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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2023 로마·피렌체·베니스·빈

5월 27일 (토) : 나슈막에서 생긴 일

빈을 여행하는 내내 날씨가 맑고 쾌적하다.

대구필렛 간장조림-내겐 최고-과 양송이버섯볶음을 메인 삼아 아침식사를 맛있게 하고 9시 50분, 길을 나선다.

 

 

최신형 트램

트램을 타고 U4를 타고 또 트램을 타고 다다른 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 돔마이어 Dommayer다. 

빈에는 구형과 신형 트램이 있는데, 최근 최신형 트램이 도입되었나 보다. 작년까진 못 본 완전 새로운 형태의 트램이다.

 

 

카페 돔마이어

카페 돔마이어는 음악에 반대하는 아버지의 방해로, 공연장 대신 요한슈트라우스 2세가 초연을 한 곳이다.

이곳을 아주 좋아하는 난 3번째 방문인데, 실내도 멋스럽지만 우린 건물 뒤쪽 널찍한 정원에 자리를 잡았다.

주말인데도 북적거리지 않고 여행자보다 현지인들이 훨씬 많아서 빈 카페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카페 돔마이어

우리 모두 아인슈패너를 골랐고 아펠슈트루델-사과파이-도 하나 주문했다.

아인슈패너는 한 마리 말이 끄는 마차라는 뜻으로, 옛날에 마부들이 야외에서도 커피를 식지 않게 또 쏟지 않고 마시기 위해

생크림을 얹은 커피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비엔나 커피와 가장 흡사하다. 

참고로 현재 빈에서 관광용으로 운행하는 마차는 피어카, 두 마리 말이 마차를 끈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돔마이어 정원의 정취, 친구 R은 좋아하는 분위기라며 즐거워한다.

 

 

카페 돔마이어

U4를 타고 시립공원Stadtpark으로 왔는데, 요한슈트라우스 2세 금빛 조형물을 찾을 수 없다. 방향을 잘못 잡았다.

여러 번 왔어도 이상하리만치 순조롭지 않은 곳이 꼭 있는데, 내겐 빈 시립공원이 그렇다. 

빈에 살 때도 자주 오던 곳이 아니고 또 빈에 여행 올 때도 반드시 들른 공원은 아니라서 그런가.

 

시립공원 잔디밭과 연못 주변에선 시민들이 토요일의 자유를 즐기고 있다.

만나서 반가운 요한슈트라우스 2세도, 쿠어살롱 앞 화사한 꽃들도 모두 5월을 즐기고 있다.

 

 

시립공원 : 요한슈트라우스2세
시립공원

오늘 오전엔 모두 U4-지하철 4호선-를 따라 움직인다.

나슈막 Naschmarkt은 Kettenbrückengasse역에서 내리면 벼룩시장이 열리는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토요일에 나슈마크트를 온 이유는 일반 시장은 상설이지만 벼룩시장은 토요일에만 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여행객들과 시민들이 싹 다 이곳으로 모인 것 같다.

 

벼룩시장을 구경한 지 5분쯤 됐을까.

어느 가판대에서 셋이 함께 서 있다가 뒷걸음치던 K가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냈다.

뒷걸음치다가 어떤 할머니의 장바구니 바퀴 1개를 부숴뜨렸다는 것이다.

딱 봐도, 여자 여행객을 골라 일부러 발 뒤에 바퀴 덜렁이는 장바구니를 바싹 갖다댄 듯 보였으나 심증일 뿐.

 

요상한 화장을 한 할머니는 화를 내며 독일어로 10유로를 요구했다. 

난 경찰에게 가자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친구들은 당황하며 요구사항을 들어주자고 했으나 그럴 순 없었다.

내가 돈이 없다 하자, 자기는 음악학교 교사였다고 영어로 말하더니 이젠 6유로를 달란다.

빨리 마무리하고 이 사태를 정리하고 싶었던 우린 결국 5유로를 주고 이 모든 상황을 종료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이가 없다.

난 유럽 도시나 빈을 여행하면서 현지인(?)과 나쁘게 얽히거나 사기 또는 도난을 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전체 상황이나 맥락으로 보아, 할머니는 오스트리아인이 아니다(연금 없음), 과거 교사가 아니었다(거짓말 함), 장바구니 바퀴는

처음부터 부서져 있었다(사기 침), 중 최소한 1개는 해당되지 않을까.

 

 

나슈마크트 옆 : 마욜리카하우스와 메달리온하우스

벼룩시장을 제대로 구경하지도 못했으나 더 볼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여행객이 대부분인 일반시장도 인산인해인 걸 보니, 벼룩시장을 못 보더라도 평일에 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전에는 나슈막에 이토록 사람이 많진 않았는데, 엔데믹 초기인 지금은 여행객이 한꺼번에 무시무시하게 몰리고 있다.

 

나슈막 중 구운 소시지가 주메뉴인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only cash 식당이다. 빈엔 카드 결제 가능한 샵이 코시국 전보다 많아졌으나 아직도 현금만 받는 곳이 꽤 있다.

주문한 소시지는 지극히 평범하고 쎔멜-빵-은 진짜 맛이 없었다.

 

 

Reumannplatz

귀국일인 내일은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가게가 휴업이니 오늘 오후는 쇼핑 시간이다.

로이만플라츠역 드럭스토어 dm에 들렀고 숙소 옆 유로스파에서는 각자 서울로 공수할 물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구입한 물품들은 숙소도 가져다두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친구들은 숙소 건물 1층에 자리한 kik으로, 난 맥주, 물, 암두들러, 모차렐라 등을 구입하러 다시 Eurospar로 갔다.

이것저것 거의 다 바구니에 골라 담았을 즈음, 갑자기 친구 R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이유도 말하지 않고는 지금 바로 숙소 앞으로 오란다. 다시 이유를 물었으나 일단 와야 한다고 답한다.

그러나 내가 마트를 나가려면 바구니에 사 놓은 것을 다 제자리에 갖다놓아야 하니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운 상황이었다.

 

나는 화가 났으나 마음을 누르며 다시 까닭을 물으니, 숙소 옆 아이스크림-아랍여인이 하는-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골라

컵에 담았는데, 현금 결제만 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개인 경비를 트래블월렛카드에만 충전해 가지고 있었고, 공동 경비인 트래블월렛카드 충전액과 현금 유로화는

내가 지니고 있었는데 다음날이 귀국이라 유로화는 약간-15유로-만 남아있었다. 상황인즉, 현금만 있으면 될 일이다.

 

 

숙소 앞 트램정류장

아, 정말 오늘 너무 힘들다.

난 갑자기 내게 오라고 한 상황 때문에 화가 났으며, 친구는 내가 와야 해결될 것 같아서 그랬다며 미안함을 표현한다.

우리는 서로의 담백하고 맑은 의도는 잘 알고 있었으나, '여행사(여행 전) +총무+가이드(여행 중)' 역할로 꽤 지쳐있던 나는

하루 동안 나슈막 사건에 이 일-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까지 겹치니 심적으로 더 무겁고 힘겨웠던 것이다.

서로 마음을 감싸 다독인 다음, 영업 마감을 얼마 안 남긴 근처 Hofer와 dm에 다녀왔다.

 

빈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먹은 후, 또 거실 탁자에 앉았다.

우린 슈티글 맥주와 푼티가머 맥주에 암두들러 음료까지 보태어 이야기꽃을 만개시켰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