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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04~08)/2004 여름 기억

2004. 8. 6. 금 (루체른, 그 아쉬움)

 

아침 6시, 모닝콜이 울린다. 어제보다 몸이 가벼운 걸 보니 버스여행에도 적응이 되었나 보다.
빵과 샐러드로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출발, 오늘은 스위스로 향한다.

스위스는 국토도 좁고 인구도 적지만, 국민1인당 GNP 44,000$인 세계 1위 부자나라다.
인구 수는 오스트리아와 비슷한데 국토 면적이 훨씬 좁다보니,
집들이 오스트리아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느낌이다.

스위스의 주산업은 시계와 초콜렛, 관광 및 은행업이고, 특히 중립국인 국가 상황을 최대한 이용한 은행업의 수익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경치가 빼어난 산길 고속도로를 달려 11시경 스위스 국경을 통과했다.

미리 걷어둔 여권의 심사-스위스는 EU 미가입국이라서 국경통과시 여권검사를 필수적으로 함-를 무사히 마친 뒤,

국경을 넘어 아직도 영주가 다스리는 나라인 리히텐슈타인-인구 3만5천의 작은나라-을 거쳐 스위스로 들어갔다.

인솔자는 인원 파악이나 잡다한 일들을 자기가 직접 하지 않고 여행객 중 여학생 하나를 반장(?)으로 정해 시키고 있다.
처음엔 귀차니즘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단정했는데 반드시 그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거구를 움직이려면 본인은 물론이고 보는 사람도 불편하니까.

루체른 중심가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50대로 보이는 프로의식 없는 가이드 아줌마가 버스에 오른다.

오늘 점심은 한국식이라는 인솔자의 멘트.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하러 갔는데, 메뉴도 맛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식당이 유지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식사 후에 펼쳐진 스위스 역사의 산 조각물인 사자상.
사자상은 창에 찔려 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스위스 국기와 프랑스 방패를 지키는 사자의 모습을 암벽에 부조해 놓은 것이다.

1600년대 스위스는 너무 가난해서, 유럽 각국에 200만명의 용병을 파병한 대가로 국가와 국민의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사자상의 사자는 파병한 용병을 상징하는데, 목숨 걸고 조국과 그 나라를 지킨 용병들의 희생이 기틀이 되어 발전한 나라가

바로 스위스인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 그야말로 가슴저린 감동이다.
 
그 다음은 자유시간이다.
이채롭게도 시내 한복판에 호수가 있고, 그 위엔 ㄱ자모양의 목재 다리인 카펠교가 있다.

다리 지붕의 천장에 있던 그림이 대부분 화재로 불타버려서 그림들을 복원 중이라고 한다.

다리를 걸으며 주위를 바라보니 오스트리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관이다.
다리를 건너 상점들이 모여있는 좁다란 거리로 가다보니
 10명 넘는 사람들이 열을 지어 태권도를 하고 있다.


다시 모여 도착한 곳은 알프스의 한 봉우리인 리기였다.

오를 때에는 10분간 아찔한 케이블카를 탔고 기차를 5분동안 더 타고서야 가장 높은 1797m 봉에 도착했다.

날씨가 맑지 않아서 아래쪽의 호수와 마을이 시야에 희미하게 드는데, 산중이라도 생각보다 기온이 낮지 않았다.

즐겁게 산을 즐기고 있으려니 비탈 바로 아래쪽에 방목하는 소들이 여러 군데 보였다. 이곳에선 소들도 산을 잘 타네~

산을 내려올 때는 우리 여행팀이 기차 한 칸을 통째 차지한 이유로, 난 30분을 힘껏 견디어야 했다.

경사 급한 산비탈을, 아이들의 지나치게 큰 목소리를, 그리고 전혀 주의 주지 않는 어른들의 무심함을.

산행이 끝나고, 호숫가 근처 기차역 앞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 시간.
여행팀 한 할아버지가 유리컵을 깨뜨렸고 테이블보 교체를 요청하자, 웨이터 녀석이 빈 테이블로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던지며 소리친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도 없이 불친절의 극치다.

 

그리고 끔찍한 저녁 식사. 닭고기만 몇 점 들어있는 카레와 수프가 전부다.

그런데, 숙소에 들어와보니 침대 하나가 이상하다. 간이 침대다.

식당에 있던 인솔자에게 문의하니, 유럽 트리플 침실의 침대 하나는 원래 그렇다고 한다. 지금까지 호텔은 안그랬는데.


이래저래 속이 뒤죽박죽이라, 기분을 풀기 위해 호숫가로 나갔다.

벤치에는 공주암 대학강사와 성악과 지망 고3짜리가 앉아있다. 그 곁에는 밤 호숫가에서 수영을 하는 객기들이 있었다. 

꽃이 있는 벤치에 앉아 드넓은 호수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진다.

기호는 벤치 옆 해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고 천천히 산책을 하며 정경들을 담아 숙소로 돌아왔다.

사진이나 영화에서 본 스위스는 아름답다.
눈으로 직접 본 스위스 역시 아름답다.
그러나 스위스의 몇 사람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내마음 속 스위스는
박살나 버렸다.
국민은 모두가 외교관이다.
사소한 행동으로도 국가 이미지에 치명상이 날 수도 있다는 걸 느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