 

< 2019년 7월, 빈 Cafe Museum >

여행을 가리라 마음 먹었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항공 예약이다.

항공사 정보를 자주 확인하는 편이라서 여행 가능 시기에 여행지의 특가항공권이 나오면 바로 예약한다.

그 다음엔 여행지의 호텔이나 아파트를 예약하는데, 항상 무료취소가 가능한 조건을 선택한다.

같은 숙소라도 무료취소 조건이 환불불가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여행 못 갈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항공과 숙소 예약을 마친 후 도시 이동시 필요한 기차나 버스 예약을 하면 기본 준비 완료다.

 

3월 30일부터 예정했던 여행은 작년에 항공권을 구입한 후 부다페스트 호텔은 작년에 부킹닷컴에서, 비엔나 아파트는

올해 에어비앤비를 통한 아파트 예약으로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바이러스가 우리나라 30번, 31번 확진자를 만들어내는 상황은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여행을 못 갈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은 눈앞 현실이 되었다.

 

2월 말에 호텔과 아파트 예약을 취소했다.

3월이 되자 항공 정보 사이트는 연일 항공기 결항과 예약 변경, 환불을 안내하고 있었다.

3월 초, 내가 탈 항공기의 결항이 결정되었고 환불 수수료 없이 항공권이 취소되었다.

 

< 2019년 7월, 빈 구시가 >

휴직을 결심하면서 남들이 열심히 일하는 계절인 봄에 정말 빈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2009년 귀국 후 여름에만, 인파 출렁이는 성수기에만 짧게 다녀왔던 고향 같은 빈에서 푹 쉬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 어느 날, 선물 같은 부다페스트 직항 항공권을 발견하고는 앞뒤 재지도 않고 재빨리 잡았던 거다.

빈에서 기차로 3시간도 안 걸리는 부다페스트도 이틀쯤 둘러보고 3주는 빈에서 휴식하며 편히 즐기려 다.

마치 빈에서 거주하던 예전의 평온한 일상처럼 말이다.

 

< 2019년 7월, 빈 Zollamtssteg >

현재 우리나라는 감소세지만, 전 세계는 코로나19로 미증유의 혼란에 빠져 있다.

큰 결심으로 맞이한 '휴직'은 뜻을 펴지 못하고 구석에 틀어 박혀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아무도 알지 못했고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모든 이유가 사라졌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느 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 지금이 저리고 우울하다.

끝을 향한 기다림은 길기만 하고 마음은 번잡스럽기만 하다.

 

세월이 흐르면 '그땐 그랬지'하며 웃으며 쉬운 말을 뱉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어떠한 어려운 말로도, 어떠한 수려한 언어로도 위안을 찾을 수가 없다.

 

'사유 > 생의 한가운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또한 지나갈까  (0) 2019.08.14
정의로운 세상  (0) 2017.09.02
인정하고 수긍하기  (0) 2017.07.21
침묵이 긍정은 아니다  (0) 2016.05.16
시그널  (0) 2016.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