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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숨은 그림 찾기

상심

 

 

처음엔 신발에만 물이 고인 줄 알았습니다.

물을 따라 버리고

신발을 말리면 될 줄 알았습니다.

 

 키는 깊이를 모른 채 낮아져만 갔고 

가슴은 오그라져 조여들기만 했습니다.

꿈인가 했지요.

자리를 털면 사라질 꿈이려니 했습니다.

 

 늪이더군요.

누구도 날 건지러 오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재단할 수 없는 늪의 수심을 스스로 밟고 또 밟아

가장자리의 풀 포기라도 잡아야 했습니다.

 

 미궁이더군요.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실타래를 쥐어주는 그녀조차 없었습니다.

촘촘하게 짜여져 바늘 끝조차 들어가지 않는 옷감처럼

마음엔 실 한 가닥 들어올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셈할 수 없는 날들 동안 매일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구름은 늘 비를 머금은 먹장구름이었고

바다에선 해일이 일었습니다.

 

 

 

 하루, 또 하루 그리고 더 하루.

닫힌 커튼 틈으로 햇빛이 살며시 들어왔습니다.

창을 여니 햇빛이 담뿍 안겨왔습니다.

빛살을 받아들이며,

훗날 내디딜 바닥이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지금, 발 아래가 단단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있는 줄 몰랐던 어느 세상을 향해 눈을 떴다는 것,

내면적으로 고고하던 나의 오만이 고개를 꺾었다는 것,

이젠 다신 영원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심장은

피가 돌지 않을만큼 단단해졌습니다. 

 

이따금 나를 에워싸던 그날의 미궁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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