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류/2023 로마·피렌체·베니스·빈

5월 28일 (일) : 귀로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캐리어를 챙겼다.

냉장고를 털어 당근감자조림을 만들고 감자넣은 3분짜장과 북엇국도 아침 식탁에 올렸다. 

베네치아에 이어 빈에서도 식기세척기 담당은 친구 R였는데, 덕분에 다들 설거지로부터 자유로웠다.

 

오늘 저녁에 출발 예정인 대한항공 온라인체크인을 마친 후 숙소 호스트에게 연락을 했다.

어제 오후에 오늘 late 체크아웃이 가능한지 물어봤는데 다음 숙박객이 바로 있기 때문에 수락되지 않았다.

물론 11시 이전 체크아웃 후 중앙역 물품보관함에 캐리어를 넣고 나머지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있으나, 혹시나 하여 호스트에게

캐리어만 숙소에 맡겨둘 수 있는지 물었다. 흔쾌히 수락했고 오후 2시에 캐리어를 가져가기로 했다.

 

 

도나우강

10시, 모든 짐을 정리하고 현관 옆에 캐리어 3개는 나란히 세워두고 밖으로 향한다.

빈에서 아직 가지 않은 곳 중 나는 좋아하지만 특징없다고 여길 수도 있는 Augarten과 광활한 자연을 볼 수 있으나 시간상 불가능한

Leinzer Tiergarten를 제외하고 도나우강과 프라터 공원 중 한 곳만 선택해야 했는데, 도나우강이 낙점되었다.

 

도나우강의 범람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Donauinsel-인공섬-과 오래된 도나우를 의미하는 알테도나우 중 Alte Donau역에 내렸고

강을 따라 걸어가면서 도나우강의 분위기를 느껴보기로 했다.

그러나 난 알테도나우로부터 도나우강까지는 항상 25번 트램-슈트란트카페 가는길-을 타고 갔기에 이 길을 걸어본 적은 없다.

별일 없이 구글이의 도움으로 별로 헤매지 않고 도착한 알테도나우 쪽은 도나우인젤과는 풍광이 좀 다르다.

게다가 파리나 프라하처럼 강을 끼고 구시가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서 강의 풍경이 예스럽지도, 아주 멋스럽지도 않다. 

 

 

Seccession 세체시온

U1 Alte Donau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Karlsplatz역에서 내렸다.

칼스플라츠역 근처엔 클림트가 초대회장이었던 분리파 회관 세체시온이, 그 곁엔 분리파 예술가들이 드나들던 카페 무제움이 있다.

우리가 칼스플라츠역에 온 이유는 처음 계획엔 없던, 영화 '비포선라이즈'의 배경 중 하나인 카페 Sperl로 가기 위해서다.

 

 

카페 슈페를 Sperl : 오래된 빈 카페에 비치된 신문

나도 처음 가는 곳이지만 구글맵 안내대로 천천히 걸어가면 10분쯤 후 슈페를에 다다를 수 있다.

6구 초입인 카페 Sperl은 1구 칼스플라츠역보다 U4 Kettenbrückengasse역에서 내리면 약간 더 가까우나 우린 지하철 1호선으로

오가야 했기에 환승보다는 U1을 택했다. 

 

오, 멋지다. 1880년에 오픈한 이곳은 오래된 빈 카페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

예쁜 조명이 있고, 외투를 걸어놓을 수 있는 목재 옷걸이가 있고, 손님들을 위한 신문이 비치되어 있다.

구시가 유명 카페보다 한적해서 더욱 좋은데, 옆 테이블에선 한국 여인 둘이 앉아 커피를 사이에 두고 대화 중이다.

친구 K가 화장실에서 둘 중 한 여인과 얘기를 했는데, 그녀들도 오늘 저녁에 인천행 항공기를 탄다고 한다.

 

 

영화 '비포선라이즈'에서 냠녀주인공이 앉았던 좌석
카페 슈페를 Sperl

주문을 받는 여자 서버의 환한 웃음이 참 예쁘다.

점심식사로 우린 연어샐러드와 모차렐라샐러드 그리고 클럽샌드위치와 맛난 쎔멜-빵-을 주문했다.

맛있고 건강한 식사를 한 다음엔 우유 거품 가득한 멜랑쉬까지 요청해서 카페인을 제대로 충전했다.

그리고보니 빈에선 Aida, Central, Gloriette, Dommayer에 이어 지금 Sperl까지 이름난 카페에서 매일 커피를 즐겼다.

 

 

S반역 Rennweg
OEBB 발매기에서 티켓팅한, 빈 1주일권(위:월~일)과 빈에서 공항가는 승차권(아래)

이제 숙소로 가서 캐리어를 챙겨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

숙소에서 트램 O를 타고 Rennweg에서 S7로 환승하면 쉽게 공항으로 갈 수 있다.

RJ기차를 타는 것이 아니고 S반을 타는 것이라 아직 유효한 빈 1주일권-트램,버스,U반,S반 승차 가능-을 지니고 있는 우린

빈의 마지막 S반역인 'Kaiserebersdorf에서 공항까지' 가는 구간만 발권하면 된다.

공항으로 가는 S7 안에서 빈 숙소 호스트에서 캐리어를 맡아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송했다.

 

 

빈 슈베하트 공항

빈 슈베하트 공항, KE 항공기의 체크인카운터는 아직 미오픈이지만 아랑곳없이 우리 한국인들은 길게 줄 서 있다.

카운터가 열렸지만 대기줄은 좀처럼 줄지 않았고, 모닝캄 라인이 있는 걸 본 후 그쪽으로 옮겼으나 중간에 이동하다보니

수속에 걸리는 시간은 별 차이가 없었다.

 

 

예정대로 탑승이 시작되었고 정시에 출발한 항공기는 거의 만석이었다.

첫 기내식으로 비빔밥과 버드와이저를 요청했으나 영화 '리멤버'와 함께 하다보니 밥알이 겉도는 듯하다.

이 친일 시국에 생각해봐야 할, 북받쳐 오르고 마음이 아파서 절절히 아린 영화다.

 

잠시 눈을 붙였으나 밤 시간이라도 오래 잘 수가 없었고 난 컵라면을 요청했다. 꿀맛이다.

괜한 영화 '앵커'는 시간 보내기용이었으나 그야말로 감동도 재미도 없었고 어떤 까닭도 실속도 없었다.

서울 아침 시각에 맞춰 제공된 스크램블과 크루아상도 맛있고 액상요거트인 악티밀과 다르보 잼도 반갑기 그지없다.

 

 

출국 때보다 귀국행 항공의 비행 시간이 1시간 이상 짧은데도 더 힘든 이유가 뭘까.

착륙을 하고 캐리어를 챙겨 2주를 함께한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며칠 있다 보자고.

 

5월 29일 월요일.

엔데믹이라 운행이 정상화된 공항버스에 올라 집으로 간다. 

집 앞 정류장에 하차하니 힘겹게 조국을 지키고 있던 반가운 얼굴이 저편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