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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로마·피렌체·베니스·빈

5월 24일 (수) : 빈 구시가에서

숙소 복층 베란다에서

빈의 첫날, 내 타향병의 근원인 빈에 온 것만으로도 몹시 기쁘다.

5박 동안 머물 아파트는 1층엔 침실, 거실, 주방, 욕실, 화장실이 있고 복층엔 침실과 욕실, 거실, 베란다가 갖춰져 있는데

침실과 거실이 넓은 편이라 답답하지 않고, 누가 살다가 몸만 빠져나간 듯 각종 살림살이가 굉장히 많았다.

 

오전 8시, 여행 일정 중 처음으로 8일 만에 세탁기로 빨랫감를 돌렸다.

피렌체의 세탁기는 물이 흥건하여 사용하지 못했고, 세탁기가 있다고 명시된 베네치아에선 세탁기가 아예 없었으니까.

우린 아침부터 숙소 근처 Eurospar에서 채소와 과일, 우유와 요거트, 버터, 계란, 소시지, 물 등을 구입했다.

사온 감자와 양파, 양송이버섯을 듬뿍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 계란프라이를 곁들이니 제대로 집밥이다.

11시, 느즈막히 빈 구시가로 향한다.

 

 

슈테판 대성당
그라벤 거리

11번 트램을 타고 로이만플라츠에서 U1-지하철1호선-로 환승해서 6~7분이면 구시가 슈테판플라츠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얼마나 수다를 떨었는지 Reumannplatz를 지나쳤고, 더 가다보니 U3역이 있어서 U3로 슈테판까지 이동했다.

작년에 한 달을 머문 후 8개월만에 다시 찾은 빈, 구시가가 번잡한 걸 보니 이곳도 유동인구가 정말 많아졌다.

 

커피가 필요한 시간, 슈테판플라츠 근처 카페 Aida에 앉아 아메리카노와 멜랑쉬를 주문했다.

빈에 살던 2005년 가을쯤 딱 한 번 와본 프렌차이즈 카페인데, 확실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그때 인테리어 컨셉은 지금과는 달랐다.

이곳도 전통적인 빈의 카페처럼 커피를 주문하면 물도 같이 준다. 입 안을 깨끗이 하고 커피를 음미하라는 의미다. 

 

 

내가 주문한 Melange
카페 Aida

보행자 전용도로인 그라벤 거리와 콜마크트 거리를 걸으면 그 끝에 드넓은 왕궁이 나타난다.

구왕궁 쪽 미하엘 문을 통과해 구왕궁과 신왕궁을 차례로 지나면 왕궁정원에서 높은음자리표를 품은 모차르트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콜마크트 거리
왕궁 문
왕궁 정원의 모차르트 조각상

알베르티나 미술관 근처 레스토랑은 전에 두어 번 왔던 곳이다.

딱 점심시간이라 야외가 만석이라 또 대기다. 여행자들이 폭증하니, 가는 도시마다 가는 식당마다 대기는 기본이다.  

우리 말고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들보다 우선 차례였던 우린 오래지 않아 빈 좌석을 차지했다.

 

 

Reinthaler
슈니첼
쯔비벨로스트브라텐

난 유럽 식당에서 식사할 때 물을 주문하기도 하지만 맥주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선 레스토랑에서 오늘 처음으로 생맥주-0.3L-를 주문했다. 오랜만이라 감격할 뻔했다.

식사 메뉴로는 슈바인 슈니첼-돼지고기 돈가스-과 쯔비벨로스트 브라텐-소스와 튀긴 양파 올린 쇠고기구이-을 골랐는데,

역시 검증된 식당이라 둘 다 맛있다.

 

 

알베르티나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알베르티나 미술관 앞에서 본 오페라하우스

영화 '비포선라이즈'의 공간적 배경은 빈이다.

난 대화 위주의 이 영화가 너무 지루해서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꽤 있나 보다. 

'비포선라이즈' 따라잡기, 뭐 이런 식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촬영 인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알베르티나 미술관 앞도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다.

미술관 앞 동상 아래에서,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난간에서 남녀 주인공은 예쁜 장면들을 남겼다.

 

 

알베르티나 미술관 앞에서 본 Sacher 호텔
Sacher 호텔

Sacher 사허 호텔 자리는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가 사망한 곳이다.

1678년 베네치아 태생의 비발디는 베네치아 수도원 음악학교에서 교사로, 1703년부터는 작곡가 겸 바이올린 연주자로 일했고

1717년부터는 3년간 만토바 궁정음악가로 활동했으며 이후 밀라노와 로마에서도 음악 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날린다.

그는 유럽 황실로부터 후원과 작품 주문을 받았고,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6세는 그의 음악에 감동하여 기사 작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예술 사조와 취향이 변하고 노년이 되자 비발디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카를 6세의 후원을 기대하면서 빈으로 왔으나 카를 6세는 이미 임종한 후였고, 타지에서 후원자를 찾지 못한 비발디는

궁핍에 시달리다가 1741년 7월, 63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가 살던 집터엔 사허 호텔이 세워졌고, 호텔 벽면엔 비발디의 출생과 생몰일자가 새겨진 명판이 부착되어 있다.

 

 

시청사 앞 공원
국회의사당 : 고대 역사가 폴리비우스
국회의사당

트램을 타고 시청사 앞 광장에 내렸다.

필름페스티벌이 열리고 각종 공연을 하고 크리스마스마켓과 스케이트장이 되기도 하는 시청사 광장이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오랜 공사가 끝난 국회의사당 앞에는 아테나 여신이 지혜의 빛을 발산하고 있고, 그리스 신전 양식의 중심 건축물 좌우 경사로엔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를 비롯해 역사가 리비우스, 타키투스, 폴리비우스가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그들은 왜 이곳에 있을까. 우리가 진정 잊지 말아야 할 역사는 무엇일까.

 

 

중앙묘지 :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중앙묘지 : 요한슈트라우스2세, 브람스
중앙묘지 : 요한슈트라우스1세

구시가에서 71번 트램으로 30분을 이동하면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중앙묘지다.

트램 안에서 만난 60대 한국인 부부는 은퇴 후 유럽 자유여행 중이라고 한다. 오, 대단.

가는 도중 그분들께 중앙묘지 관련 정보를 살짝 건네고, 제 2문에 내려 직진하다 왼쪽에 있는 음악가 묘역 Musiker으로 간다.

중앙묘지는 원래 공원 같은 곳인데, 늦은 오후라 한적해서인지 오늘따라 더욱 공원 분위기다.

 

 

Eurospar

중앙묘지에서 숙소까진 신통한 11번 트램이 단번에 데려다 준다.

유로스파에 들러 사흘 후 아침 반찬이 되어줄 대구필렛을 고르고, 당장 오늘밤을 달래줄 맥주와 감자칩, 젤리, 초코과자도 구입했다. 

 

소소한 맥주가 함께한 짧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